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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챔프 성공사례집 :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하이거 2017. 1. 17. 15:0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총서번호 : KOTRA자료 16-053

발간일 : 2017-01-16게재일 : 2017-01-16

페이지 : 249관련지역 : -

 

 http://news.kotra.or.kr/user/reports/kotranews/20/usrReportsView.do?page=1&reportsIdx=6935&orderByType=image&searchStartDate=&searchEndDate=&searchReportGbn=title&searchText=&searchAreaCd=&searchIndustryCateIdx=&CSRFToken=3b49766e-b649-45ff-a78a-f3a9beb9d201



















































































































































































































































 

 

KOTRA 월드챔프 사업은
대한민국 수출산업을 이끄는
한국형 히든챔피언 기업의
수출 파트너입니다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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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챔프 성공사례집
KOTRA자료 16-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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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흔히 수출은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되곤 합니다.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세계
라는 무대에서 만나 작게는 기업을, 크게는 국가의 이름을 걸고 진검승부를 벌이는
격전의 장입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한 기업은 탄탄대로를 걷지만, 패배한 기업은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 실력을 발휘
하지 못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코트라 월드챔프 육성사업은 세계라는 망망대해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중견기업들
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및 중소기업청의
한국형 히든 챔피언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월드챔프 사업은 2011년 시작돼
6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업 중심의 맞춤형 해외 마케팅 지원을 통한 중소·중견
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라는 목적으로 진행된 동 사업에 지난 6년간 총 217개 기업이
참가했습니다.
월드챔프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코트라 본사(수출전문위원)와 126개 해외무역관
그리고 업체’라는 삼각체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코트라 수출전문위원의 상시
멘토링, 목표시장(무역관) 선정, 기업별 로드맵 수립을 통한 맞춤형 지원을 통해
한국형 히든 챔피언으로 도약할 수 있는 최적화된 수출 확대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결과 월드챔프 사업은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 전자회사는 몇 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월드챔프 사업을 활용해 재도전한
책 발간에 부쳐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결과 칠레라는 낯선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습니다. 한 화장품 용기 회사는 월드
챔프 사업을 통해 업계 최초로 태국에서 로드쇼를 개최해 직원 3명이던 현지 파트너
업체에 80억 원대 매출을 올려주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월드챔프 사업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 외에도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가치
들을 창출해냈습니다. 한 반도체 부품 회사는 월드챔프 사업을 진행하며 미래 10년의
비전을 다시 세우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미개척 시장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한
프린터 회사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미개척 시장 개척에 대한 도전의식과 자신감을
얻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개발도상국들로 진출 지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챔프 사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과는 달라질 수도 있습
니다. 그동안 월드챔프 사업 참가자들은 산업·지역별 월드챔프 간담회, 수출전문위원을
통해 서로 다른 기업들의 해외 마케팅 사례를 벤치마킹해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된 해외 진출 성공 사례 공유를 요청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코트라는
20개 사의 월드챔프 사업 성공 스토리를 담은 사례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월드챔프 육성 사업은 코트라가 일방적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참가
기업이 네트워크를 쌓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마련해나고자 합니다.
이번에 최초 발간되는 월드챔프 성공 사례집이 월드챔프 기업들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우리 중소·중견기업들에게 해외 마케팅 활동을 위한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12월
KOTRA 사장 김 재 홍

01 리노의 미래 10년, 월드챔프에서 길을 찾다, 리노공업 8
02 작지만 빠르고 강하다, 빅솔론 20
03 세계에서 통한 ‘인바디 검사’, 인바디 30
04 세계적인 핀테크 기업을 향하여, 코나아이 40
05 세계의 중심에서 ‘잭팟’을 터트리다, 코텍 50
06 모바일 지문 인식을 넘어 생체 인식으로, 크루셜텍 60
Ⅰ 전기·전자
01 콘덴싱 기술로 따뜻한 세상을, 경동나비엔 74
02 세계 건설 현장을 누비는 ‘작은 거인’, 대모엔지니어링 84
03 농부의 마음으로 세계 시장을 일구다, 동양물산기업 96
04 세계의 길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상신브레이크 106
05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아이디스 118
Ⅱ 기계·장비
CONTENTS

01 전 세계에 부는 ‘네오’ 바람, 네오바이오텍 132
02 삶의 질을 높이는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으로, 대웅제약 144
03 국산 의료용 레이저 기기의 선구자, 루트로닉 154
04 세계 인류의 치아 건강을 위하여, 메가젠임플란트 164
05 ‘한국형 유산균’으로 승부하라!, 쎌바이오텍 174
06 완제 의약품으로 ‘제약 주권’을 실현하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86
Ⅲ 제약·의료기기
01 3대째 전통 장을 담그는 ‘장인 기업’, 샘표식품 200
02 화장품용 ‘펌프’로 세계를 ‘펌핑’하다, 연우 212
03 K뷰티 열풍의 숨은 주역, 한국콜마 224
Ⅳ 식품·화학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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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챔프 성공사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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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01 리노의 미래 10년, 월드챔프에서 길을 찾다, 리노공업
02 작지만 빠르고 강하다, 빅솔론
03 세계에서 통한 ‘인바디 검사’, 인바디
04 세계적인 핀테크 기업을 향하여, 코나아이
05 세계의 중심에서 ‘잭팟’을 터트리다, 코텍
06 모바일 지문 인식을 넘어 생체 인식으로, 크루셜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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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전자

리노의 미래 10년,
월드챔프에서 길을 찾다


01
끊임없이 새로움에 도전하는 ‘리노 정신’
리노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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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 노래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결혼 6개월. 그러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
다. 거세게 불어 닥친 오일쇼크로 그만 하루 아침에 해고를 당했다. 당시 그의 나
이 스물여덟. 일할 데를 찾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해고 걱정 없는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갖고 있는 돈을 다 끌어 모아도 30만 원
이 안 됐다. 아직 새댁 티를 벗지 못한 아내와 한창 붐이 일기 시작한 비닐 봉투
를 팔러 나섰다.

‘리노 핀’과 ‘리노 소켓’으로 세계 반도체 테스트 부품 시장을 석권한 리노공업 이
채윤 사장의 이야기다.

일본보다 좋은 제품을 가져오세요

1978년 비닐 봉투로 사업을 시작한 이채윤 사장은 헤드폰 부품, 미니 카세트용 완
충기, 카메라 케이스, 스프링 콘택트 프로브 등의 업종을 거치며 사업가로서의 근


1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육을 키워나갔다. 현재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 분야로 눈을 돌린 것은 198 7년. 당
시 리노공업은 일본의 소니, 산요, 마쓰시다 등에 포장재 같은 부자재를 납품하
고 있었다.
“당시 중국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 건 시간 문
제겠더군요.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여 명의 직원들과 매
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찾은 아이템은 PCB(Printed Circuit Board :
인쇄 회로 기판) 검사 핀이었다. 리노공업은 그동안 조금씩 해오던 다른 업종을
모두 접고 여기에 매달렸다. 이론적 지식도 없고, 설비는 물론 인력도 부족했지만
일본 모델을 베껴서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
사를 만나면서 현재 리노공업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 검사용 프로브와 테스트 소
켓을 만들게 됐다.
“수명이 일주일인 일본산에 비해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 것을 쓰겠다고 하더군요. 못 만들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어
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통해 반도체 소켓을 생
산해내는 데 성공했어요. 일본 거를 똑같이 베낀 게 아니라 우리의 혁신
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간 제품을 만들었죠.”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1
육을 키워나갔다. 현재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 분야로 눈을 돌린 것은 198 7년. 당
시 리노공업은 일본의 소니, 산요, 마쓰시다 등에 포장재 같은 부자재를 납품하
고 있었다.
“당시 중국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 건 시간 문
제겠더군요.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여 명의 직원들과 매
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찾은 아이템은 PCB(Printed Circuit Board :
인쇄 회로 기판) 검사 핀이었다. 리노공업은 그동안 조금씩 해오던 다른 업종을
모두 접고 여기에 매달렸다. 이론적 지식도 없고, 설비는 물론 인력도 부족했지만
일본 모델을 베껴서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
사를 만나면서 현재 리노공업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 검사용 프로브와 테스트 소
켓을 만들게 됐다.
“수명이 일주일인 일본산에 비해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 것을 쓰겠다고 하더군요. 못 만들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어
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통해 반도체 소켓을 생
산해내는 데 성공했어요. 일본 거를 똑같이 베낀 게 아니라 우리의 혁신
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간 제품을 만들었죠.”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1

리노 제품에 만족한 반도체 회사는 금형을 파고 제품을 양산해 달라며 8천만 원
을 건넸다. 하지만 제품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반도체를 다 망가뜨리는 사고가 발
생했다. 반도체 회사는 1억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반도체 장비가 어떻게 생
겼는지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제품을 만든 게 화근이었다. 반도체 회사로 6개월 간
직원을 파견해 원리를 파악해나갔다.

하지만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서운 게 없었는데 복잡하
고 정밀한 반도체 테스트의 원리를 알아갈수록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무모했는
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
에 하나씩 난관을 해결해나가며 결국 1995년 반도체 검사용 IC(Integrated Circuit :
집적 회로) 테스트 소켓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듬해 법인
으로 전환하고 전 제품을 ‘리노’라는 브랜드로 통일했다.

머리카락에 구멍 뚫는 사람들

리노공업이 생산하는 핀과 소켓은 반도체 테스트 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소모성
부품이다.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직경 0.075mm 핀 안에는 그보다 가는 절반
정도 크기의 스프링이 들어 있어 반도체 등 전자 제품의 전기가 잘 흐르는지 여
부를 체크한다. 플라스틱 소켓과 여러 개의 테스트 핀으로 이뤄진 리노 소켓은 반
도체 IC 검사용으로 쓰인다. 리노공업은 처음에는 핀만 생산하다가 핀이 들어가
는 소켓까지 분야를 넓혔다. 반도체 메모리와 속도에 따라 소켓 크기와 모양, 거기
에 들어가는 핀의 양이 달라지는데, 아주 정밀한 것은 6×6mm 소켓 안에 제각각
기능을 달리하는 핀이 3,600개나 들어 있다. 그야말로 초소형 초정밀 제품이다.

1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리노공업은 처음엔 설계 도면을 받아서 그대로 제품을 만들다가 기술력이 축적됨
에 따라 설계부터 완제품까지 전 과정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런 일괄 공
정 시스템은 원가를 절감하고 납품 기간을 앞당겼다. 품질 면에서도 리노공업의
제품은 단연 우수하다. 국내외에 수십 개의 회사가 있지만 리노공업 제품은 못 따
라온다는 자부심이 넘친다. 가격이 일본 제품보다 20% 정도 비싸지만 다른 제품
두 개를 쓸 때 한 개만 쓰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적이다. 국내외 1천여 기업에 2만
여 개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리노공업의 저력은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으로 가자!
2 000년대 초, 뛰어난 기술력으로 국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리노공업은
반도체 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
다. 리노공업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시회를 참가하는 것으로 미국 진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첫 해에 리노공업의 부스를 찾는 방문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를 2년 정도 후에 깨달았다. 부스 디자인이나 디스플레이가 촌스러운 것
은 차치하고 시쳇말로 ‘콩글리시’가 벽면을 도배하고 있었던 것. 이듬해부터 미국
업체에 디스플레이와 팸플릿 등 제반 사항을 맡겼더니 리노공업을 찾는 사람들
이 차츰 늘어났다.
한 번은 영어 실력이 부족해 미국 세관에 전시할 물품을 다 뺏기는 일도 벌어졌다.
전시회를 위해 들인 노력과 비용이 얼마인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참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주변 사람을 수소문해 세관과 접촉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결국
전시회 당일 새벽 2시에 물건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3

실리콘밸리에서 코트라를 만나다

이채윤 사장은 “그때 코트라를 알았으면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
쉬워했다. 해외 수출을 하려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데, 의욕만 앞섰던 리노공
업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러다가 2013년 월드챔프 사업에 참가하
면서 코트라를 만났을 때, 그는 “마치 봉사가 눈을 뜬 것 같았다”고 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느라 동분서주 했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든
든한 선배가 생긴 것이다. 코트라는 멀리서 불빛을 반짝이는 등대처럼 리노공업
의 수출 길을 안내해주었다.

리노공업은 아직 미국에 법인이나 지사가 없어 직원들이 출장을 가거나 현지 고
객 응대를 할 때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실리콘밸리 무
역관이 운영하는 IT 센터에 입주함으로써 장기 출장자들의 상시 업무 공간을 확
보하고, 고객들에게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또한 그동안 해왔
던 기술 영업 위주에서 벗어나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도 큰 수확이었다. 가
령 이전에는 전시회나 컨퍼런스에 부스를 열고 고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


1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만 월드챔프 이후에는 전시회 개최 전에 고객이 리노 부스로 오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리노의 고객이 필요로 하는 작은 선물 등을 제작하면서 리노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객들에게 확실히 심어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실리콘밸리 무역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열리는 반도체 전문 전시회 ‘SEM-
ICON WEST’에서 리노공업의 단독 부스 구성과 현장 마케팅을 지원했다. 다수의
전시회 참여와 풍부한 노하우를 가지고 현지 부스 디자인 업체를 선정하고 가격
협상을 벌여 비용을 절감했다. 전시회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제반 사항을 꼼꼼히
준비하는 한편 타깃 바이어를 초청하고 섭외까지 도맡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
끼지 않았다. 또한 그동안의 대리점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리노공업의 현장 마케
팅을 제안, 직접 상담에 나서 신규 거래선 확보에도 도움을 주었다.
월드챔프의 자부심 리노공업
실리콘밸리 무역관의 리노공업 담당자들은 무역관장으로부터 “왜 당신은 리노공
업 일만 하느냐”는 지적을 종종 받는다. 무역관 담당자는 여러 기업을 관할하고 있
는데, 유독 리노공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리노공업과 실
리콘밸리 무역관은 호흡이 잘 맞는다. 그동안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무역관 월드
챔프 담당자들은 부산에 있는 리노공업을 방문했다. 이후 그들의 태도는 더욱 적
극적으로 바뀌었다. 홈페이지 등을 통해 막연하게 짐작했던 리노공업이 생각 이
상으로 탄탄하고 내실 있는 기업임을 확인한 후 더 큰 사명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5

2014년에 리노공업을 다녀간 실리콘밸리 무역관 월드챔프 담당자는 독자적으로
세계 유수 반도체 회사와의 거래를 개척해보겠다며 동분서주한 결과 그 기업 담
당자와의 미팅을 성사시켰다. 사실 리노공업은 반도체 업종 특성상 기술적인 부
분이 많아 무역관 직원이 단독으로 고객 상담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리노공업
직원들조차도 영업을 나갈 때는 설계자를 대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무역
관 직원이 얼마나 열심히 뛰었던지 이런 감동적인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리노공업은 실리콘밸리 무역관과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 주문
량이 가파르게 상승해 최근 몇 년 간 대미 수출액이 연 평균 10~15% 성장했다. 월
드챔프를 통해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둔 리노공업 이채윤 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코트라 사장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정부 관료들이 의전 같은 형식적인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정부가 이
런 일까지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업무적으로 기업에 도움을 주
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해보니 정말 도움이 됩니다.
해외 무역관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코트라 직원들 많이
격려해주십시오.”

반도체 문외한 세계를 정복하다

리노공업은 해외 수출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을 주축으로 일본, 싱가포르, 대만, 독일 등 전 세계 21개국에 수출하

1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반도체 장비 검사용 핀과 소켓 시장 점유율 1
위로, 전 세계 유명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리노공업과 거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글로벌 2 0대 반도체 기업 중 다수의 기업에 가장 많
은 양의 제품을 공급하는 제1밴더사로 리노공업이 당당히 등록돼 있다. 이러한 성
과로 리노공업은 2 0 16년 11월 ‘5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반도체 기술을 배우려고 해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시절이라 국
내에서는 배울 데가 없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에 가서 곁눈으
로 기술을 배우면서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를 방문
한 한 일본 회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3년을 만나니까 안 보여줄 수가 없
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들이 그렇게 조금씩 기술을 가르쳐준 것은 저
희가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였을 거예요. 그만큼 어려운 분야니
까요. 하지만 그때 우리를 깔보던 일본 기업들의 매출은 거의 그대로인
데 우리는 20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전시회에서 일본 사
람들이 우리 거를 베끼려고 열심히 적어갑니다.”
월드챔프로 회사 내부 역량을 점검하다
멋진 말로 표현된 여타 기업들과 달리 리노공업의 경영 철학은 ‘물어봐라’이다. 회
사 출입문과 사옥 곳곳에 이 표어가 붙어 있다.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7
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반도체 장비 검사용 핀과 소켓 시장 점유율 1
위로, 전 세계 유명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리노공업과 거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글로벌 2 0대 반도체 기업 중 다수의 기업에 가장 많
은 양의 제품을 공급하는 제1밴더사로 리노공업이 당당히 등록돼 있다. 이러한 성
과로 리노공업은 2 0 16년 11월 ‘5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반도체 기술을 배우려고 해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시절이라 국
내에서는 배울 데가 없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에 가서 곁눈으
로 기술을 배우면서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를 방문
한 한 일본 회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3년을 만나니까 안 보여줄 수가 없
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들이 그렇게 조금씩 기술을 가르쳐준 것은 저
희가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였을 거예요. 그만큼 어려운 분야니
까요. 하지만 그때 우리를 깔보던 일본 기업들의 매출은 거의 그대로인
데 우리는 20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전시회에서 일본 사
람들이 우리 거를 베끼려고 열심히 적어갑니다.”
월드챔프로 회사 내부 역량을 점검하다
멋진 말로 표현된 여타 기업들과 달리 리노공업의 경영 철학은 ‘물어봐라’이다. 회
사 출입문과 사옥 곳곳에 이 표어가 붙어 있다.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7

“우리가 언제 기술이 있었습니까?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올 때도 하도
모른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답답해서 가르쳐줬어요. 모르면 물어서 가
면 돼요. 단순하지만 안에 담고 있는 뜻은 굉장한 말입니다. 대부분 중
소기업 하시는 분들이 영어에 약합니다. 코트라에 연락해서 영어 잘하
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찾아줄 겁니다. 일단 물어보면
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어요.”

기술 수준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해외 마케팅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이채윤 사장은 코트라 월드챔프에서도 ‘물어봐라’의 경영 철학을 실천했다. ‘왜 월
드챔프 사업에 참여해야 하는가?’ ‘월드챔프는 리노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이렇
듯 끊임없는 물음을 던진 결과 해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월드챔프는 목적이 아
니라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이채윤 사장은 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내부 역량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미래 10년을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이 가
장 큰 소득이라고 강조했다.


“매출이 몇 백억 원인 중견 기업들이 단지 정부의 지원금만을 바라본
다면 월드챔프 사업의 의미는 퇴색되리라고 봅니다. 저는 사실 이 사업
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아주 큰 소득을 얻었습니다. 월드챔프 사
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보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좀 더 근본적인 것을 점검하고 멀리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발휘
했으면 좋겠습니다.”

1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9 Ⅰ. 전기·전자 | 리노공업 19

작지만
빠르고 강하다


02
소형 프린터로 세계 시장 석권
빅솔론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얼마 전부터 술렁이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2002년, 삼성전기가 미니 프린터
사업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 전체로 보면 규모도 작고, 전망도 불투명하다
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미니 프린터 사업부를 이끌고 있던 빅솔론 김장환 대표는
부하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다들 모여보지. 우리가 삼성에서는 더 이상 프린터 개발을 못하게
됐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일을 계속하려면 삼성을 나가는 수밖에 없어. 나와 함께 나가서 프
린터 사업을 계속해보지 않겠나?”


어렵게 꺼낸 한 마디에 부서는 그야말로 초상집과 같았다. 삼성맨이라는 자부심
은 쉽게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값진 이름이었다. 안정적으로 대기업에 남느냐, 아
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나가서 새롭게 시작하느냐. 갈림길에서 직원들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프린터 개발을 계속하고자 하는 직원 30여 명이 그와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들은 중소기업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면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빅솔론은 이렇게 2002년 삼성에서 분사해 종업원 지주제도 형태로 설립됐다. 종
업원 지주제도란 종업원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형태다. 종업원이 모두
주인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성과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일한 만큼 보상이

2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주어지니 일에 대한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업무에서 소외되는 사람
이 없이 전 직원이 회사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일하기 때문에 강한 시너지가 발휘
되는 것이다.
크고 튼튼한 것 vs. 작고 편리한 것
하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에서 미니 프린터를 담당하던 전체 직
원 중 30여 명밖에 나오지 않았기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신입사원들까지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그러다 보니 품질이나 고객 응대 등에서 미숙한 부분이 나
타날 수밖에 없었다. 자칫 빅솔론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었다. 빅솔론
경영진은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내실을 다져나갔다.
빅솔론 경영진은 빅솔론이 경쟁 우위를 점하려면 타사에서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회사에서 만들 수 없는 혁신적
인 제품 개발만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이렇게 해서 개발한 것이 바로 소형
모바일 영수증 프린터다.
“스마트 시대를 대비해 세상에서 가장 작고, 휴대가 편리하고, 튼튼한
프린터를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죠. 하지만 제품 개발 당시만 해도 고
민이 많았어요. 스마트 시대가 정확히 언제 도래할지 알 수가 없는데 너
무 경량화 쪽으로만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많았죠.”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3
주어지니 일에 대한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업무에서 소외되는 사람
이 없이 전 직원이 회사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일하기 때문에 강한 시너지가 발휘
되는 것이다.
크고 튼튼한 것 vs. 작고 편리한 것
하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에서 미니 프린터를 담당하던 전체 직
원 중 30여 명밖에 나오지 않았기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신입사원들까지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그러다 보니 품질이나 고객 응대 등에서 미숙한 부분이 나
타날 수밖에 없었다. 자칫 빅솔론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었다. 빅솔론
경영진은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내실을 다져나갔다.
빅솔론 경영진은 빅솔론이 경쟁 우위를 점하려면 타사에서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회사에서 만들 수 없는 혁신적
인 제품 개발만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이렇게 해서 개발한 것이 바로 소형
모바일 영수증 프린터다.
“스마트 시대를 대비해 세상에서 가장 작고, 휴대가 편리하고, 튼튼한
프린터를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죠. 하지만 제품 개발 당시만 해도 고
민이 많았어요. 스마트 시대가 정확히 언제 도래할지 알 수가 없는데 너
무 경량화 쪽으로만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많았죠.”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3

불행히도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했지만,
태블릿 PC 출시가 늦어지면서 3~4년 동안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회사의
분위기는 급격히 위축됐고, 신제품 모델을 바꾸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하지만 위
기 속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숨어 있었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자 어느 순간 스마
트 기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소형 프린터가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일본과 미
국 등 글로벌 기업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모바일 영수증 프린터 세계 1위 기업

빅솔론은 세계 최초로 작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소형 모바일 영수증 프린터를
시장에 내놓았다. 빅솔론 소형 프린터의 기술력은 빠르고 선명하게 출력되는 인
쇄 원리에 있다. 프린터의 프린트 헤드 부분에서 열을 통해 화학 처리된 감열지를
태워 인쇄하는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빅솔론은 스마트 기기 시대에 중
요한 기술인 호환성에 관한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모바일 프린터와 다양한
기기를 접속해서 손쉽게 연동이 가능하며, PDA는 물론 태블릿과 스마트폰도 블
루투스나 와이파이로 연결해 출력이 가능하다.

튼튼하다는 점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소형 프린터는 사용자가 휴대하고 다니며
결제를 하는 특성상 떨어트릴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튼튼해야 한다. 빅솔론은 제품
의 설계, 개발 단계부터 내구성을 고려해 2.1미터 높이에서 12번씩 낙하하는 시험
을 거친다. 이 가혹한 시험에 통과해야 비로소 빅솔론 프린터의 자격을 얻는 것이
다. 뛰어난 방수 기능도 빅솔론 제품의 자랑이다. 물이 유입되는 부위를 차단 설계

2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하는 자체 기술로 보호 케이스 없이 제품 자체만으로 방수가 되기 때문에 비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 야외에서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이렇게 뛰어난 품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본사의 90명 직원 중 절반이
넘는 50여 명이 기술 개발 인력이라는 데 있다. 또한 기획부터 설계, 개발, 생산 및
검증까지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어 고객의 불만이나 요구 사항을 신
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빅솔론 경영진은 세계 유수 기업들과 싸워서 이기려면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아직 해외 법인을 세울 만큼 회사의 재정 자립도가 높지 않았지
만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창업한 지 3년째인 2 005년 유럽 법인과 미주 법인을
차례로 설립하며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빅솔론은 유럽 법인을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세웠다. 독일의 까다로운 제품 선택
기준을 통과하면 다른 유럽 국가들에 진출하는 것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서였다. 올해로 유럽 법인을 설립한 지 11년. 빅솔론의 소형 프린터는 유럽 시장에
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뛰어난 품질과
더불어 시간 약속 엄수다. 빅솔론의 제품은 주문과 동시에 배송이 가능하다. 의사
결정이 빠르고, 본사와 유럽 법인의 원활환 협업이 이루어져 고객들에게 유연하
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5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5

유럽 대형 로지스틱 회사로부터 수주를 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
다. “그쪽 회사가 저희 모바일 프린터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샘플을 요청했는데, 그
때가 금요일이었어요. 한국 시간은 아침 시간이죠. 그런데 바로 테스트를 해야 한
다며 그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샘플 3개를 달라고 하는 겁니다. 본사 개발팀에서
는 바로 샘플을 준비했고, 그 다음날 일요일에 저희 직원이 바로 샘플 3개를 들고
독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샘플을 갖다 주니까 그쪽에서 엄청 놀
라는 거죠. 외국의 다른 경쟁사들은 빠르면 2주가 걸린다고요. 자기들도 3일 안
에 달라는 요청을 하긴 했지만 가능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정말
감동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창업 초창기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해온 빅솔론은 내수보다 수출이 훨씬
많은 글로벌 기업이다. 전체 매출의 약 75%가 해외 수출에서 발생한다. 수출하는
국가만도 전 세계 120개국에 달한다. 지역도 어느 한 군데 치우치지 않고 유럽, 미
주, 남미,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골고루 분포해 있어 오일쇼크나 환율 변동
등 세계 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

월드챔프로 한층 높아진 글로벌 위상

빅솔론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법인이 있는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활발한 마케
팅 활동을 벌였다. 유럽에서는 함부르크 무역관과 함께 ‘RBTE’ 전시회에 참가했
다. ‘RBTE’는 신진 경쟁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영국 최대의 프린터 기기 전시회다.
빅솔론은 월드챔프 지원을 통해 부스를 보다 세련된 디자인을 구현해 한국의 넘

2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버 원 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
우는 타 지역에 비해 전시회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부스의 규모나 품
질을 높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타 글로벌 회사들에 비해 미팅룸도 협소하
고 신제품이 나와도 단순히 프린터만 전시할 수밖에 없어 신규 거래선 발굴에 어
려움이 많았다.
프린터는 컴퓨터나 핸드폰, 태블릿 등 메인 장치와 연동해야 작동이 가능한 주변
기기다. 그렇기 때문에 프린터만 전시해서는 빅솔론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가
어렵다. 월드챔프의 지원을 받아 부스의 규모를 키움으로써 메인 장치와의 솔루
션이 가능해짐에 따라 엔드 유저나 방문객들이 보다 쉽게 빅솔론의 프린터를 어
느 어플리케이션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빠르게 파악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또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7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7

한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이전에는 소수 직원만 참여했던 것이 법인 직원들뿐만
아니라 본사 직원들도 대거 참여해 네트워킹을 하며 영업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
다. 현지 언어가 가능한 코트라 무역관에서 매칭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것
도 큰 도움이 되었다.

LA 무역관과 진행한 미국 전시회 또한 월드챔프의 지원으로 규모를 키우고 세련
된 디자인을 구현함으로써 신규 방문자가 급증했다. 특히 미국 전시회에서는 빅
솔론의 제품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8개의 파트너 회사들을 초대해 데스크를 마
련해주고, 그들이 직접 자기 회사의 제품을 소개하면서 빅솔론의 프린터도 자연
스럽게 홍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미국 전시회는 전문성이 가미된 수준 높은 전시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개척 시장, 이제는 두렵지 않다

이런 직접적인 지원 외에도 월드챔프 사업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해외 시
장 개척에 대한 마인드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월드챔프 이전에는 미
개척 시장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문화와 비즈니
스 특성이 다른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시장을 관리하는 방
향으로 해외 마케팅을 진행해왔다. 미개척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에서도 정보가
충분치 않아 구글링을 통해서나 맨투맨으로 현장에 직접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
다. 그러나 월드챔프 사업을 계기로 각 지역 영업 담당자별로 코트라 무역관과 긴
밀히 교류하면서 신규 거래선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됐다.

2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특히 얼마 전에는 코트라 수단 무역관의 지원으로 아프리카 수단에 투표용지 발
급용 모바일 프린터 1만5천 대를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코트라 전문위원이 제
공한 코트라 지원 사업 가이드북을 통해 미개척 시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수단의 지사화 사업을 신청하게 되었고 때 마침 수단에서 투표용 모바일 프린터
입찰을 진행하는 것을 알게 돼 수단 무역관에 협조를 요청한 게 시작이었다. 수단
무역관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바이어를 발굴해줬고, 빅솔론의 아
프리카 담당 영업사원이 수단을 방문해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다. 빅솔론
은 이를 계기로 미개척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같
은 개발도상국들로 진출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월드챔프 사업 이전에는 코트라 지원 사업이란 빅솔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는 인식이 있었다. 소위 ‘코트라가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 뭘 해주겠어?’라는 의식
이 팽배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월드챔프를 통해서 단시간 내에 큰 성과를
이루다 보니, 각 사업별로 적극적으로 코트라 지원 사업에 신청을 하고 있다. 빅
솔론은 그동안 법인이 위치한 유럽과 미국에서 월드챔프 사업을 벌여왔다. 하지
만 영업 전반적으로 코트라와 연관된 사업이 많아지다 보니, 다른 지역의 영업 담
당자들 또한 월드챔프 지원을 받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져 앞으로 월드챔프 사업
을 유치하기 위한 빅솔론의 내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 같다고 빅솔론 해외 마
케팅 담당자는 귀띔한다.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9 Ⅰ. 전기·전자 | 빅솔론 29

세계에서 통한
‘인바디 검사’


03
브랜드 명이 보통명사가 되다
인바디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미원과 호치키스의 공통점은?

미원과 호치키스의 공통점은? 바로 브랜드 이름이 그 분야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다는 점이다. 인바디 또한 마찬가지다. 인바디는 본래 브랜드 이름이자 사명이
다. 하지만 사람들은 헬스장이나 건강검진센터 등에서 체성분 분석을 할 때 “인바
디 한다”고 통칭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인바디가 세상에 없던 체성분 분석기를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라
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 상품이
라는 뜻이기도 하다. 인바디는 세계 70여 개국에 진출해 매출액의 70%를 해외에
서 거둬들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수출 기업이다.

사업 말릴 거면 결혼하지 말자!

인바디를 설립한 차기철 대표의 이력은 조금 독특하다. 연세대와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타대에서 생체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체성
분 측정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박사과정 중 이에 관한 논문을 접하면서다. 여기
서 ‘부위별 측정’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그는 체성분 분석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버드 의대에 들어가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비만이 사회 문제로 대두돼 지방과 근육량에 대한 관심으로 체
성분 측정 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기존의 체성분 측정 장비는 정
밀도가 떨어지고 복잡했다. 그는 자신이 공부한 기계공학과 생체공학을 접목해

3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더 정확하고 간단한 체성분 측정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공부만 해
왔던 그는 회사를 직접 차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회사에 들어가 제품을 개발하려
고 했다. 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마음속에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창
업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유학을 다녀와서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 부모님은 물론
부인도 완강히 반대했다. 차 대표는 결혼하기 전 부인과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언젠가 사업을 할 텐데 그때 나 말릴 거면 결혼하지 말
자.” 그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미국이나 일
본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체성분 분석기의 혁신
차기철 대표는 19 96년 전세금 5천만 원으로 한 지하창고에서 직원 4명과 함께 인
바디(당시 바이오스페이스, 201 4년 인바디로 변경)를 설립했다. 자본금도, 사회적
인맥도 없던 그는 오로지 기술에 승부를 걸었다.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초기 5년
동안은 매주 공장을 찾아가 생산 라인을 살폈다. 이런 노력 끝에 체성분 분석기의
혁신을 이뤄낸 ‘인바디’(InBody)가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인바디는 세계 최초로 부위별 직접 측정과 다주파수 측정을 함께 구현한 체성분
분석기다. 누워서 전극을 붙여 체성분을 분석하는 기존 제품과 달리 기계에 서서
전극에 손을 대면 측정되는 간편한 제품이다. 한꺼번에 몸 전체를 측정하는 게 아
니라 팔, 다리, 몸통 등 부위별로 체성분을 분석하기 때문에 정밀하다는 장점이 있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3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3

다. 또한 주파수를 사용해 세포 내 수분과 세포 외 수분을 모두 측정함으로써 신장
내과나 재활치료 분야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독일, 일본 등의 경쟁 업체 제품들이 10% 오차를 보이는 반면 인바디는 3% 이하
로 오차 범위를 줄여 ‘체성분 분석은 인바디’라는 공식이 업계의 표준이 됐다. 인
바디의 고급 제품은 유사 제품보다 5배 이상 비싸지만 유명 병원이나 헬스클럽,
기업, 학교 등에서 인바디를 선호하는 이유다. 물론 처음에는 가격이 비싸고 체성
분 분석기에 대한 이해가 낮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인
바디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창업 첫 해 1억 원이던 매출은 6년 후에는 100억 원
으로 늘어났다.

위기 그리고 터닝포인트

승승장구하던 인바디에도 위기는 있었다. 사업이 잘 되니 경쟁자들이 시장에 뛰
어든 것이다. 한 경쟁사와는 영업적으로 시장에서 다툼도 있었다. 독점하다시피
했던 시장 점유율이 60%까지 떨어졌다. 공학도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성공
시키는 것까지는 했는데, 사업가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회의가 몰려왔
다. 하지만 차기철 대표는 다시 정면승부에 들어갔다. 시장의 리딩 기업으로서 독
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인바디가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당시 살루스, 키나 등 다양했던 브랜드를 전부 인바디로 통일하고 재정비에 들어
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비자들이 인바디를 알아보기 시작하며 브랜드 파
워가 생긴 것이다.

3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인바디는 그동안 병원, 스포츠 센터 등이 주요 고객이었으나 최근 들어 가정용 수
요도 늘어나고 있다. 20 15년 세계 최초로 가정용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 밴드’를
개발, 출시했기 때문이다. 웨어러블(착용할 수 있는) 제품인 ‘인바디 밴드’는 장소
의 제약 없이 어디서나 활동량은 물론 근육량, 체지방량, 체지방률 등을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인바디는 또한 새로운 개념의 신제품 개발을 준
비 중이다. 체수분 측정기다. 최근 선진국 의학계에서 질병과 인체의 수분 분량에
대한 논문이 나오고 있는 만큼 체성분 분석기에 이어 체수분 측정기가 인바디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월드챔프와 함께 유럽 진출의 길을 찾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인바디의 제품들은 체성분 분석기의 하이엔드 시장
을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100% 수작업 및 뛰어난 품질 관리 능력은 제품
의 수명을 길게 만들어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 진출을 불가피하게 만들었
다. 인바디는 일본, 미국, 중국, 인도에 법인을 설립해 대형 병원과 스포츠 구단 등
전문 소비층을 공략했다. 그 결과 지금은 국내보다 해외 매출이 훨씬 큰 비중을 차
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80년 전통의 체성분 분석기 기업 다니타가 있
는 일본에서도 인바디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인바디의 경
쟁력을 확인할 수 있다.
차기철 대표는 현재 70% 수준의 수출 비중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
획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탄탄한 입지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5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5

를 굳힌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체성분 시장이 커지고 있는 유럽과 남미, 동남아
시아, 인도 등으로 수출 지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바디는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유럽과 인도, 남미 등에서 맞춤형 마케팅을 펼치며 하나하
나 목표를 실현해나가는 중이다.

인바디는 코트라 전문위원 그리고 코트라 무역관과 함께 유럽 의료 시장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유럽 에이전시를 대상으로 설명회와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 최적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장소는 유럽 각국에
서 가장 모이기 쉬운 장소이면서 테러 위험이 없는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선정되
었다.

2016년 6월 인바디는 ‘Learn InBody Europe 2016’ 이라는 이름을 걸고 유럽 20
개국 에이전시 대표들을 초청해 유럽 시장 진출 전략 마련을 마련하고, 각국 마케
팅 활동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드리드 무역관은 유럽 의료 시장에 조
예가 깊은 연사를 초청해 행사에 참여한 에이전트들이 시장 분석과 마케팅 전략
수립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3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또한 행사 개최를 위한 준비 작업은 물론, 행사 현장을 담은 홍보 영상을 제작해
이번 행사가 일회성이 아닌 인바디 마케팅 툴이 될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스페인 시장 진출에 필요한 의료 시장 보고서를 작성해 유럽과 스
페인 시장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이에 힘입어 인바디의 유럽 판
매는 성장세를 기록했고, 스페인에서 20 16년 상반기에 전년도 수출의 3분의 2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 최대 잠재 시장 인도에 법인 설립
인도 지역은 주요 병원과 피트니스 수에 비해 아직 크게 시장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피트니스 프랜차이즈 진입이 증가하고 있고, 인바디의 주
요 시장이라 할 수 있는 메디컬 체크업과 비만 관련 산업이 의료 관광과 어울려 점
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인바디는 세계 최대 잠재 시장으로 꼽히는 인도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코트
라 뭄바이 무역관과 함께 20 16년 1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인바디는 이
미 인도 총판 업체를 통해 판매를 진행해왔지만,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직
접 수출을 위한 법인을 설립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인도 총판권을 현지 유
통업체로부터 가져와야 했으므로 충돌이 불가피했다.
코트라 뭄바이 무역관과 인바디는 중재에 나서 기존 총판과 합의점을 찾았다. 기
존 총판은 뉴델리를 포함한 북부를 타깃으로 하고, 인바디 인도 법인은 중부 및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7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7

남부 지방을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기존 총판
업체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인도인 직원을 인바디로 채용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
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바디 인디아는 7월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직원을 채용
해 직접 판매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전년 동 분기 대비 약 10배의 수출 실적
을 달성할 수 있었다.

2016년 상반기에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인도 법인을 성공적으로 설립한 인바디
는 하반기에는 이를 바탕으로 더욱 본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다. 코트라 전문위
원과 뭄바이 무역관과 협의해 ‘Indian Dietetic Association’, ‘India Rehab & Care
Expo’ 등 5개의 전시회에 참가했고, ‘Body Power’, Physique Global’, ‘인도 법인
창립 행사’ 등 3회의 고객 행사를 개최했다.

인도 시장 개척이라는 중대 사업을 월드챔프와 함께한 인바디는 사업 참여 6개월
만에 약 1000%라는 놀라운 매출 상승을 이뤄냈다. 이는 인도 시장에서도 사후
서비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있어 기존 바이어들의 인바디 인도 법
인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시장 점유율 90%가 되는 날까지

2012년 월드챔프 사업자로 선정된 인바디는 그동안 남미와 모스크바 등에서도
맞춤형 마케팅 사업을 통해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남미 칠레에서는 몇 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월드챔프 사업을 활용해 시장 조사부터 다시 하며 재도전
한 결과 칠레라는 낯선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각종 전시회나 병원

3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등을 찾아다니며 무조건 제품을 노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주 고객인 의사,
영양사, 건강 관리사 등을 대상으로 인바디 제품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소개함
으로써 구전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현재 세계 7 0여 개국 수출, 세계 시장 점유율 7 0%를 차지하고 있는 체성분 분석
기 국내 1위이자 세계 1위 기업 인바디. 하지만 인바디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매
년 매출액의 10%를 연구 개발에 투자하며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신 성장 동력
을 창출해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글로벌 기업 인바디가 ‘세계 수출 점
유율 90%’를 달성하는 날을 기다린다.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9 Ⅰ. 전기·전자 | 인바디 39

세계적인 핀테크
기업을 향하여


04
스마트한 카드, 스마트한 세상
코나아이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토큰, 회수권? 아니 교통카드!

스마트카드, 핀테크 전문 기업 코나아이 조정일 대표는 한국정보통신㈜ 기술연구
소를 그만두고 1998년 코나아이를 창업했다. 당시 회사 이름은 케이비테크놀로
지였다. KEBT(Korea Electronic Bank Technology)란 영문 사명에서도 알 수 있
듯이 조정일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금융 기업이 되자’는 뚜렷한 목표가 있
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목표 지점을 향해 직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를 그만두
고 창업을 준비하던 중 IMF가 터졌다. 금융권뿐 아니라 투자자들까지 모두 힘들
어지면서 원래 구상했던 전자 화폐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우회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생각해낸 사업이 교통카드 시스템이었다. 조정일 대표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환승 가능한 현재의 교통카드와 거의 유사한 제품을 개발해
1998년 부산에서 런칭했다. 대중교통뿐 아니라 터널 요금 결제, 자판기 결제 등
사용처를 넓힌 코나아이의 교통카드 시스템은 큰 인기를 얻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다

타사 제품에 비해 편리하고 호환성이 높은 코나아이의 교통카드는 경쟁에서 앞
서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카드 사업은 한계에 부딪혔다. 지역별로
망을 다 깔아놓으면 더 이상 사업을 키울 수 없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는 데다, 대
기업들이 잇달아 시장에 뛰어들면서 포화 상태가 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
했다. 그것은 바로 IC카드였다.

4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2000년 초는 신용카드의 트렌드가 마그네틱 카드에서 I C카드로 전환
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I C카드가 보급돼 있었죠. 우리나
라에도 곧 IC카드 사용이 급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그네틱 카드는 데이터의 용량이 작아 다양한 데이터를 담을 수 없고, 보안 장치
가 없다 보니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대두됐다. 이런 마그네
틱 카드의 단점을 보완한 카드가 바로 IC카드였다.
‘코나’를 아세요?
IC카드는 전자화폐·신용·선불·직불카드·교통카드 등에 이용할 수 있고, 신분증이
나 운전면허증과 같은 개인정보까지도 한 곳에 모아 보다 진보된 다기능 카드로
사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스마트카드(Smar t Car d)’라고도 한다.
코나아이의 뛰어난 기술력은 스마트카드와 관련된 제품 생산은 물론 플랫폼까지
모두 공급하는 토털 솔루션 기업이라는 데 있다. 스마트카드 본체와 여기에 들어
가는 IC칩, 휴대폰의 유심 칩 등의 생산뿐만 아니라, 카드에 내장된 IC칩들이 금
융, 통신, 공공,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칩 운영 체계
(COS : Chip Oper ating System)를 독자적으로 개발해냈다.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3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3

“‘코나’는 IC 칩 운영 체계를 가리키는 브랜드 이름입니다. 스마트카드의
핵심 기술인 자바(JAVA) 오픈 플랫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로 커
피 생산지 자바, 코나 커피, 코리아 등의 다중적인 의미를 담았습니다.”

‘코나’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가 확산됨에 따라 2012년에는 ‘코나’에
International을 결합해 사명을 코나아이로 변경하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정체
성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코나아이 결제 플랫폼인 ‘코나’는 어떤 프로그램이 들어와도 자유롭게 호환될 수
있는 ‘객체지향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타 회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또
하나의 경쟁력은 EMV(세계 3대 신용 카드 회사인 Europay, Master카드, Visa카
드 등 3개사가 공동으로 결제하는 IC 카드의 표준 규격. 다른 카드 회사들도 이 규
격을 사용하고 있어 사실상의 국제 표준 규격이다) 인증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국
내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호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편리하
게 사용할 수 있다.

핀테크 시대를 열다

교통카드로 시작해 스마트카드를 거쳐 이제 코나아이는 핀테크 기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핀테크란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로, 정보기술
(IT)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 기술을 말한다. 핀테크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스마트폰에 내장된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

4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이 많아졌다. 손쉽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안성에 있어서 정
말 안전할까 하는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만큼 특화된 인증과 보안 기술이 필
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정일 대표는 미래를 예측하고 인증과 보안 영역에서 지속적인 기술력을 축적
해왔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개방형 결제 플랫폼 서비스인 코나머니
를 상용화했다.
“지금까지는 카드 시장의 주도권을 카드 발행 권한을 가진 금융사나 카
드 회사가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나머니는 카드 발행, 승인, 정산
등 결제의 모든 단계를 지원하는 개방형 결제 플랫폼입니다. 코나머니
가 앞으로 결제 시장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글로벌 시장의 벽을 뚫고
코나아이는 200 3년 각고의 노력 끝에 IC 칩 운영 체제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
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국내 기업들은 고가의 수입산 칩과 운영 체제를 쓰면서도 우리가 더
낮은 가격에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납품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죠. 결국 노르웨이 등의 북유
럽에서 저희 제품을 쓰자 국내에서도 하나 둘 코나아이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5
이 많아졌다. 손쉽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안성에 있어서 정
말 안전할까 하는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만큼 특화된 인증과 보안 기술이 필
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정일 대표는 미래를 예측하고 인증과 보안 영역에서 지속적인 기술력을 축적
해왔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개방형 결제 플랫폼 서비스인 코나머니
를 상용화했다.
“지금까지는 카드 시장의 주도권을 카드 발행 권한을 가진 금융사나 카
드 회사가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나머니는 카드 발행, 승인, 정산
등 결제의 모든 단계를 지원하는 개방형 결제 플랫폼입니다. 코나머니
가 앞으로 결제 시장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글로벌 시장의 벽을 뚫고
코나아이는 200 3년 각고의 노력 끝에 IC 칩 운영 체제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
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국내 기업들은 고가의 수입산 칩과 운영 체제를 쓰면서도 우리가 더
낮은 가격에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납품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죠. 결국 노르웨이 등의 북유
럽에서 저희 제품을 쓰자 국내에서도 하나 둘 코나아이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5

하지만 수출 초창기엔 고전의 연속이었다. 코나아이 브랜드가 전혀 알려지지 않
았던 데다 2002년부터 IC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유럽이 선진 기술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코나아이는 2007년 세계 1위 기
업인 네덜란드의 젬알토를 제치고 태국 정부의 전자주민 카드 입찰 사업을 따내
면서 해외 진출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스마트카드 분야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코나아이는 세계 5
대 기업 안에 드는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전체 매출 중 해외 수출이 약 70%에
이르고, 전 세계 약 9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코나아이의 국제적 경쟁력은 한
국 외에도 중국과 방글라데시에 연구센터를 운영해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즉각
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시장에서 코나라는 브랜드는 신뢰와 스피
드를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계가 주도하는 COS 분야에서 아시아 1위 기업을 넘어
세계 시장 1위로 올라서는 것이 코나아이의 궁극적인 목표다.

페루에 간 신입사원은 어떻게 되었나?

코나아이의 수출 스토리를 들어보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해외 진출 초창기, 외국에 있는 금융 카드사를 만나야 수
출이든 뭐든 할 텐데 접촉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이미 거래처가 있는 금융사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코나아이를 만나줄 리 만무했다. 영업사원들은 무작정 해
외 금융사로 찾아가 문전박대를 당하며 일년, 이년, 길게는 3년을 내다보고 영업
을 해서 하나하나 고객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4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조정일 대표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도전 정신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현실의 어려움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부딪쳐봐야 한다는 것.
“가령 우리 회사의 한 신입사원은 돌아올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비행
기 티켓만 한 장 들고 아무 연고도 없는 페루에 출장을 갔습니다. 거래
처를 뚫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지요. 그 신입사원은 어떻게 됐
을까요? 결국 거래처를 발굴해왔습니다. 이런 도전들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월드챔프와 함께 북미 시장 개척
코나아이는 201 3년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북미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 물론 이전
부터 북미 시장 진출에 큰 관심을 두고 기초적인 조사와 파트너 사 발굴을 자체적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7
조정일 대표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도전 정신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현실의 어려움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부딪쳐봐야 한다는 것.
“가령 우리 회사의 한 신입사원은 돌아올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비행
기 티켓만 한 장 들고 아무 연고도 없는 페루에 출장을 갔습니다. 거래
처를 뚫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지요. 그 신입사원은 어떻게 됐
을까요? 결국 거래처를 발굴해왔습니다. 이런 도전들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월드챔프와 함께 북미 시장 개척
코나아이는 201 3년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북미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 물론 이전
부터 북미 시장 진출에 큰 관심을 두고 기초적인 조사와 파트너 사 발굴을 자체적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7

으로 추진하긴 했지만, 보다 체계적인 시장 진출 로드맵의 수립과 현장 중심의 사
업 추진을 위해서는 코트라와의 협력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마침 코나
아이는 2013년 북미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던 차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핀테크 금융 기술 시장은 미국에서도 마찬가
지다. 코나아이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미국 핀테크 기술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Money 2020’, ‘Cartes Secure Connexions’,
‘EMV Migration Forum’ 등 주요 전시회 참관과 파급력 높은 전시회에 참가함으로
써 시장 신기술을 파악하고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2015년에는 월드챔프 사업의 지원을 통해 ‘Money 2020’에 대형 부스를 설
치해 코나아이의 신기술과 제품을 공격적으로 홍보했다. ‘Money 2020’은 전 세
계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핀테크 전시회다. 코나아이
는 글로벌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코나아이의 기존 사업인 IC칩과 카드뿐만 아니
라 신규 솔루션인 결제 서비스 및 인프라를 소개하면서 직접적인 세일즈 활동을
진행했다.

세계가 반한 코나아이의 기술력

한편 월드챔프 사업의 로드맵을 세울 때 코나아이는 미국 내 현지 영업 인력이 많
지 않은 특수성을 고려해 소수의 대형 카드 발급사를 타깃으로 마케팅 활동을 전
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시회를 통한 현장 마케팅 외에 북미 전체 지역에 영향

4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을 줄 수 있는 대형 메이저 카드 발급사를 한국 본사로 초청해 공장 방문 및 기술
교류 행사를 진행했다. 초청된 해외 카드 발급사들에게 코나아이의 뛰어난 기술
력을 직접 확인케 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고, 작은 프로젝트 수주를 시작으로 후
속 프로젝트를 준비해나간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따라 201 4년에 이어 20 15년에도 미국 카드 시장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CIP Card Group의 구매 담당 부사장과 매니저를 초청해 코나아이의 체계화된 국
내 공정을 소개하고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해 추가 프로젝트 및 타국 스마트여권
진출에 대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또한 세계적인 스마트카드, 스마트여권 발급 업
체인 Valid S.A.의 구매 담당자들을 초청해 신규 프로젝트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
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나가기로 했다.
코나아이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미국 은행 입점에 필요한 인증서 발급도 지원
받았다. 코나아이가 IC 칩이 내장된 카드를 미국의 샌탠더 은행에 입점시킬 때 이
에 필요한 관련 인증서 발급을 지원함으로써 입찰 조건을 충족시키고 제품 납품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샌탠더 은행은 코나아이 칩을 사용해 마스터카
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다.
코나아이와 월드챔프의 유기적인 협력과 노력에 힘입어 2014, 20 15년 코나아이
의 북미 수출은 급증했다. 특히 코나아이는 최근 급성장의 동력이 되었던 IC 칩과
스마트카드 진출에 머무르지 않고 토털 결제 솔루션과 모바일 결제 시스템 등으
로 영업을 확장해나가며 회사의 백년대계를 준비해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코나
아이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히든 챔피언에서 나아가 업계의 글로벌 리더로 성
장해나갈 것이다.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9 Ⅰ. 전기·전자 | 코나아이 49

세계의 중심에서
‘잭팟’을 터트리다


05
산업용 디스플레이 세계 1위 기업
코텍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코텍의 새 주인이 돼주시겠습니까?

“김 사장이 코텍을 맡아주면 고맙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려고요.”
“뜻은 감사하지만, 저는 아직 준비가 덜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2010년 여름. 환갑이 넘으면 은퇴해 여생을 즐기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코텍 창
업주 이한구 회장은 김영달 아이디스 대표이사에게 코텍을 맡아줄 것을 제의했
다. 세계 카지노 게임기 모니터 시장 1위 기업인 코텍은 충분히 매력적인 회사였
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김영달 대표는 아이디스 경영에 매진하느라 다른 곳을
쳐다볼 여력이 없었다.

“이제 준비가 됐습니다. 아직도 저에게 회사를 매각할 뜻이 있으십
니까?”
“물론입니다. 김 사장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2012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김영달 대표는 이한구 전 회장을 찾아갔다. 이한구 전 회장은 2년 동안
50여 업체를 미팅하며 매각을 타진했지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회사를 발전시
켜나갈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디스를 세계 1위 보안 솔루션 기업으
로 성장시킨 김영달 대표의 기술력과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해온 이한구 전 회장

5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은 김영달 회장이 제시한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여 3분 만에 계약이 성사됐다. 이
렇게 해서 코텍은 김영달 대표가 이끄는 아이디스 그룹의 자회사로 편입이 됐다.
내 인생에 잭팟은 없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잭팟을 꿈꾼다. 그러나 잭팟을 터트리는 카지노용 디스
플레이를 만드는 코텍의 창업자 이한구 회장은 잭팟과는 거리가 먼 인생 여정을
거쳐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자판기
사업에 도전한 그는 특유의 사업 수완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다른 기업
과 합작해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그동안 힘들게 모은 재산을 모
두 잃어버렸다.
그 후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오락실 게임용 모니터다. 당시 오락실 게임기는 일본에
서 기판을 사다가 텔레비전 모니터에 연결해 쓰던 수준이라 품질이 조악할 수밖
에 없었다. 이한구 회장은 198 7년 코텍을 설립하고 오락실 게임용 모니터를 생산
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 인기에 힘입어 일본으로 역수출까지 했는데, 엔
화 강세에 힘입어 대박을 터트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오락실 게임 모니터에만 안주할 수는 없었다. 오락실용 모니터
는 사양 산업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분야가 바로 카지노였다. 하지만 당
시만 해도 그는 카지노용 모니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현재 슬롯머신 모니
터의 87 %를 코텍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세계 1위 슬롯머신 제조업체 IGT(Inter-
national Game T echnology)와의 첫 만남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
Ⅰ. 전기·전자 | 코텍 53 Ⅰ. 전기·전자 | 코텍 53

무조건 ‘YES!’입니다

1994년 IGT의 구매 담당자가 슬롯머신 부품 개발을 의뢰하기 위해 대만과 일본
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IGT가 처음 찾아간 곳은 대기업들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기술도 까다롭고 규모가 작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른 업체를 찾다가 코텍까지 오게 된 것. 당시 IGT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색 보정 기술인 오토바이어스였다.


“당신네 회사에서 오토바이어스를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한구 회장은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오토바이어스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모니터의 품질이 나쁠 경우 조작을 의심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카지노에 있는 수백, 수천 대 모니터의 색상 차이를 없
애기 위해 오토바이어스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쨌든 “선무당이 사
람 잡는다”고 코텍은 IGT에서 제안한 오토바이어스 기술을 1년 6개월에 걸쳐 개
발한 끝에 자체 특허를 얻으면서 납품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IGT에 납품한 모니터 몇 대에서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이 회장은 고심 끝에 전량 회수를 결정했다. 리콜 비용이 1년 매출액과 맞먹는 금
액이었지만 그는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 사건으로
한동안 자금난에 시달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세계 1위 업체인 IGT와 신뢰를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코텍과 IGT는 20년 동안 함께 일

5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하고 있으며, 해외 다른 기업들과도 탄탄한 수주 라인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산업용 디스플레이 토털 솔루션 기업
코텍은 세계 슬롯머신(카지노)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이다. 세계 슬롯머신 제
조업체 1, 2위인 IG T와 아리스토크라트의 게임기에 코텍의 디스플레이를 각각
87%, 98.5 %씩 공급하고 있다. 카지노 산업이 발달한 북미 지역에서 코텍의 시장
점유율은 7 0%가 넘고, 세계 시장 점유율은 52 %에 이른다. 쉽게 말해 전 세계 슬
롯머신 2대 중 1대가 코텍 제품인 셈이다.
코텍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산업용 디스플레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산
업용 디스플레이는 일반 모니터보다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 연중 2 4시간 가동해
야 하기 때문에 먼지나 습도, 열 등에 강한 내구성을 지녀야 하고, 수많은 판돈이
Ⅰ. 전기·전자 | 코텍 55 Ⅰ. 전기·전자 | 코텍 55

오가는 카지노에서 조작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카지노에 있는 모든 슬롯머신
의 색상 차이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야 한다. 또 슬롯머신 회사마다 제품 사양도
제각각이라 주문자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김영달 대표는 코텍을 인수한 후 연구개발 인력을 두 배로 늘리는 등 R&D(연구
개발) 투자를 확대했다. 카지노 모니터의 고급화·대형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였다. 모니터 터치 기술팀을 새로 꾸리는 등 원천기술 확보에도 나섰다. 그 결과
코텍은 기존 슬롯머신 업계를 장악하고 있던 미국 회사들과 비교해 품질이 전혀
뒤지지 않으면서도 특수한 기능을 갖춘 새로운 모니터들을 꾸준히 개발할 수 있
었다. 산업용 디스플레이 분야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처럼 표준화된 제품이 아
니라 고객의 주문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다품종 소량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런 연
유로 코텍이 생산하는 모니터 종류만 해도 약 350가지에 이르고, 모니터 관련 특
허는 46개 정도가 된다.

슬롯머신 게임기(캐비닛)는 고객들이 게임을 하고 싶도록 구미를 당기려면 눈에
확 띄는 화려함을 갖춰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사이즈가 커지고, 화면은 선명
해지며, 평면에서 곡선으로, 2D에서 3D, 4D로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코텍
은 올해 2단 커브드(곡선형) 모니터와 84인치 대형 모니터를 출시한 데 이어 게임
용 의자에 앉으면 렌즈가 사람의 눈 위치를 인식해 3차원 영상을 보여주는 무안
경 3D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또한 단순한 디스플레이를 넘어 화려하고 세련된 느
낌을 줄 수 있는 디자인 영역까지 진출했다.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시장에 대비
하기 위해 코텍은 매년 50~60종류의 새로운 카지노용 모니터를 출시하고 있다.

5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슬롯머신용 모니터에서 이미 세계를 석권한 코텍은 전자칠판, 의료용 모니터, 항
공·선박·군용 모니터 분야로 점차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산업용 디스플레이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20 11년 전자칠판 시장에 진출한 코텍은 세계적
인 전자칠판 전문 회사인 스마트와 바코 등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초음파 진단
기에 들어가는 의료용 모니터 역시 업계 1위에 올랐다. 2 005년부터 초음파용 모
니터를 출시해 현재 GE와 지멘스 등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
는데, 지멘스는 초음파 진단기 모니터를 전량 코텍 것을 쓰고 있을 정도로 우수
한 품질을 자랑한다.
매출의 99%를 수출하는 기업
코텍은 전체 매출의 9 9%를 수출하는 기업이다. 전 세계 슬롯머신 1위 기업인 미
국 IG T를 비롯해 아리스토크라트, 코나미, WMS, 스필로 등 톱 10 가운데 9개 기
업이 코텍 모니터를 쓰고 있다.
가장 큰 시장은 카지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북미 지역이고, 그 다음은 유
럽이다. 그런 만큼 코텍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위치를 더
욱 공고히 하고 새로운 거래선을 개척하는 방향으로 해외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함 게임용 시장은 신제품이 선보이는 전시회가 중요한 거래
선이 된다. 코텍은 월드챔프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전시회 ‘Global Game E xpo(G2E)에 단독 부스로 참가했다. 코트라 LA무역관
은 전시회에서 코텍의 거래처와 미팅 스케줄을 조정하고, 잠재 바이어를 발굴해
Ⅰ. 전기·전자 | 코텍 57 Ⅰ. 전기·전자 | 코텍 57

정보를 취합하는 한편 경쟁사들의 제품 조사 및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는 등 적극
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미주 전시회를 통해 확실한 브랜드 입지를 다
진 결과 지속적으로 거래하고 있던 아리스토크라트사와 신제품 독점 계약이 성사
되면서 매출이 2배 가량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코텍은 2011년 월드챔프 사업에 참가하면서 영국에서 열리는 게임 전시회 ‘ICE
London’에 단독 부스로 참가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여러 회사들과 함께 공동 부
스를 사용하다 보니 전시 제품 수나 규모 면에서 협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2012
년부터 단독 부스로 규모를 키움으로써 코텍의 위상을 더욱 잘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코텍은 매년 이 전시회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브랜드 인
지도를 높이고 유력 글로벌 바이어들과 접촉하며 신규 거래선을 발굴하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월드챔프

코트라 해외무역관들은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다방면에서 코텍을 지원해주고 있
다. 가령 해외에서 기동력 있게 물품을 판매하려면 현지에 대형 창고가 필요한데,
코트라 무역관에서 미리 저렴한 가격으로 확보한 다음 대여해주는 식이다.

이 밖에도 코텍이 월드챔프에 참가하면서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신규 거래처를
한국으로 초대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코텍의 경우 미
국의 회사들과는 오랫동안 거래해오면서 왕래를 자주 한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
규모가 작은 유럽 쪽의 작은 회사들과는 그런 관계를 맺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런

5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데 월드챔프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기회를 가지면서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고, 실
질적으로 사업에서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 영국 업체에 이어 올해는 201 4년 코텍과 처음 거래한 체코 기업이 월드챔
프 프로그램을 통해 코텍을 방문했다. 코텍을 방문한 해외 기업들은 한결같이 시
설의 규모와 체계적인 시스템에 놀란다. 송도에 위치한 코텍은 연구부터 생산까
지 한 곳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게임용 모니터 회
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코텍은 단
지 이름만 알고 있던 한국의 작은 회사가 아니라 믿고 거래할 수 있는 듬직한 회
사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코텍은 앞으로도 코트라와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신뢰를 받는 산업용 디스플레이어 생산 업체로 도약해 세상의 중심에서 ‘잭팟’을
터트려나갈 것이다.
Ⅰ. 전기·전자 | 코텍 59 Ⅰ. 전기·전자 | 코텍 59

모바일 지문 인식을 넘어
생체 인식으로


06
영화 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크루셜텍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버림의 미학

삼성전자 재직 시절, 안건준 연구원은 광통신 분야의 핵심 멤버였다. 삼성에서 세
계 최초라 불릴 만한 굵직굵직한 연구에 참여했던 그는 기술력만 있으면 세계 최
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내 힘으로 세계 최초, 세계 최고가 되자!

1997년 삼성을 나온 그는 광통신 케이블 연결 모듈의 연구,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4년 만에 당시 세계 시장을 석권한 일본 제품보다 성능은 우수하면서 가격은
500분의 1에 불과한 광통신 모듈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현재 세계 1위 모바일
지문 인식 모듈 업체 크루셜텍은 2001년 이렇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에 마침 IT 호황까지 이어져 크루셜텍은 창업 8개월
만에 1,4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창업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IT 버블 붕괴라는 복병을 만난 것.
전 세계 통신 기업들이 광통신 투자 계획을 줄줄이 취소하면서 제품 주문이 뚝 끊
겼다. 아무리 회사가 잘나가도 시장 자체가 무너지니 소용이 없었다. 회사는 폐
업 위기에 몰렸다.

6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당시 조그만 방에 주말마다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결론은 ‘광통신을
버리자!’였죠. 나스닥 1~3위 기업이 다 광통신 회사고, 삼성도 광통신 하
겠다고 나설 때 그 어마어마한 기술들을 다 버렸습니다. 피눈물을 흘렸
죠. 하지만 그때 광통신을 끌어안고 있었으면 지금의 크루셜텍은 없었
을 겁니다.”
안건준 대표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당시의 결정을 ‘버림의 미학’으로 정의하
곤 한다.
또 한 번의 위기와 또 한 번의 결단
안건준 대표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광통신을 버리고 새로 찾은 무기는 모바
일이었다.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을 때지만, 통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
에게 휴대폰이 컴퓨터 기능을 대체할 미래가 올 것이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
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컴퓨터 마우스와 같은 역할을 할 부품이 필요한데, 휴
대폰이라는 작은 화면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연구에 연
구를 거듭한 결과 작은 버튼 위에 손가락 끝을 놓고 움직이면 빛이 움직임을 인식
해 마우스처럼 휴대전화 화면의 커서를 움직여주는 OTP(Optical TrackP ad)를 세
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 소니, 모토롤라 등 세계적인 기업에서 그
의 OTP에 열광했다. 그리고 2 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폰’으로도 유명한 캐나
다 림(RIM) 사의 블랙베리 폰에 OTP를 독점 공급하며 세계 시장 석권했다. 당시
크루셜텍의 OTP 세계 시장 점유율은 무려 80%에 이르렀다.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3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3

하지만 크루셜텍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화면 터치 방식의 안드로이드
와 아이폰이 대세가 되면서 블랙베리의 인기가 급속히 추락했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블랙베리 폰의 매출이 떨어지면서 크루셜텍도 함께 휘청거렸다. 2012
년부터 3년간 적자를 냈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안건준 대표는 “세계
1위이던 기업이 그렇게 빨리 어려워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는 법. 그는 이 쓰라린 경험을 통해 시
장 변화뿐 아니라 거래하는 상대 기업의 미래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
웠다. 이후 크루셜텍은 어느 한 기업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다수 바이어에 다수 아
이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다양한 제품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
하게 됐다.

생체 인식 전문 기업으로 재도약

“돈은 물과 같아서 잡고 있으면 다 빠져나갑니다. 흐르기 전에 그 돈을
다 써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3년간 어려울 때 미래를 위해 끊임
없이 투자한 것도 이 때문이죠.”


6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회사의 문을 닫느냐 마느냐의 기로. 3년 연속 적자를 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안 대표는 회사 보유 자금 1천억 원을 모두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뚝심을 발휘했
다. 이때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BTP(Biometric TrackPad) 개발이었다. BTP란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초소형 지문 인식 모듈, 즉 스마트폰의 지문 인식 장치를
말한다. BTP는 스마트폰 잠금 및 해제, 본인 인증, 결제 등을 할 수 있어 보안이 중
요한 핀테크 시대를 맞아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위기 속에서도 연구, 개발을 놓지 않았던 크루셜텍은 삼성전자와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용 지문 인식 장치 기술을 상용화하며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회사로
우뚝 섰다. 현재 크루셜텍의 지문 인식 모듈이 들어가는 스마트폰은 화웨이, 샤오
미, 구글(넥서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15개 업체의 6 0여 개에 이른다. “애플
빼고 다!”라는 안건준 대표의 자부심은 이런 근거에서 비롯된다.
퍼스트 무버 전략만이 살 길
설립 16년이 지났지만 안건준 대표의 벤처 마인드는 철두철미하다. 덩치가 커지
면서 중견기업으로 분류될 뿐 도전정신은 회사를 창업할 때 그대로라고 늘 강조
한다. 크루셜텍의 전체 직원 중 연구·개발 인력이 7 0%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
은 안건준 대표의 마인드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크루셜텍이 보유한 지적재산권
은 1 ,2 00여 개에 이르고, 이 가운데 지문 인식 관련 특허만 400여 건이 넘는다.
안건준 대표는 또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자’는 사명감을 갖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에 없는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크루셜텍이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5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5

하는 일이다. 크루셜텍의 제품을 어느 기업에서 쓰면 그 업계 최초가 된다. 지금
까지 OPT, BTP가 그랬고, 앞으로도 이러한 행보는 계속 목격될 것이라고 안 대
표는 자신한다.

세계적으로 지문 인식 모듈 채택이 중저가 스마트폰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어 크루
셜텍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높다. 하지만 안건준 대표는 끊임없이 새로운 차세대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지문 인식에 이어 안면 인식, 홍채 인식 등 생체
인식 전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그 다음 목표는 생
체 인식에 기반한 보안 기술 전문 업체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저는 비밀 번호와 열쇠가 사라진 세상을 꿈꿉니다. 차문을 잡으면 순
식간에 지문이 인식돼 문이 열리고 시동까지 걸리죠. 집 앞에 서면 카
메라가 내 얼굴과 홍채를 인식해 자동으로 문을 열어줍니다. 크루셜텍
의 기술로 주변 사물이 나를 알아보는 세상이 옵니다. 지문 인식 기술
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시장은 세계 시장 하나뿐


“중국 시장, 한국 시장이 따로 없습니다. 시장은 세계 시장 하나뿐입니
다. 중소·중견 기업들이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국내 대기업을 뚫는 것
보다 해외 기업을 뚫는 게 훨씬 쉽습니다.”

6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일반적으로 내수 시장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다음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
는 수순을 밟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건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창업 초기
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창업 초기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크루셜텍은 창업 초기 국내 대기업에 휴대전화 카메라용 플래시 모듈을 납품하면
서 연간 50억 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해당 대기업의 휴대전화 판매 일정이
6개월 연기되면서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안 대표는 대기업에 종속되면 안 되
겠다는 생각을 갖고 외국으로 눈을 놀렸다.
외국 기업들은 다른 것 따지지 않고 기술만 좋으면 인정해줬다. 어차피 크루셜텍
이 갖고 있는 기술은 세계 최초, 세계 최고였다. 그런데 굳이 좁은 시장에서 경쟁
할 이유가 없었다. 안건준 대표에겐 시쳇말로 “해외가 더 쉬웠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나갔고, 현재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90%를 넘는 회
사로 자리매김했다.
코트라 월드챔프와 함께 중국으로!
크루셜텍이 해외 시장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길에 코트라 월드챔프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크루셜텍도 몇 년 사이에 급부상한 중국 시장에 일찌
감치 관심을 갖고 진출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중국 스마트폰 업체는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7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7

뚜렷하지 않고 희미할 때였다. 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려면 투자가 필요
한데, 이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투자를 한다는 건 큰 리스크였다. 이때 비용 부
담을 덜고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이 월드챔프
의 지원이었다.

크루셜텍은 월드챔프와 함께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 조사부터 시작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할 정도로 스마트폰 시장이 워낙 크고 복잡하다 보니 정확한 데
이터를 가진 보고서가 절실히 필요했다. 처음에는 광저우무역관에서 시장 조사를
담당했지만, 무역관에서 할 수 있는 시장 조사는 한계가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
았다. 무역관과 크루셜텍은 다소 비싸지만 글로벌 리서치 업체에서 발행하는 ‘가
트너’를 월드 챔프 비용으로 충당하기로 협의했고, 그 결과 중국 시장 진출의 베
이스가 되는 정확한 시장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6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세일즈랩 운영으로 ‘ 시’를 형성하다
크루셜텍의 중국 진출에 월드챔프가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세일
즈랩이다. 월드챔프 이전에도 크루셜텍은 중국에 세일즈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지
만, 직접 하는 부분은 많지 않고 리셀러들, 즉 대리점에 의존하고 있어 한계가 많
았다. 스마트폰 지문 인식 센서는 휴대폰 밖으로 노출되는 부품이기 때문에 기능
뿐만 아니라 모양이나 컬러 등 디자인적인 요소도 상당히 중요하다. 쉽게 말해 휴
대폰이 다르면 거기에 들어가는 지문 인식 장치도 다 달라야 한다.
이러한 고객사의 요구를 맞추려면 제조사와 고객사 엔지니어가 수시로 만나 조
정하는 창구가 필요했다. 또한 중국 사업에서는 ‘ 시’ 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
다. 현지 밀착 영업을 위해서는 이러한 역할을 해줄 세일즈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했다. 이렇게 해서 추후 판매 법인회사로까지 발전한 연락사무소가 심
천에 문을 열었다.
크루셜텍의 심천 연락사무소가 빠른 시일 안에 자리 잡는 데는 월드챔프의 도움
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지 직원 채용부터 법률, 보험 등 현지 사무소 운영에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제반 사항을 도맡아해줬다. 추후 심천에 법인을 만들
때도 광저우무역관이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크루셜텍은 월드챔프 사업의 모범 사례
사실 월드챔프는 처음에 B2C 기업에 맞춰 빌드업됐기 때문에 사업 초반에는 B2B
업체인 크루셜텍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가령 해외 마케팅을 위해서는 고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9
시’를 형성하다
크루셜텍의 중국 진출에 월드챔프가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세일
즈랩이다. 월드챔프 이전에도 크루셜텍은 중국에 세일즈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지
만, 직접 하는 부분은 많지 않고 리셀러들, 즉 대리점에 의존하고 있어 한계가 많
았다. 스마트폰 지문 인식 센서는 휴대폰 밖으로 노출되는 부품이기 때문에 기능
뿐만 아니라 모양이나 컬러 등 디자인적인 요소도 상당히 중요하다. 쉽게 말해 휴
대폰이 다르면 거기에 들어가는 지문 인식 장치도 다 달라야 한다.
이러한 고객사의 요구를 맞추려면 제조사와 고객사 엔지니어가 수시로 만나 조
정하는 창구가 필요했다. 또한 중국 사업에서는 ‘ 시’ 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
다. 현지 밀착 영업을 위해서는 이러한 역할을 해줄 세일즈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했다. 이렇게 해서 추후 판매 법인회사로까지 발전한 연락사무소가 심
천에 문을 열었다.
크루셜텍의 심천 연락사무소가 빠른 시일 안에 자리 잡는 데는 월드챔프의 도움
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지 직원 채용부터 법률, 보험 등 현지 사무소 운영에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제반 사항을 도맡아해줬다. 추후 심천에 법인을 만들
때도 광저우무역관이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크루셜텍은 월드챔프 사업의 모범 사례
사실 월드챔프는 처음에 B2C 기업에 맞춰 빌드업됐기 때문에 사업 초반에는 B2B
업체인 크루셜텍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가령 해외 마케팅을 위해서는 고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69

객사를 초청해 로드쇼 같은 것을 열어야 하는데, 제품이 공개되기 전에 이런 자리
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고객사의 기업 비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곤란
한 부분이 많았던 것.

이런 유사한 문제로 처음에는 크루셜텍과 무역관 사이에 마찰이 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3~4년의 튜닝 기간을 거치면서 무역관과 코트라 그리고 크루
셜텍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에 크루셜텍은 2014
년과 2015년 중국 진출에 큰 도움을 준 광저우무역관과 코트라 본사 중견기업지
원팀에 각각 감사패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크루셜텍은 월드챔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인 파일럿 단계부터 참여
한 데다 졸업 기업 대상에도 추가적으로 선정돼 현재 7년째 월드챔프와 함께하고
있다.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치열한 해외 시장에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손
발을 맞춰오면서 지금은 서두만 꺼내도 어떤 게 필요한지 서로 알아차릴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는 환상의 짝꿍이 됐다. 월드챔프는 크루셜텍에게 중국 시장 진출
도움이라는 사업적 성과뿐만 아니라, 기업과 코트라 무역관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시너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월드챔프 사업의 좋은 본보기로 기록될 것이다.

7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71 Ⅰ. 전기·전자 | 크루셜텍 71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Success Stories of Wor ld Champ Service
01 콘덴싱 기술로 따뜻한 세상을, 경동나비엔
02 세계 건설 현장을 누비는 ‘작은 거인’, 대모엔지니어링
03 농부의 마음으로 세계 시장을 일구다, 동양물산기업
04 세계의 길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상신브레이크
05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아이디스

기계·장비

콘덴싱 기술로
따뜻한 세상을


01
당신이 행복해지는 온도
경동나비엔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그때를 아십니까?

1961년 서울 마포아파트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일러
가 보급된 것이다. 이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연탄온수 보일러를
이용한 난방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경제 발전이 가속화한 1970년 후반에는 보
일러용 연료가 연탄에서 기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현재 ‘국가대표 보일러’라 불리고 있는 경동나비엔이 보일러 시장에 진출한 것
도 이러한 시기와 맞물렸다. 부산에서 왕표연탄을 운영하던 고 손도익 명예회장
(1920~2001년)은 조만간 액체 에너지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1978년 경
동나비엔(전 경동기계주식회사)을 설립했다.

경동보일러는 깡통보일러?


“가정용 절약형 연소기기를 보급함으로써 국리민복에 기여하겠다.”

고 손도익 명예회장은 부푼 꿈을 안고 보일러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꿈은 곧
바로 난관에 부딪쳤다. 사업 시작과 더불어 맞은 오일쇼크와, 의욕은 앞섰지만 경
험 부족으로 인해 초기 사업 진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당시는 ‘보일러 업계의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업체가 늘어났지만, 그 숫자에
비해 질적인 면에서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기름보일러는 크기가 무척

7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클 뿐만 아니라 기름도 굉장히 많이 소비돼 부유층에서만 사용됐다. 보일러 업계
에 새로 뛰어든 경동기계는 에너지가 절약되고 버너와 관체가 합치된 일체형의
콤팩트한 사각 보일러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보일러는 자신
들의 영업에 피해를 줄까 우려한 버너 판매상과 관체 판매상들의 강한 저항을 불
러일으켰다. “경동보일러는 깡통보일러”라는 악소문이 불에 기름을 붙인 듯 퍼져
나갔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전화위복
이라고 했던가.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위기가 기술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계
기가 되었다. 경동이 처음 내놓은 버너와 관체가 합치된 일체형의 콤팩트한 사각
보일러는 그 후 모든 업체들이 모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 가정용 사각
기름보일러의 효시가 되었다.
잃어버린 10년
“대기업들도 가스보일러 시장에 뛰어든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만의 차
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스
보일러의 보급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가스보일러의 개발 및 판매
경쟁이 가속화되자 경동나비엔의 경영진은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데 노심초
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ISH 전시회(국제 위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77
클 뿐만 아니라 기름도 굉장히 많이 소비돼 부유층에서만 사용됐다. 보일러 업계
에 새로 뛰어든 경동기계는 에너지가 절약되고 버너와 관체가 합치된 일체형의
콤팩트한 사각 보일러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보일러는 자신
들의 영업에 피해를 줄까 우려한 버너 판매상과 관체 판매상들의 강한 저항을 불
러일으켰다. “경동보일러는 깡통보일러”라는 악소문이 불에 기름을 붙인 듯 퍼져
나갔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전화위복
이라고 했던가.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위기가 기술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계
기가 되었다. 경동이 처음 내놓은 버너와 관체가 합치된 일체형의 콤팩트한 사각
보일러는 그 후 모든 업체들이 모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 가정용 사각
기름보일러의 효시가 되었다.
잃어버린 10년
“대기업들도 가스보일러 시장에 뛰어든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만의 차
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스
보일러의 보급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가스보일러의 개발 및 판매
경쟁이 가속화되자 경동나비엔의 경영진은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데 노심초
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ISH 전시회(국제 위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77

생·난방·공조 전시회)에 참가한 직원들로부터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네덜란드 네피트 사의 부스에서 성능이 우수한 가스보일러 제품 하나
를 발견했습니다. 콘덴싱이라는 보일러입니다.”

네피트 사는 콘덴싱 가스보일러를 개발한 후 이를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
역에 판매하며 유럽 시장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업체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고 손도익 명예회장은 이 기술이 회사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을 직감했다.

지금 당장 네덜란드로 가세요.

곧장 네덜란드로 날아간 경동나비엔은 벨트만 사장에게 기술 제휴를 요청했다.
두 회사의 기술 협약이 체결됨에 따라 경동나비엔은 콘덴싱 가스보일러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1988년 아시아 최초로 콘덴싱 보일러를 개발하며 고효율 에너
지 기기 시대를 열었다.

콘덴싱이란 ‘응축’을 의미하는 기술 용어다. 보일러가 연료를 태워 물을 데우면 뜨
거운 배기가스가 생기는데, 이것을 연도(일종의 굴뚝)를 통해 내보내지 않고 응축
시켜 재활용하는 것이다. 한 번 더 재활용을 하니 일반 보일러에 비해 평균 19%의
가스 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이 높다. 또한 배기가스를 적게 내보내니
온실 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인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크게 낮춰 친환경적이다.

7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하지만 국내 콘덴싱 보일러의 보급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가스보일러도
생소한 상황에서 콘덴싱 보일러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개념이었다. 당시만 해도
친환경이나 에너지 효율에 대한 인식이 낮을 때라 일반 보일러보다 가격이 두 배
나 비싼 콘덴싱보일러는 이후 10여 년간 소비자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 시기
가 바로 경동나비엔의 ‘잃어버린 10년’이다. 하지만 경동나비엔은 또 한 번의 전
화위복을 만들어냈다. 바로 일찍부터 해외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놀라거나 거부하거나
경동나비엔은 199 2년 업계 최초로 중국에 보일러를 수출하고, 19 94년에는 러시
아에 첫 수출을 이뤄냈다. 특히 보일러 시장이 정체기에 들어선 2 000년대에는
세계적인 콘덴싱 기술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 개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 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콘덴싱 온수기를 들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경동나비엔의 영업사원들은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79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79

“이렇게 작은 기계에서 어떻게 뜨거운 물이 한없이 나올 수가 있죠? 믿
을 수 없어요. 당신들 말에 속지 않겠습니다.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세요!”

미국 보일러 업계는 한국의 보일러가 아무리 좋다고 설명해도 믿어주질 않았다. 그
도 그럴 것이 미국과 한국의 온수기는 시스템이 완전히 달랐다. 집집마다 어른 키 높
이만한 커다란 물탱크를 들여놓고 물을 데워 쓰는 이른바 미국의 저탕식 온수기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뜨거운 물을 쓸 수가 없고, 물이 데워지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반면 콘덴싱 기술을 적용한 경동나비엔의 순간식 온수기는 빠른 시간에 물을 데울
수 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써도 언제나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마법을 부렸다.

작지만 성능이 매우 우수한 한국의 온수기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놀
라거나 거부하거나. 이런 초기의 선입견을 극복하고 경동나비엔은 2002년 국내
업계로는 최초로 미국 수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북미 시장은 예나 지금
이나 연 1천만 대의 온수기가 판매되는 세계 최대의 시장 중 하나다. 경동나비엔
은 2006년에는 미주 법인 설립과 함께 회사 이름을 경동보일러에서 경동나비엔
으로 바꾸며 글로벌 기업에 대한 의지를 더욱 확고히 다졌다. 경동나비엔에서 ‘나
비엔’은 ‘Navigation’과 ’Energy’+’Environment’의 합성어로 ‘환경과 에너지의 방
향을 제시한다’는 회사의 경영 이념을 담고 있다.

월드챔프와 함께 유럽으로

경동나비엔은 국내 업계 최초로 북미, 중국, 러시아에 진출했다. 하지만 글로벌 넘

8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버 원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일러의 본 고장인 유럽에서 더욱 단단한 입
지를 다져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오랜 난방 역사를 가진 유럽의 글로벌 기업
들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현지에서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했다.
경동나비엔은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월드챔프 사업의 지원을 받아 런던 무역관
과 함께 다양한 마케팅 행사를 벌였다. 매주 1회 발행되는 한인 신문인 <Korea
Weekly>에 전면 광고를 실어 주택을 보유한 한인들을 대상으로 경동나비엔의
제품들을 알려나갔다. 20 15년 11월에는 첼시 축구 구장에서 열린 ‘PHEX’ 전시회
에 참여했다. ‘PHEX’는 영국 현지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보일러 전문 전시회로,
주요 전시장이 아닌 축구 구장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이용자와 바이어
가 많이 찾아오는 특징이 있다. 경동나비엔은 월드챔프를 통해 적극적인 마케팅
을 진행해 20 15년 영국 수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월등히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혹한의 나라 러시아를 녹이다
경동나비엔은 러시아에 진출한 지 3년 만인 199 7년에 러시아 인증(GOST)을 받
으며 러시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오랫동안 ‘보일
러=유럽’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는 데다 콘덴싱 보일러와 같은 고급 제품에 대
한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낮은 가스 압력, 잦은 전압 변동, 영하 40도까지 떨
어지는 혹한 등 러시아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맞춰 보일러를 개발하는 것도 쉽
지 않았다.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81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81

하지만 경동나비엔은 성능은 뛰어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NAVIEN ACE’ 제품
을 개발해내며 꽁꽁 얼어붙었던 러시아 시장을 녹였다. ‘NAVIEN ACE’는 낮고 불규
칙한 가스 압력과 잦은 전압 변동에도 원활히 작동, 러시아 현지 인프라의 문제점을
극복한 제품으로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제품의 품질은 곧 실적으로 이어졌다. 유럽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러시아에서 벽걸이 보일러 시장 1위로 도약한 것이다.

경동나비엔은 러시아에서 벽걸이 보일러 시장 리딩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
해 월드챔프 사업을 적극 활용했다. 러시아 시장은 각 지역별, 민족별로 상이한 난
방 문화를 갖고 있어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현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기반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경동나비엔은 모스크바 무역관을 통해 러시
아 현지 상황과 정확한 시장 분석을 제공받아 정확한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공략
할 수 있는 마케팅 활동을 계획할 수 있었다.

경동나비엔과 모스크바 무역관은 현지화 전략을 위해 각 지역별로 마케팅 방법을
차별화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를 7개 주요 지역으로 구분해, 극동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다양한 러시아 지방 문화 맞춤형 전략을 수립했다. 1년에 70회가 넘는 지


8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방별 기술 세미나와 영업 세미나를 수시로 진행해 신제품을 시연하고, 제품에 대
한 정보와 설치 기술 등을 제공했다.
이 밖에 러시아 법인 계약업체 모스크바 초청 포럼, ‘AQUA THERM MOSCOW’ 전
시회 참가, 우수 딜러 한국 초청 등의 다양한 행사를 통해 경동나비엔은 전 세계에
자사의 우수한 기술력을 알리고, 각 지역별 파트너 사들과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
다. 이러한 현지 맞춤형 마케팅을 통해 경동나비엔의 20 15년 러시아 매출액은 전
년도에 비해 4 2 %나 증가했고, 보일러 10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국가대표의 기록 경신은 계속된다
경동나비엔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은 현장에서 답을 찾은 결과였다. 세계적
인 기술력을 갖췄다고 해도 소비자의 니즈나 각 국가마다 상이한 난방 문화, 기
반 시설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시장에서의 성공은 불가능했다. 경동나비엔
은 철저한 사전 준비를 바탕으로 각 국가에 맞는 최적의 제품을 개발해 시장 1위
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경동나비엔은 북미 시장 콘덴싱 보일러 및 온수기 시장 1위, 러시아 벽걸이 보일
러 시장 1위, 중국 벽걸이 보일러 10대 브랜드 선정, 국내 보일러 수출액의 71.8%
를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글로벌 성과를 기록하며 ‘국가대표 보일러’라는 타이틀
에 걸맞은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202 0년 글로벌 보일러 시장 넘버 원을 목표로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경동나비엔. 경동나비엔의 보일러가 있어 세
상은 오늘도 따뜻하다.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83 Ⅱ. 기계·장비 | 경동나비엔 83

세계 건설 현장을 누비는
‘작은 거인’


02
견고한 유럽의 성문을 두드리다
대모엔지니어링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넌 성공할 놈이야

친구들은 모두 중학교에 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교복을 맞추고 책가방을 사느
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소년은 교복을 맞추러 가는 대신 집 한쪽에서 구
두통을 만들고 있었다. 중학교를 포기하고 밥벌이를 위해 구두를 닦으러 나설 참
이었다. 그런 모습을 아버지는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었다.

중학교에 갈 돈이 없어 구두닦이에 나서려고 했던 소년은 “넌 성공할 놈이야”라
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총명하고 부지런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고향에서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소년은 학교를 다니며 학습지를 판
매해 생활비를 벌었다.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유한공업고등학교. 학
비는 무료였지만 생활비를 마련할 길이 없던 소년은 또 한 번 군 장학금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학업을 이어간 소년은 결심한다.

“내가 받은 만큼 언젠가 나도 꼭 베푸리라.”

이 소년은 어른이 되어 대모엔지니어링이라는 굴삭기 부착 장비 회사를 세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킨다. 모교에 해외 연수 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학
생들에게 글로벌 리더로서의 꿈을 키워주고 있다.

8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타고난 장사꾼
어릴 때부터 장사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한 대모엔지니어링 이원
해 대표가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군대에서
헬리콥터 정비 보직을 맡았던 그는 제대 후 굴삭기를 비롯해 건설 기계를 수입하
던 수산주식회사(현 수산중공업)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한국의 건설 중장비 기
계는 100%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국산이라고 하는 것도 대부분 일본의
복제품이었다.
이원해 대표는 국내 기술로 독자적인 제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198 9년 대
모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그리고 특유의 도전 정신과 앞선 기술로 국산 제품 개
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작은 중소기업이 시장에 진출하기란 그때나 지금이나 어
렵긴 마찬가지였다. 좋은 제품을 개발했지만 판로에 애를 먹던 이원해 대표는
199 2년 현대중공업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때의 일화
는 이원해 대표의 사업가적인 기질을 엿보게 해준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공급 계약을 체결한 회사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 회사가 부도가 나버린 겁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납품받은 재고
가 산더미처럼 창고에 쌓여 있는데, 그걸 처리하지도 못한 채 공급 업
체를 잃어버린 난감한 상황이었죠. 지금이 인생에 두 번 오기 힘든 기
회라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말해주더군요. 주저 없이 재고 분량을 구매
해 처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대신 우리 회사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자
고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87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87

생긴 지 얼마 안 된 중소기업이 기존의 재고를 다 처리해주겠다는 배포를 보이기
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원해 대표는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안
목으로 미래를 내다보았다. 이렇게 해서 현대중공업과 대모엔지니어링은 지금까
지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무작정 독일로 날아가다

대모엔지니어링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이원해 대표는 한국이 선진국에
가까워질수록 중장비가 사용되는 횟수는 적어질 것이고, 시장은 점차 협소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오로지 수출만이 살 길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수출을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는 겁니
다.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요.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
니다 독일에 유명한 건설 기계 전시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예
요. 제가 좀 돈키호테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죠.”

1992년, 이원해 대표가 혈혈단신 찾아간 전시회가 바로 오늘날까지도 세계 3대
건설 기계 전시회 중 하나로 꼽히는 ‘바우마 전시회’다. 대모엔지니어링의 부스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직원 한 명조차도 대동하지 않은 그는 전시회장을 돌아다니
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만들어온 팸플릿을 나누어주었다. 돌아오는 비

8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행기 안, 그의 손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은 희망으로
꽉 차 있었다.
“바우마 전시회는 제게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습니다. 막연하게 꿈꾸었
던 해외 수출에 대한 열망이 더욱 뜨겁게 솟아올랐죠.”
이후 수출에 대한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이원해 대표는 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현대중공업과 파트너십을 이뤄 점차 수출 지역을 확대해나갈 수 있었다.
독자 모델로 차별화
대모엔지니어링은 유압 어태치먼트(부착) 전문 제조 판매 회사다. 어태치먼트란,
굴삭기 등의 건설 기계에 부착해 다양한 작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품이다. 대모
엔지리어링은 아스팔트나 암반을 깨트리는 브레이커, 건물의 콘크리트 등을 부수
는 크라샤, 다양한 용도에 맞게 부착 장비를 자동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주는 퀵커
플러, 고철 절단기, 폐차 기계, 파지나 쓰레기를 줍는 기계, 모래 등을 운반하는 기
계, 철가루를 청소하는 자석 등 약 12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업체가 부품을 만들거나 조립해 납품하는 것에 비해 대모엔지니어
링은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해 제품의 설계부터 생산, 마케팅, 품질 관리, 해외 판
매까지 직접 제공하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솔루션을 갖춘 회
사는 세계에서도 몇 군데 안 될 정도로 선진적인 시스템을 자랑한다. 이 외에도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89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89

대모엔지니어링은 성능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접목해 호평을 받고 있다. 다품
종 소량 생산으로 고객 맞춤형이 가능하다는 점도 대모엔지니어링의 장점이다.

대모엔지니어링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국내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과 사업 제휴를 하고 있다. 또한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2000
년부터 차례로 미국, 중국, 유럽 법인을 세우고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했다. 대
모엔지니어링이 현재 수출하고 있는 곳은 45개 국에 달한다. 수출 지역도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미국, 중국, 아시아, 유럽, 중동, 러시아, 남미 등 골고루 분
포돼 있다. 특히 미국 아스텍 그룹의 중장비 제조업체인 BTI 사와는 2005년부
터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북미 쪽에 독점으로 공급하고 있다. 또한 인도 타타자
동차와 히타치건설이 합작한 굴삭기 제조업체인 타타히타치 사와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 생산)을 통해 인도 시장 점유율 1위
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의 관문을 뚫기 위하여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건설 장비도 유럽이 가장 선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
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으려면 유럽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 만큼
유럽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시장 또한 매우 보수적
이어서 아무리 기술력이 좋다고 해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유럽 시장에 진입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길게 두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9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대모엔지니어링은 201 4년부터 월드챔프 사업의 지원으로 꾸준히 유럽 시장을 공
략해왔다. 유럽 중에서도 세계 1위 업체가 있는 독일에서 집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유럽에서도 제일 기술력이 우수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독일과 거래를
하는 것 자체로도 홍보가 될 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다른 나라로도 파급 효과가 이
어질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올해 4월 독일에서 열린 건설 기계 전시회인 ‘바우마 전
시회’였다. 3년마다 열리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이 전시회에서 성과를 내기 위
해 월드챔프 사업이 시작된 2년 전부터 대모엔지니어링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91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91

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 작업을 해나갔다. 독일 시장 공략을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된 <바우 매거진>에 2년 간 꾸준히 광고를 게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단계별 마케팅으로 승부하라

또한 올해 전시회에는 그간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던 전
문위원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에서 신선한 제안을 해옴으로써 더욱 성황을 이
룰 수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단계별 마케팅’이었다. 전시회 이전과 이후에 별도
의 마케팅을 벌여 전시회의 성과를 극대화하자는 전략이었다. 대모엔지니어링
은 ‘바우마 전시회’가 열리기 한 달 전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
화를 받았다.

“여기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입니다. 며칠 후 독일에서 ‘재활용협회’ 모
임이 열릴 예정인데 대모엔지니어링도 참석하면 어떨까요? 한 달 후에
있을 전시회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9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의 소개로 참가한 이 모임에서 대모엔지니어링은 회사 소개
자료를 배포하며 한 달 후에 있을 전시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대모엔지니어
링 부스에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후속 작업으로는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 부근의 호텔에서 ‘신제품 홍보 설명회’를
통해 별도의 고객 초청 행사를 병행했다. 또한 전시회 다음달에 고객들을 한국으
로 초청해 창립 행사를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고객사들의 일정이 많지 않아 창립
초청 행사는 치러지지 못했지만, 대모엔지니어링은 향후 적절한 시기에 이번 전
시회를 통해 확보한 잠재 고객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독일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으로 대모엔지니어링은 독일에서 브랜
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아무것도 없는 시장에서 잠재 고객 리스트가 형
성됐고, 그 가운데 한 업체와는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은
잠재 고객 선정 작업뿐만 아니라 전시회 기간 내내 부스에 나와 직접 방문객들과
미팅을 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예기치 못한 성과도 거두었다. 독일에서의 꾸준한 잡
지 광고와 전시회를 통해 대모엔지니어링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은 건설 파쇄용
어태치먼트 전문 잡지인 <PDI>에서 올해 한국을 직접 방문해 취재를 한 것이다.
2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기사는 단순히 제품 소개가 아니라 대모엔지니어링의 설
립 과정과 경영 철학 등이 포함된 깊이 있는 기사로, 해외 언론에 처음으로 비중
있게 다뤄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93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93

월드챔프는 행운의 여신

대모엔지니어링은 진입 장벽이 높은 유럽, 그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시장으로
일컬어지는 독일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가고 있다. 그 역사적인 과정에 월드챔
프 사업이 함께하고 있다. 대모엔지니어링 해외 영업 담당자들은 월드챔프의 지
원이 있었기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보도 미흡하고 해외
네트워크 형성도 어려운 중소기업으로서는 당장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사업에 예
산을 쓰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지원금 외에도 유럽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끈끈한 동
료애로 함께 울고 웃은 전문위원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을 만날 수 있
었던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꼭 감사의 인사
를 전하고 싶습니다.”

9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95 Ⅱ. 기계·장비 | 대모엔지니어링 95

농부의 마음으로
세계 시장을 일구다


03
40년 농기계 생산 외길
동양물산기업(주)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금수저 vs. 농부
김희용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는 요즘 말로 ‘금수저’ 출신이다. 벽산건설의 창업
주인 고 김인득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선친이 195 1년 창업한 동양물산(62년 동양
물산기업으로 변경)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금수저’를 입에 물고 안이하게 회사를 경영했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농기계 생산 업체인 동양물산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 7년 대표이사
로 취임한 이후 그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농업 기계화를 통한 ‘복지 농촌’에 대
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파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6 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글
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도대체 이 제품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 트랙터를 쓴 지 10년이 됐는데,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어요.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니까요.”
동양물산기업 직원들이 현장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도대체 고장이 나지 않는 제품’. 이것이 바로 동양물산기업 농기계를 대표하는 말
이다.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의 농기계 전문 업체인 동양물산기업은 창사 이래
9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9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지금까지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 품질과 사양 면에서 최고의 제품을 생산해내
며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트랙터의 핵심 부품인 트랜스액슬 분야에서 속도 변경과 전후방 작업기 장착이
가능한 중소형 HST(유압식무단변속장치) 트랙터와 100마력 파워셔틀 트랙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2 004년 농기계 업계에서는 유일하게 정부의 우수제조기술
연구센터(A T C)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201 3년에는 국내 생산 수준이 7 0마력에 머무는 트랙터 시장에서 자체 기
술로 아시아 최초로 최고급 사양인 150마력 트랙터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 경쟁
력도 더욱 커졌다.
“유럽 제품과 비교했을 때 전혀 성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마력의 다른 제품들에 비해 가벼운 데도 안정성이 있는데
요? 뿐만 아니라 내부의 여러 장치들이 운전자를 생각해 편안하게 설계
돼 있어 오랜 시간 일해도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유럽 최대의 농업 국가인 프랑스의 농기계 잡지 <Agrilcole>에 실린 글의 일부
다. 이 잡지는 동양물산에서 따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자체적으로 150마력 트
랙터 TX1500의 테스트를 실시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대서특필하며 이례적인 관
심을 표명했다.
99 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99 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
농기계에 디자인을 입히다
김희용 대표는 농기계 제품에 ‘스타일 디자인’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다. 이전까
지만 해도 농기계 제품의 디자인이라 하면 그저 부품을 가려주는 사각 모양의 뚜
껑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쳐 단지 뚜껑에 불과했던 농기계는 처음
으로 리드미컬한 곡선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농기계의 디자인 개념은
서양에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디자인을 처음 접목했을 때는 회사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어요. 하
지만 제가 강하게 밀어부쳤죠. ‘T483’, ‘T993’ 트랙터는 농기계 제품으
로는 처음으로 우수산업디자인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국내 농기계 디
자인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해외 업체들도 우리를 벤치마킹할
정도예요. 특히 스타일과 디자인에 민감한 유럽에서 우리 제품의 인기
가 높습니다.”
김희용 대표가 농기계에 디자인을 접목한 것은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상업미
술을 전공한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경영자와 만화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
합 같지만, 그는 만화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만화가협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기
도 하다. 만화가들이 선물한 국내 만화 캐릭터 모음 병풍은 그가 가장 아끼는 보
물 1호라고 한다.
10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농기계에 디자인을 입히다
김희용 대표는 농기계 제품에 ‘스타일 디자인’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다. 이전까
지만 해도 농기계 제품의 디자인이라 하면 그저 부품을 가려주는 사각 모양의 뚜
껑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쳐 단지 뚜껑에 불과했던 농기계는 처음
으로 리드미컬한 곡선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농기계의 디자인 개념은
서양에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디자인을 처음 접목했을 때는 회사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어요. 하
지만 제가 강하게 밀어부쳤죠. ‘T483’, ‘T993’ 트랙터는 농기계 제품으
로는 처음으로 우수산업디자인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국내 농기계 디
자인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해외 업체들도 우리를 벤치마킹할
정도예요. 특히 스타일과 디자인에 민감한 유럽에서 우리 제품의 인기
가 높습니다.”
김희용 대표가 농기계에 디자인을 접목한 것은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상업미
술을 전공한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경영자와 만화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
합 같지만, 그는 만화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만화가협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기
도 하다. 만화가들이 선물한 국내 만화 캐릭터 모음 병풍은 그가 가장 아끼는 보
물 1호라고 한다.
10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101 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
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전북 익산에 최첨
단 시설을 갖춘 공장을 신축하며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 결과 2 000년에는 동종 업계 최초로 ‘5천만 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이제 동양
물산기업은 내수 시장 판매보다 해외 수출이 더 많은 중견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
재 6 0여 개국에 1,76 0여억 원을 수출하고 있으며 해마다 2 0%씩 수출액이 증가
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절반에 달한다.
프랑스여! 미워도 다시 한 번
동양물산기업 수출 금액의 7 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도 코트라 달
라스 무역관이 함께 했다. 월드챔프 사업에 참가한 201 4년에는 미국 수출 규모가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서는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미국과 중국 진출에 성공한 동양물산기업은 전통적인 농업 국가로 연 10만대 이
상 농기계가 생산되는 유럽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프랑스는 유럽 최
대의 농업 국가로서, 유럽을 리드하는 상징적인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는
세계 농기계의 기술력과 트렌드의 시험장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성공하면 유럽 전
체에서 성공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동양물산기업처럼 역량 있는 중견기업조차 프랑스에서 단독으로 해외 영
업을 펼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프랑스 시장이 워낙 보수적인 데다 언어와 문
화 차이도 크고,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 비용 또한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10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월드챔프 성공사례집

103 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
전시회 내내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바로 동양물산의 제품이 선보인
TYM 브랜드였다. 전시회의 성과는 놀라웠다. 신제품 TS25와 TX1500에 대한 반
응이 특히 뜨거웠다. 일반 방문객도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 존을 마련
해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성공했다.
파리무역관은 동양물산기업의 훌륭한 지사
월드챔프는 부스의 설치뿐만 아니라 바이어 섭외까지 도맡아 해주며 동양물산기
업의 지사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네이티브가 가능한 파리무역관의 한국인 직원
과 프랑스인 직원이 발 벗고 나서서 수백 개 딜러 업체들을 일일히 검색해 메일을
보내고 카달로그를 부쳐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0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10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105 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Ⅱ. 기계·장비 | 동양물산기업(주)
세계의 길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04
브레이크 외길로 달려온 40년
상신브레이크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달리기 위해선 멈춰야 한다

자동차의 부품은 3만여 가지가 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 2만9천여 개 의 부품은 자
동차의 전진, 즉 달리기 위한 부품이다. 반면 나머지 3% 정도는 차를 세우는 브
레이크 부품이다.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멈출 것을 믿기에 가능한 것. 자동차의 안
전한 질주 뒤에는 상신브레이크가 있다. 1975년 창립 이래 브레이크라는 외길을
달려온 상신브레이크. 하지만 세계로 향하는 상신브레이크의 길에는 브레이크
가 없다.

출발은 대구의 작은 공장에서

상신브레이크(당시 상신화학공업)는 국산 자동차가 없던 시절인 1975년 대구에
서 출발했다. 창업주인 정도철 사장이 상신화학공업사를 인수해 법인을 등록한
게 시작이었다. 상신화학공업사는 일본 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어 석면을 소재로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국내에 마찰재 관련
독자 기술은 전무했고, 일본에서 받은 MRS(습식 라이닝) 기술로 제품을 생산하
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렇다 할 기술력도, 고정 거래처도 없던 상신브레이크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이란에 수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란과 이라크의 전
쟁으로 미국으로부터 수입 제재를 받던 이란이 브레이크 패드를 구하기 위해 한
국을 찾았던 것. 당시 수출을 할 만한 기술도, 장소도 변변치 않았지만 상신브레이

10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크는 페르시아 상인에게 무조건 “예스”를 외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세로 외
국 차종 제품 개발에 도전해 이란 수출에 성공했다.
포니엑셀로 본격적인 OE 시대 개막
1980년대 초 보수 용품만을 생산하던 상신브레이크의 가장 큰 소망은 완성 차
업체에 OE(Original Equipment) 납품을 하는 것이었다. 197 0년대 말부터 조금씩
OE 납품을 해오다가 1985년 현대자동차의 포니엑셀로 본격적인 OE 납품 시대를
열었다. 당시 포니엑셀의 OE 납품 수주가 얼마나 간절한 염원이었는지를 보여주
는 일화가 있다. 일명 김효일 사장의 ‘6개월의 간청’이다.
OE 납품이 지상과제였던 시절, 상신브레이크는 우여곡절 끝에 한 가지 마찰 재질
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를 실험할 장비가 없었다. 자동차 회사 외에는 만도기계와
다른 한 업체에서만 이를 실험할 수 있는 ‘다이나모’라는 장비를 갖고 있었다. 테
스트를 해서 시험 성적서를 받아야 OE 납품을 위한 시도라도 해볼 텐데 답답한
노릇이었다. 당시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효일 사장은 생각 끝에 상신
브레이크의 납품 업체인 만도기계를 찾아갔다.
“몇날 며칠을 기다려 만도기계의 다이나모 담당 기술자를 만날 수 있었
습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죠. 하지만 그 정도 말을 듣고 순순
히 물러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매일 찾아가 얼굴을 보고 사
정을 했습니다.”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09
크는 페르시아 상인에게 무조건 “예스”를 외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세로 외
국 차종 제품 개발에 도전해 이란 수출에 성공했다.
포니엑셀로 본격적인 OE 시대 개막
1980년대 초 보수 용품만을 생산하던 상신브레이크의 가장 큰 소망은 완성 차
업체에 OE(Original Equipment) 납품을 하는 것이었다. 197 0년대 말부터 조금씩
OE 납품을 해오다가 1985년 현대자동차의 포니엑셀로 본격적인 OE 납품 시대를
열었다. 당시 포니엑셀의 OE 납품 수주가 얼마나 간절한 염원이었는지를 보여주
는 일화가 있다. 일명 김효일 사장의 ‘6개월의 간청’이다.
OE 납품이 지상과제였던 시절, 상신브레이크는 우여곡절 끝에 한 가지 마찰 재질
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를 실험할 장비가 없었다. 자동차 회사 외에는 만도기계와
다른 한 업체에서만 이를 실험할 수 있는 ‘다이나모’라는 장비를 갖고 있었다. 테
스트를 해서 시험 성적서를 받아야 OE 납품을 위한 시도라도 해볼 텐데 답답한
노릇이었다. 당시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효일 사장은 생각 끝에 상신
브레이크의 납품 업체인 만도기계를 찾아갔다.
“몇날 며칠을 기다려 만도기계의 다이나모 담당 기술자를 만날 수 있었
습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죠. 하지만 그 정도 말을 듣고 순순
히 물러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매일 찾아가 얼굴을 보고 사
정을 했습니다.”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09

그의 끈질긴 간청으로 6개월 만에 다이나모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험
성적서를 판독할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또 그 기술자에게 매달렸고, 상신브
레이크의 엔지니어들은 다이나모 성적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개선 샘플을 가져가 몇 번 더 시험해보는 과정에서 상신브레이크
의 재질을 높이 평가한 만도기계에서 국산화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습
니다. 당시 만도기계는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 업체였
어요. 이런 인연으로 상신브레이크는 현대자동차의 포니엑셀에 역사적
인 OE를 납품할 수 있게 된 거죠.”

Hi-Q에서 HARDRON까지

Hi-Q는 한국의 브레이크 마찰재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1987년 상표출원이 이루
어진 이래 전 세계 70개 이상 국가에 상표등록 혹은 출원했다. High Quality의 Hi
와 품질의 Q를 결합해 쉬우면서도 의미를 충분히 담은 Hi-Q는 상신브레이크 최
초의 고유 브랜드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브레이크 마찰재 브랜드명이 되었다.


11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2 004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시판된 HARDRON은 상신브레이크의 프리미엄
급 마찰재 이름이다. HARDRON은 200 1년 5월 출시된 레이싱용 브레이크 패드
HARDRON-Z에서 따왔다. 스포츠 주행용으로 개발된 HARDRON-Z는 고온에서
도 높은 마찰계수를 유지하고, 좋은 페달 필링을 가져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
다. 아울러 불모지와 같은 대한민국 레이싱 시장에서 해외 유수의 제품과 당당하
게 경쟁해 대한민국 브레이크의 뛰어난 품질을 대내외에 인정받으며, 국내 모터
스포츠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Non-Steel 재질로 가격도 높고, 품질이 보장되는 OE 수준의 프리미엄급 제품
HARDRON은 당시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브레이크 마찰재라는 인식을 소비자들
에게 강하게 심어주었고, 품질에 대한 호평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경쟁사들
도 뒤따라 프리미엄급 제품을 출시하는 등 상신브레이크가 프리미엄 시장의 선구
자 역할을 했다. 초기에 2000cc 이상 승용차만을 대상으로 출시한 HARDRON 제
품은 점차 그 대상을 확대해 지금은 국내 모든 차량에서 판매되고 있다.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2 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세계 5위 생산국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대자동차만 해도 생산량의 30%를 내수, 7 0%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었다. 국내 부품업체들도 활발한 해외지사망과 판매망을 구축함으로
써 국내 시장의 정체를 수출 시장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생산 및 판매 전략을 수
정해나가고 있었다.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1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1

하지만 당시만 해도 상신브레이크는 국내 시판 시장과 OE 수주에 전력하느라 수
출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제품도 국내 차종과 중
소형 일본차 중심으로, 중동의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고객이 요구하더라도 한
정된 제품만 공급할 수 있었다. 2002년 중국에 법인을 세우고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했으나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2000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효일 사장은 ‘승부는 해외에서 봐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해외로 나가는 우리 차 시장이 국내보다 2배 이상 큽니다. 품질이 낮은
중국산 부품도 북미 시장에 진출해 있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가 뭐가 부
족해서 국내 시장에만 있습니까?”

김효일 사장은 강력한 의지로 2006년 해외사업부를 출범시키고 해외 시장 공략
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2008년에는 2005년에 비해 무려 60% 이상의 수출
신장을 이룩했다. 2015년 무역의 날에는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전 세계 90
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상신브레이크는 기존의 Hi-Q, HARDRON 등의 마찰재
뿐만 아니라 브레이크 디스크, CV 조인트 등 비마찰재 제품으로 품목을 다양화해
일괄 공급이 가능한 종합 자동차 부품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또한
꾸준히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 초기 해외 업체와의 기술 제휴로 제품을 생산해
오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해외에 제조 기술과 선진 생산 설비를 수출하고 있다.

11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월드챔프와 세계 자동차 시장의 격전지로
상신브레이크는 20 10년 자동차 최대 시장인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매년
신차가 1,2 00만 대 이상 판매되고, 인구수만큼 차량을 보유한 미국 시장으로의
본격 진출이라는 점에서 미국 법인 설립은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60% 이
상을 미국산 차량이 차지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세계 자
동차 산업의 격전지 미국 시장에서 고군분투할 때 월드챔프 사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상신브레이크는 월드챔프 사업자로 지정된 20 11년부터 한 해도 거
르지 않고 북미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3

상신브레이크는 2010년 자동차 최대 시장인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매년
신차가 1,200만 대 이상 판매되고, 인구수만큼 차량을 보유한 미국 시장으로의
본격 진출이라는 점에서 미국 법인 설립은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60% 이
상을 미국산 차량이 차지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세계 자
동차 산업의 격전지 미국 시장에서 고군분투할 때 월드챔프 사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상신브레이크는 월드챔프 사업자로 지정된 2011년부터 한 해도 거
르지 않고 북미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3

상신브레이크 미국법인은 LA 무역관과 주기적으로 미팅을 하며 사업 진행 사항
과 지원 내역을 논의했다. 그 결과 월드챔프 사업 초창기에는 세일즈랩을 통한 마
케팅에 집중했으나 너무 전문적이고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어 중단하고, 이후로는
전시회와 세미나 참가, 바이어 방한 초청 행사, 바이어 공동 마케팅, 온라인 광고
및 홍보 등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우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 활동으로는 대형 부품 유통 업체들이 주
관하는 세미나의 스폰서십에 참여해 거래처와 관계 개선을 꾀하고 시장 동향을
파악했다. 대표적으로 2014년 SAE(브레이크 학회)에 스폰서십으로 참가해, 북미
의 대형 업체들과 함께 행사를 지원하고, 현재 마찰재 시장의 대세인 친환경 재
질(Copper Free)의 초기 동향에 관해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상신브레
이크는 다양한 관련 세미나에 참여함으로써 신제품 개발에 대한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11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특히 미국 진출 후발업체로서 기술력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던 상신브레
이크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AAPEX 전시회에 집중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뒀다.
A APEX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전시회로, 매년 수천 개
의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상신브레이크는 그동안 한국관에서 다
른 국내 업체들과 함께 소규모로 참가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201 4년 처음으로 대
규모 단독 부스를 마련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첫 단독 참가로 추가 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만큼 코트라 LA 무역관은 제작 업체
선정과 임차료 계약 등 사전 준비는 물론 현장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에 따라 주요 고객과 개별(priv ate) 미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미팅 시간을 조정하
고, VIP 미팅 룸을 예약하는 등 상신브레이크의 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첫 단독
참가의 성과가 예상보다 큼에 따라 상신브레이크는 201 4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A APEX에 단독 부스로 참가하고 있다. 상신브레이크 해외영업 담당자는 월드챔
프의 지원을 통해 A APEX에 집중하면서 북미 시장에서 미미했던 브랜드 인지도
가 급격히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월드챔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시장에서 상신브레이크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4~5년 만에 상신브레이크의 인
지도는 놀라울 만큼 향상되었습니다. 월드챔프를 통한 이러한 성과는
북미 잠재 바이어 유치와 중남미 바이어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데
도 큰 발판이 되었습니다.”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5
특히 미국 진출 후발업체로서 기술력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던 상신브레
이크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AAPEX 전시회에 집중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뒀다.
A APEX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전시회로, 매년 수천 개
의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상신브레이크는 그동안 한국관에서 다
른 국내 업체들과 함께 소규모로 참가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201 4년 처음으로 대
규모 단독 부스를 마련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첫 단독 참가로 추가 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만큼 코트라 LA 무역관은 제작 업체
선정과 임차료 계약 등 사전 준비는 물론 현장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에 따라 주요 고객과 개별(priv ate) 미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미팅 시간을 조정하
고, VIP 미팅 룸을 예약하는 등 상신브레이크의 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첫 단독
참가의 성과가 예상보다 큼에 따라 상신브레이크는 201 4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A APEX에 단독 부스로 참가하고 있다. 상신브레이크 해외영업 담당자는 월드챔
프의 지원을 통해 A APEX에 집중하면서 북미 시장에서 미미했던 브랜드 인지도
가 급격히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월드챔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시장에서 상신브레이크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4~5년 만에 상신브레이크의 인
지도는 놀라울 만큼 향상되었습니다. 월드챔프를 통한 이러한 성과는
북미 잠재 바이어 유치와 중남미 바이어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데
도 큰 발판이 되었습니다.”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5

한편 2015년에는 창사 40주년 기념으로 전 세계 바이어들을 국내로 초청해 대규
모 행사를 진행했다. 월드챔프 사업의 지원으로 마련된 고객 초청 행사에는 70개
국에서 200여 명의 바이어들이 상신브레이크 본사와 R&D센터를 방문해 앞선 기
술을 직접 확인하며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회를 가졌다.

브레이크를 넘다

상신브레이크는 차량의 제동 및 감속에 필요한 핵심 부품인 자동차 마찰재 국내
1위 기업이다. 석면 위주의 대한민국 브레이크 시장에서 새로운 도전과 기술 개
발을 통해 친환경 비석면 브레이크 패드를 개발하면서 시장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독자적 재질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브레이크 감성을 향상하는 NVH 튜닝 기술을
비롯해 규제가 더욱 엄격해지는 북미, 유럽의 환경 법규에 대응하는 친환경 마찰
재 기술, 최적의 배합 및 융합 기술, 안전성과 내마모성을 개선하는 원재료 융합
기술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원천 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상신브레이크는
이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전기 자동차 시대를
대비해 비접촉식 제동 보조장치리타더 개발을 추진 중이며, 5MW급 해상용 풍력
발전기 브레이크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7 Ⅱ. 기계·장비 | 상신브레이크 117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05
세계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보안 전문 기업
아이디스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실리콘밸리에서 길을 찾다

삶이란, 가끔 전혀 예기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대학교수를 꿈꾸던 카이스트의
한 대학원생은 우연히 방문한 실리콘밸리에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기업
가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1995년에 지도교수의 권유로 실리콘밸리에서 6개월 간 인턴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죠. 수백 수천 개의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이 기술력 하나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었습
니다. 엔지니어가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교수가 되는 길만이 최선이 아
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기술을 가지고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김영달 대표는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회사를 창
업하기로 했다. 당시는 벤처 붐이 크게 일던 시기였다. 일명 ‘닷컴’ 열풍이 불어 카
이스트에 다니던 많은 선후배들이 닷컴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
랐다. 시류를 타기보다는 기술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찾았다. 그리
고 모두가 닷컴 기업에 집중할 때 보안이라는 제조업으로 뛰어들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학교 경비실에 갔다가 수북이 쌓여 있는 비디오테이프
를 발견했어요. 보안 경비를 위해 학교 곳곳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
에서 꺼내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었죠.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비

12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디오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도 오랜 시간 녹화할 수 있고, 녹화된 화면
을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는 디지털 영상 제품을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199 7년 9월 창업한 아이디스는 1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첫 제품인 ‘IDR10 16’을 출
시했다. 비디오테이프 녹화 방식이던 VCR(Video Cassette Recor der)에서 하드 디
스크 저장 방식인 DVR(Digital Video Recor der)로 혁신이 이뤄진 것이다. 이전에
는 1초에 4장만 저장할 수 있었던 것이 16장까지 가능해졌고, 최대 16대의 카메라
를 연결할 수 있게 됐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였다.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시장
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삼성전자, 삼성테크윈, 하이트론, 에스원 등의 국내 기업
뿐만 아니라 지멘스, ADT 등 세계 1, 2위 기업에서 앞다퉈 아이디스 제품을 사갔다.
DVR 제조업체로 시작한 아이디스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보안 장비 산업
의 발전을 이끌어나갔다. DVR 제품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아이디스는 경쟁사
들보다 앞서 IP(Internet Protocol) 카메라 개발에 착수했다. DVR, 즉 녹화 장치
는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아날로그용이어서 화질이 떨어지는
등 단점이 많았다. 아이디스는 IP 카메라가 보낸 자료를 디지털로 저장하는 방식
인 NVR(Network Video Recor der)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또 한 번
혁신을 이루어냈다. NVR은 네트워크처럼 하나의 케이블로 연결되는 녹화 저장
방식으로, 아무리 카메라가 멀리 있어도 영상에 혼선이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1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1997년 9월 창업한 아이디스는 1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첫 제품인 ‘IDR1016’을 출
시했다. 비디오테이프 녹화 방식이던 VCR(Video Cassette Recorder)에서 하드 디
스크 저장 방식인 DVR(Digital Video Recorder)로 혁신이 이뤄진 것이다. 이전에
는 1초에 4장만 저장할 수 있었던 것이 16장까지 가능해졌고, 최대 16대의 카메라
를 연결할 수 있게 됐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였다.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시장
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삼성전자, 삼성테크윈, 하이트론, 에스원 등의 국내 기업
뿐만 아니라 지멘스, ADT 등 세계 1,2위 기업에서 앞다퉈 아이디스 제품을 사갔다.

DVR 제조업체로 시작한 아이디스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보안 장비 산업
의 발전을 이끌어나갔다. DVR 제품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아이디스는 경쟁사
들보다 앞서 IP(Internet Protocol) 카메라 개발에 착수했다. DVR, 즉 녹화 장치
는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아날로그용이어서 화질이 떨어지는
등 단점이 많았다. 아이디스는 IP 카메라가 보낸 자료를 디지털로 저장하는 방식
인 NVR(Network Video Recorder)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또 한 번
혁신을 이루어냈다. NVR은 네트워크처럼 하나의 케이블로 연결되는 녹화 저장
방식으로, 아무리 카메라가 멀리 있어도 영상에 혼선이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1

라 카메라 개수 또한 무한정 설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이디스의 IP 카메라
는 UHD(Ultra High Definition)급의 해상도로 마치 방송이나 영화를 보듯 선명한
화질을 자랑한다.

아이디스의 가장 큰 경쟁력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운용 체제까지도 생산하는 통
합 솔루션 기업이라는 데 있다. 영상 보안 장비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영상
을 촬영하는 카메라, NVR이라는 녹화 저장 장치, 그리고 그것을 중앙에서 관리하
는 VMS(Video Management System)라는 소프트웨어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회사가 세계적으로 몇 개 안 된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
업도 어떤 기업은 IP 카메라만 잘 만들고, 어떤 기업은 VMS만 잘한다. 아이디스
는 세 가지가 모두 가능할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완성도나 경쟁력 면에서 최
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부터 ‘기술 중심’을 모토로 삼은 아이디스는 제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고객들이 어떻게 하면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


12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일례로 IP 카메라와 NVR 시스템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했
던 고객들은 복잡한 디지털 방식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다이
렉트 IP 콘셉트였다. IP지만 기존 아날로그에서처럼 꽂으면 바로 나오는 쉽고 편리
한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플러그 앤 플레
이’(Plug and Play : 꽂기만 하면 작동한다)다. 시장에 이런 니즈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여러 회사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만들긴 했지만, 사용해본 사람들
은 아이디스 제품이야말로 ‘트루(true) 플러그 앤 플레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또 한 번의 도약
아이디스가 세계 최고의 통합 솔루션 보안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
다 다른 데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DVR이라는 한 길만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승승
가도를 달리는 기업이기에 중간에 이런저런 유혹도 많았지만, ‘기술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기에 중심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아이디스가 초창기에 자체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ODM(Original Devel-
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 생산) 방식을 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
다. 기술은 있었지만 경영 지식이 전혀 없는 엔지니어들이 마케팅을 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주효했다. 제품을 잘
팔 수 있는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이뤄 판매를 맡기고, 그들은 기술 개발에만 집중
함으로써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3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3

아이디스는 국내외 굴지의 회사들에 제품을 납품하며 초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자 아이디스와 협력
관계를 맺었던 선진 기업들이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갈아탄 것이다.

기존의 사업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디스 경영진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
했다. 이렇게 해서 2013년 아이디스의 자체 브랜드가 탄생했다. 아이디스는 2013
년 영국 법인을 시작으로 2015년에 미국 법인과 두바이 지사를 차례로 설립하며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아이디스는 기업을 시작할 때부터 세계 시
장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창업 이듬해인 1998년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20
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해외에서 탄탄하게 입지를 다져온 것이다. 하지
만 ODM 비즈니스가 아닌 아이디스라는 자체 브랜드의 수출은 이전과는 다른 접
근 방식이 필요했다. 해외에서, 특히 세계에서 가장 큰 보안 장비 시장인 미국에서
아이디스의 브랜드 인지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
음가짐이 필요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출발선상에 섰을 때 코트라 월
드챔프 사업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났다.

월드챔프와 함께 미국 시장 진출

아이디스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북미 지역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러 지역에 분산하기보다는 가장 영향력 있고 규모가 큰

12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북미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미 시장
은 경기 침체와 강력 사건, 학교 폭력 사건 등이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 보안 장비
시장의 성장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20 15년 달라스에 설립된 아이디스의 미국 법인 준비 과정부터 긴밀한 협조 관계
를 유지해온 아이디스와 달라스 무역관은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 진출을 위
한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했다. 그 결과 아이디스가
B2B 기업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전시회와 미디어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방향으로 로드맵을 구성했다. 특히 여러 가지 마케팅 방법 중 가장 효율적
이라고 판단된 전시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아이디스는 월드챔프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보안 전
시회인 ‘ICS West’와 ‘ASIS’에 2년 연속 참가해 브랜드 런칭을 알렸다. 20 15년에
는 자체 브랜드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 20 16년에는 부스의 규모를 더욱 키워,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5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5

주력 제품과 솔루션 별로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
추었다. 아이디스는 전시회를 통해 북미 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 4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CS West 2016’에서는 전년 대비 부스 방
문객이 7%나 늘었고, 세일즈 미팅 예약 건수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방문 고객
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명 중 1명은 이미 아이디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
답했다. 이러한 브랜드 인지도 상승 효과뿐 아니라 지금까지 아이디스 부스를 방
문했던 바이어들 가운데 15건 이상의 케이스가 신규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져 직


12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접적인 매출도 늘어났다.
전시회 참가와 함께 아이디스는 월드챔프 사업의 지원을 통해 보안 잡지와 온라
인 매체 등을 통해 광고와 PR 활동을 펼쳤다. 코트라 무역관은 현지 경험과 데이
터를 바탕으로 매체 광고의 효율을 분석해 효과가 낮은 매체를 배제시키고 더 효
과적인 잡지와 조회 수가 높은 온라인 매체 위주로 광고를 재편성했다. 또한 매체
사에서 진행하는 보안 산업 관련 어워드의 홍보 효과에 주목했고, 현지 PR 에이전
시를 통해 유력 보안 어워드에 참여하고 수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미국 톱 3 매체의 하나인 <1105 media>에서 주관하는 미국 유력 보안
시상식 ‘New Product of the Year 20 16’에서 아이디스 소프트웨어 기술이
Convergence & Integrated Software System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
었다. 이는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의 로드맵에 따라 PR 활동을 통해 아이디스 제품
의 우수성을 알리고 매체 사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9월에 열린 ‘ASIS’ 전시회에서 공식 수상을 했고, <1105 media>의 웹 사이트
와 잡지에 무료 홍보를 할 수 있는 특전도 받았다.
CSR 활동으로 새로운 방식의 해외 마케팅 개척
월드챔프 사업을 시작하며 아이디스와 코트라 달라스 무역관은 전시회나 광
고뿐만 아니라 좀 더 획기적이고 참신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자는 데 의견을 모
았다. 여러 방안을 고심한 달라스 무역관은 아이디스에 CSR(Corporate Social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7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7

Responsibility :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통한 마케팅을 제안했다. 지역 친화
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여보자는 방안이었다. 마침 아
이디스는 2017년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창조와 혁신을 통해 보다 안전하고 행
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기업의 새로운 미션을 재천명하고, 아이디스
의 제품이나 솔루션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이디스 미국 법인과 코트라 달라스 무역관 그리고 아이디스 고
객사인 Knight Security는 3자 협업을 통해 코펠 시의 코즈비 도서관에 아이디
스 제품들을 기부하기로 했다. 아이디스는 총 15대 이상의 카메라와 NVR 그리고
VMS 솔루션을 제공했다. 기부 물품은 5MP Super Fisheye 카메라와 최근 미국 보
안 시상식에서 우수 소프트웨어로 선정된 Smart UX Controls 기술, 그리고 IDIS
6232PS-S NVR 등 아이디스의 제품과 솔루션을 자연스럽게 홍보하고 성능을 자
랑할 수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즈비 도서관의 관계자는 “아이디스가 제공한 뛰어난 보안 설비를 통해 최상의
보안 환경을 갖추게 되어 매우 기쁘다. 이제 시민들이 도서관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CSR 활동은 사회 공헌이라는 1차적인 효과를 넘어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 이미지
를 강화할 수 있는 진보된 마케팅이다. 아이디스는 달라스 코즈비 도서관을 시작
으로 2017년에도 각 지역별 코트라 무역관 그리고 파트너 사들과 협력해 지속적
인 CSR 활동을 벌여 나갈 예정이다.

12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9 Ⅱ. 기계·장비 | 아이디스 129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01 전 세계에 부는 ‘네오’ 바람, 네오바이오텍
02 삶의 질을 높이는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으로, 대웅제약
03 국산 의료용 레이저 기기의 선구자, 루트로닉
04 세계 인류의 치아 건강을 위하여, 메가젠임플란트
05 ‘한국형 유산균’으로 승부하라!, 쎌바이오텍
06 완제 의약품으로 ‘제약 주권’을 실현하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Success Stories of Wor ld Champ Service

제약·
의료기기

전 세계에 부는
‘네오’ 바람


01
임플란트의 혁신을 심다
네오바이오텍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친구야, 도와줘!

임플란트와 시술도구 전문 회사인 네오바이오텍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있다. 바로
치과의사이자 기술 혁신의 브레인 허영구 회장과 전문경영인 김인호 사장이다.
두 사람은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학교에서 1, 2등을 다툰 라이벌이자 가장 친
한 친구로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다.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는 우정을 지켜온 두 사람은 중년이 되어 네오바이오텍
에서 다시 만났다. 2007년 허영구 회장이 임플란트 개발 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네오바이오텍을 인수하면서 김인호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2000년에
설립된 네오바이오텍은 합금회사의 자회사로 출발해 임플란트 개발을 위해 당
시 이 분야에서 가장 잘 나가던 치과의사인 허영구 회장을 영입했다. 하지만 경
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회사를 매각하기에 이르렀고, 허영구 회장이 이를 인수
하게 된 것이다.


“임플란트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회사를 인수하긴 했지만, 환자만 치료
해왔던 제가 경영에 대해 뭘 알겠어요. 회사를 살리긴 해야겠는데, 사업
경험은 없고… 고민이 많았죠. 그때 바로 인호가 떠올랐어요.”

당시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마케팅 담당 간부로 일하고 있던 김인호 사장은 친구
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13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인호는 학창 시절 가정 형편이 많이 어려웠어요. 어려서 부모님과도
떨어져 살았고, 또래보다 학교도 몇 년 늦게 들어왔는데 늘 밝고 긍정적
이었죠. 치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했어요.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그런 인호를 누구보다 믿
고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임플란트에서 치과의 미래를 보다
치과대학을 졸업한 허영구 회장은 경남 의령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그러다가 개
업 3년차가 되던 19 90년도에 임플란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임플란트에 대해 알
아가면서 그는 치과의 미래는 바로 임플란트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 임플란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공부를 하기 위
해서는 유학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개업 5년차였는데, 저희 병원이 전국에서 가장 잘 되는 치과 가
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 치과를 처분한다고 하자 모든 사람들이 반대
하고 나섰죠. 하지만 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병원을 싼 값에
넘기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35
“인호는 학창 시절 가정 형편이 많이 어려웠어요. 어려서 부모님과도
떨어져 살았고, 또래보다 학교도 몇 년 늦게 들어왔는데 늘 밝고 긍정적
이었죠. 치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했어요.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그런 인호를 누구보다 믿
고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임플란트에서 치과의 미래를 보다
치과대학을 졸업한 허영구 회장은 경남 의령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그러다가 개
업 3년차가 되던 19 90년도에 임플란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임플란트에 대해 알
아가면서 그는 치과의 미래는 바로 임플란트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 임플란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공부를 하기 위
해서는 유학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개업 5년차였는데, 저희 병원이 전국에서 가장 잘 되는 치과 가
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 치과를 처분한다고 하자 모든 사람들이 반대
하고 나섰죠. 하지만 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병원을 싼 값에
넘기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35

허영구 회장은 미국 보스턴 대학교에서 5년 간 임플란트를 공부했다. 박봉에 새벽
까지 일하는 것은 둘째 치고 누구 하나 제대로 임플란트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않
는 환경에서 그는 이를 악물로 공부했다. 1997년에 귀국했을 때 나라는 IMF로 혼
란스러웠고, 그에게 남은 건 1억 원의 빚뿐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의 임
플란트 사랑은 식지 않았다. 그는 가톨릭대학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국
산 임플란트의 연구 개발에 힘을 쏟았다.

계란에 12개의 구멍을 뚫다

임플란트는 인공 치아를 심음으로써 일상 생활의 불편함을 크게 덜어주는 획기
적인 수술이다. 하지만 수술 통증이 심하고, 길게는 6~8개월까지 걸리는 긴 치료
기간이 단점으로 꼽힌다.

네오바이오텍은 바로 이런 임플란트 수술의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하고 간
편하고 빠르게 시술할 수 있는 임플란트 제품과 수술 도구들을 개발해 세계 시장
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비록 국내 다른 임플란트 업체들에 비해 늦게 출발했
지만,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이며 빠른 성장률을 기록해 국
내 시장 점유율 3위 업체로 자리 잡았고, 세계 62개 국에 수출하고 있다.

네오바이오텍은 2007년 초 상악동 거상술(코 주변의 위 턱 부분에 행하는 임플
란트 수술의 한 종류) 등에 탁월한 수술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임플란트인 ‘사이너
스 퀵’(Sinus Quick)을 개발, 출시해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이후 2008년에는 새

13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로운 방식의 수술 도구인 SCA 키트(Sinus Crestal Approach kit)를 내놓으며 임플
란트 업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사이너스, 즉 상악동(코 주변의 위턱 뼈 안에 있는
공기 주머니)에 있는 뼈는 물렁거리기 때문에 임플란트를 심으면 자꾸 빠져 수술
이 어려웠는데 ‘사이너스 퀵’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다. 또한 뼈가 단
단하지 않은 부위에 임플란트를 심기 위해 구멍을 뚫어야 할 때 이전에는 망치로
쳐서 뼈를 깨트렸는데, SCA 키트를 개발함으로써 가벼운 드릴링을 통해 멤브레
인(상악동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이 찢어지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가능해졌다.
허영구 회장과 김인호 사장은 창업 후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사이너스 퀵과 SCA
키트 출시를 기념해 개최한 첫 심포지엄을 꼽는다. 2 008년 2월 열린 심포지엄에
는 1천여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현장 판매만 해도 5억 원을 넘겼다.
이날 네오바이오텍은 사이너스 퀵으로 멤브레인이 손상 없이 뚫리는 것을 보여주
기 위해 계란에 구멍을 뚫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 이벤트에 참여한 치과의사가 우리 키트를 가지고 1분에 12개의 구
멍을 손상 없이 뚫었습니다. 전 세계가 네오바이오텍의 신기술에 놀라
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죠. 사이너스 퀵과 SCA kit가 출시된 후, 매우 까
다로운 수술이었던 상악동 거상술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술로 일대 변
혁을 이룬 겁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37
로운 방식의 수술 도구인 SCA 키트(Sinus Crestal Approach kit)를 내놓으며 임플
란트 업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사이너스, 즉 상악동(코 주변의 위턱 뼈 안에 있는
공기 주머니)에 있는 뼈는 물렁거리기 때문에 임플란트를 심으면 자꾸 빠져 수술
이 어려웠는데 ‘사이너스 퀵’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다. 또한 뼈가 단
단하지 않은 부위에 임플란트를 심기 위해 구멍을 뚫어야 할 때 이전에는 망치로
쳐서 뼈를 깨트렸는데, SCA 키트를 개발함으로써 가벼운 드릴링을 통해 멤브레
인(상악동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이 찢어지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가능해졌다.
허영구 회장과 김인호 사장은 창업 후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사이너스 퀵과 SCA
키트 출시를 기념해 개최한 첫 심포지엄을 꼽는다. 2 008년 2월 열린 심포지엄에
는 1천여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현장 판매만 해도 5억 원을 넘겼다.
이날 네오바이오텍은 사이너스 퀵으로 멤브레인이 손상 없이 뚫리는 것을 보여주
기 위해 계란에 구멍을 뚫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 이벤트에 참여한 치과의사가 우리 키트를 가지고 1분에 12개의 구
멍을 손상 없이 뚫었습니다. 전 세계가 네오바이오텍의 신기술에 놀라
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죠. 사이너스 퀵과 SCA kit가 출시된 후, 매우 까
다로운 수술이었던 상악동 거상술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술로 일대 변
혁을 이룬 겁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37

월드챔프와 함께 미국, 중국으로 가다

네오바이오텍은 다른 국내 임플란트 업체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해외 시장의 문
을 두드렸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각국의 딜러 업체들을 통해 미미한 수준으로
수출을 해오다가 2014년에 미국 법인, 2015년에 중국 법인을 세우면서 본격적으
로 해외 시장에 뛰어들었다. 마침 이러한 시기와 맞물려 2014년 월드챔프 사업자
로 선정됨에 따라 네오바이오텍은 법인이 있는 미국과 중국에서 공격적인 마케
팅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북미 시장은 서유럽과 함께 치과용 임플란트의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치과용 임플란트 시장의 27.8%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큰 시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
인 성향으로 인해 신규 업체의 진입 또한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임플란트 보급률
이 높고, 인구 고령화에 따라 임플란트 수술 환자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 매력적
인 시장임에 틀림없다.

네오바이오텍과 LA 무역관 그리고 전문위원은 글로벌 기업 및 제 3세계 업체들
의 과다 경쟁으로 마케팅의 어려움이 있는 미국에서 바이어 관리 및 거래선 발굴
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브랜드 인지도를 강화하
기로 했다. 네오바이오텍과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팀은 주기적으로 북미 시장 사
업 진행 사항 및 마케팅 전략을 논의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철저
한 시장 분석을 통해 최적의 마케팅 전략을 세워 실행해 나갔다.

13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이러한 전략에 따라 네오바이오텍은 20 16년 6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임플란트 분
야 전문 고객을 대상으로 ‘네오바이오텍 월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
에는 북미와 남미,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 2 0여 개국의 치과의사 450여 명이 참
가해 네오바이오텍에 대한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에 있는 각 분야의 세
계적 강연자들이 네오바이오텍의 임플란트 및 시술 기구 등을 이용한 최신 수술
방법과 트렌드를 소개하고, 다양한 논문과 임상 데이터, 임상 경험 등을 통해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많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심포지엄을 위해 네오바이오텍은 LA 무역관과 협업으로 장소를 섭외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 받았다. 또한 바이어 홍보 시에도 코트라의 후원을 명시해 신뢰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39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39

성 있는 한국 기업임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LA 무역관은 북미 지역 잠재 바이어
추가 유치 및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데도 함께 총력을 기울였다.

네오바이오텍의 북미 수출은 월드챔프 사업의 지원에 힘입어 2016년 8월 기준
400만 달러를 기록, 전년 같은 기간 120만 달러에 비해 무려 330% 급증했다. 월
드챔프 사업 참가 전 350개 사였던 네오바이오텍의 거래처는 현재 약 1,000여
업체에 이르고 있다. 해외 글로벌 기업이 선점한 북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와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선전 중인 네오바이오텍은 우리 기
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에서도 ‘네오’ 열풍

네오바이오텍이 최근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중국이다. 아직 중국은 세계 임플란
트 시장의 3%에 불과하지만, 경제 성장과 빠른 고령화로 2020년 이후에는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네오바이오텍은 2015년 중국 베이징에 법인을 설립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
이고 있다. 그 결과 2016년에는 해외 수출국 중 중국에서 가장 큰 매출 기록을 달
성했다. 법인을 설립하고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시기에 월드챔프 사
업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미국에서 월드 심포지엄을 개최해 큰 성과를 거둔 네오바이오텍은 월드챔프 사
업의 지원으로 2016년 11월 중국에서 ‘네오바이오텍 북경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네오바이오텍 북경 심포지엄’은 네오바이오텍이 2015년 중국 법인 설립 후 처음

14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으로 개최한 자체 심포지엄으로서, 북경 및 동북 지역 치과의사 2 80여 명이 참가
했다. 한국의 저명한 치과 의사 4명과 중국 북경의 치과대학 교수 2명이 강연자로
나서 최근 임플란트 시술 동향과 임상 실험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 북경 심포지엄은 심도 있는 강의와 더불어 네오바이오텍의 각종 제품
들을 직접 체험하는 장을 마련해 큰 호응을 얻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중국 치과
의사들은 시술자와 환자 모두에게 편리한 시술 프로토콜을 제공하는 네오바이오
텍의 다양한 제품들과 혁신적인 솔루션들에 큰 관심을 표명했다. 네오바이오텍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내년에도 중국 광저우, 상하이 등지에서 심포지엄을 개최
해 네오바이오텍의 우수성을 중국 전역에 알려나갈 계획이다.
월드챔프는 중소기업에게 천군만마
본격적인 해외 진출 시기에 월드챔프 사업을 만난 네오바이오텍은 그 어떤 기업
보다도 해외 마케팅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국내에서 진행한 심포지엄 또
한 네오바이오텍을 담당하는 전문위원의 도움으로 월드챔프 사업의 지원을 받
을 수 있었다.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해외에서 350여 명, 국내에서
12 00여 명, 총 1500여 명의 치과의사들이 참가했다. 아직 해외에서 네오바이오
텍의 인지도는 약한 편이지만, 한국에서 15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심포지
엄을 통해 네오바이오텍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네오바이오텍의 해외 영업 담당자는 중소기업에서 사업을 할 때 가장 취약한 것
이 마케팅, 그 중에서도 해외 마케팅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에서 반드시 목표 시장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41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41

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더라도 비용이나 인력 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할 수밖
에 없다는 것.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해외 진출이 좌절되는 경우도 많다. 월드챔프
가 중소기업에 큰 서포터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다.

“중소기업이 과감하게 시장을 개척해 나갈 때 월드챔프 지원이 큰 힘이
된다는 걸 사업을 직접 해보면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특히 저희 같은
중소기업에서 해외 진출이 꼭 필요한 1~2개 국가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때 아주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월드챔프 사업과 함께 네오
바이오텍이 북미와 중국을 넘어 세계 임플란트 시장의 선두주자로 성
장할 때까지 열심히 뛰겠습니다.”

14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43
Ⅲ. 제약·의료기기 | 네오바이오텍 143

삶의 질을 높이는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으로


02
곰처럼 우직하게 지켜온 ‘의약보국’의 정신
대웅제약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약국 주인에서 대한민국의 ‘큰 곰’으로

“대웅제약을 맡아주십시오!”

윤영환(현 대웅제약 명예회장)은 성균관대학교 약대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선화
약국을 운영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웅제약(당시 대한비타
민산업주식회사, 1978년 대웅제약으로 사명 변경)의 설립자인 박문수 사장으로
부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는다. 대웅제약의 경영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약
사와 약 제조자로 인연을 맺으며 윤영환의 인간 됨됨이와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
해온 박문수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웅제약을 살릴 사람은 오직 윤영환밖
에 없다고 생각했다.

조그만 약국과 약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윤영환은 고
민에 빠졌다. 하지만 곧 결심했다. 대웅제약을 대한민국 최고의 제약 회사로 키워
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래. 의약보국(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건강한 사회
를 만든다)의 정신으로 좋은 약을 만드는 데 이 한 몸 던져보자!”

피로야~ 까불지 마라

1966년 제약 산업에 뛰어든 윤영환 명예회장은 대웅제약의 대표 상품인 우루사
를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할 수 있을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14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196 1년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해도 우루사는 웅담(곰의 쓸개) 성분을 가루로 낸 뒤
이를 압축해 알약으로 만든 형태였다. 당시 제약 기술의 한계로 맛이 쓰고 목 넘
김이 부드럽지 못했다. 당의정(약 표면에 설탕을 입힌 것) 형태로도 만들어졌지만
여름에 코팅이 녹는 부작용 때문에 번번이 상용화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 4년 지금과 유사한 소프트 캡슐(부드러운 연질 캡슐) 형태의 우루사
가 세계 최초로 출시됐다. 바로 윤영환 명예회장의 아이디어였다. 부드러운 연질
캡슐로 바뀐 후 우루사의 매출은 급성장했다. 2년 후에는 국내 간장약 시장에서
점유율이 50%를 넘어섰다. 197 7년에는 자동 소프트 캡슐 제조기를 도입해 품질
과 효능을 향상시키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우루사가 탄생했다.
우루사는 예로부터 간장 질환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웅담의 약효화를 연
구하던 끝에 탄생한 약이다. 우루사는 웅담의 약효 성분인 우루소데옥시콜린산
(UDCA)이 함유돼 간에 쌓이는 피로 물질을 밖으로 내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UDCA의 원료 생산은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하다. 대웅제약은 40년의 생산 노하우
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한 원천기술을 통해 1980년대에 독자적인 생산에 성공했다.
우루사의 제품 경쟁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국내 기술로 생
산해내는 데 있다. 지난 196 1년 첫 발매 당시에는 일본에서 원료를 수입해 생산했지
만, 지금은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과정이 대웅제약의 기술로 100% 진행된다.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으로 도약
대웅제약을 인수한 윤영환 명예회장은 원료 입고부터 생산 과정, 판매 전략 등 모
든 부분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는 ‘Zero-Defec t(무결점) 운동’을 업계 최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47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47

초로 도입했다. 당시 대다수 기업은 눈앞에 닥친 생산과 판매에만 매달렸지만 윤
명예회장은 모든 결점이 해결되면 생산과 판매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었다.

윤영환 명예회장은 우루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신제품 개발과 기존 제품의
품질과 효능 개선을 위해 부설제약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혁신을 계속했다. 대웅
제약이 탄탄한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원료 합성 개발을 이뤄내야
한다고 판단하고 연구를 지속했고, 일반의약품 중심이던 제품 구조를 전문의약품
중심으로 바꿔나갔다. 이렇게 끊임없는 혁신 결과 1990년에 들어서면서 대웅제
약의 얼굴인 우루사는 국내 캡슐 제품 시장의 70%, 간장약 시장의 50%의 점유율
을 차지했고, 대웅제약의 매출은 200억 원에 이르렀다.

1988년에는 국내 최초로 국산배합신약 종합소화제 ‘베아제정’을 개발하는 데 성
공했다. 대웅제약은 자체적으로 제대로 된 소화제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을 바
탕으로 성장을 가속화해, 대웅제약이 종합제약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초석이
됐다.


14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대웅제약은 ‘삶의 질 향상을 선도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이라는 비전을 세우
고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R&D 투자를 통해 복합우루사, 이지엔6 등의 일반 의약
품은 물론 미국에서 임상 진행 중인 자체 개발 톡신치료제 나보타, 고혈압/고지혈
증 치료제 올로스타 등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영환 명예회장은 우루
사, 이지에프 등 신약 개발 및 고품질의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품질
과 효능을 향상해 나가는 등 한평생 제약 산업을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5
년에 ‘대한민국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을 수상했다.
‘우루사 포럼’을 아시나요?
세계 1위와 4위 제약기업인 ‘노바티스’와 ‘로슈’는 인구 800만에 불과한 스위스 기
업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글로벌 제약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는 내수를 넘어 해외를 적극 공략해야 함을 의미한다.
국내 제약 분야 매출액 3위인 대웅제약은 2 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해외 시장
에 눈을 돌려 현재 해외에 8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
되는 의약품은 허가가 무척 까다로운 분야인 만큼 해외 수출이 녹록치 않다. 국내
에서 보유한 임상 데이터로는 선진국 진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대웅제약은
우리와 체질과 문화, 지리 등 여러 가지로 진입이 용이한 아시아 지역에서 입지를
다진 후 차차 의약품 최대 시장인 미국과 유럽으로 시장을 확대한다는 전략 아래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49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49

대웅제약은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10여 국에 수출하며 아시
아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월드챔프 이전부터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새로운 거래
선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코트라 해외 무역관은 대웅제약이 2012년 제약
업종 중에서는 유일하게 월드챔프 사업에 참여하면서 더욱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해외 마케팅 파트너로서 자리하게 됐다.

대웅제약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글로벌 마케팅 지원을 더욱 체계적으로 받음으
로써 그동안 개최하고 있던 ‘우루사 포럼’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우루사 포럼’은
우루사의 임상학적 가치와 한국의 의료 수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대웅제약이
매년 해외 각국의 의사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학술 세미나다. 대웅제약은 2012년
월드챔프 시작과 함께 마닐라 무역관, 하노이 무역관, 베이징 무역관 등과 협업해
우루사와 상처 치료 제품의 글로벌 포럼을 수차례 진행해왔다. 그 결과 우루사의


15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수출액은 20 12년부터 매년 평균 80% 이상씩 성장하고 있으며,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해외 네트워크가 확대되고 있다.
중국 시장의 ‘소화기 트로이카’
코트라와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대웅제약의 가장 큰 해외 시장인 중국 내 브랜
드 이미지도 큰 탄력을 받고 있다. 중국 의약품 시장은 20 12년에 비해 202 0년에
는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연 평균 성장률이 12 %나 되는 등 세계 최
대의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웅제약도 중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다만 중국 의약품 시장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쟁이 치열하고 임상 시험과 허가
절차 등이 무척 까다롭다. 중국 의약품 시장에서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
한 요소는 바로 국가의료보험 등재다. 중국 당국에서는 국가의료보험 지원을 통
해 자국민에게 저렴한 가격에 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료보험 등재를
못하면 제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중국 의약품 시장
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어렵다.
2 008년 우루사를 시작으로 중국 의약품 시장에 진출한 대웅제약은 월드챔프와
함께 20 12년 소화기 대표 제품인 베아제와 뉴란타를 수출함으로써 몇 년 안으로
중국에서 ‘소화기 트로이카’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우루사는 이미 국가
의료보험에 등재됐을 뿐만 아니라 수출을 위한 제2의 관문인 성(省)의 입찰을 대
부분 마쳐 20 16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성장하는 성과를 이뤘다. 베아제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51

중국 시장의 ‘소화기 트로이카’

코트라와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대웅제약의 가장 큰 해외 시장인 중국 내 브랜
드 이미지도 큰 탄력을 받고 있다. 중국 의약품 시장은 2012년에 비해 2020년에
는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연 평균 성장률이 12%나 되는 등 세계 최
대의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웅제약도 중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다만 중국 의약품 시장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쟁이 치열하고 임상 시험과 허가
절차 등이 무척 까다롭다. 중국 의약품 시장에서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
한 요소는 바로 국가의료보험 등재다. 중국 당국에서는 국가의료보험 지원을 통
해 자국민에게 저렴한 가격에 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료보험 등재를
못하면 제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중국 의약품 시장
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어렵다.

2008년 우루사를 시작으로 중국 의약품 시장에 진출한 대웅제약은 월드챔프와
함께 2012년 소화기 대표 제품인 베아제와 뉴란타를 수출함으로써 몇 년 안으로
중국에서 ‘소화기 트로이카’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우루사는 이미 국가
의료보험에 등재됐을 뿐만 아니라 수출을 위한 제2의 관문인 성(省)의 입찰을 대
부분 마쳐 2016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성장하는 성과를 이뤘다. 베아제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51

와 뉴란타 또한 주요 성에서 성공적으로 입찰을 통과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2015년 중국에서 뉴란타 홍보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뉴란타는 이
미 2010년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제산제 맛과 향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최
고점을 받았을 정도로 대중들 사이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어, 전문의들의 충분
한 호응이 동반된다면 국가의료보험 등재와 주요 성 입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대웅제약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중국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국제 학
회 참석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학회를 기획함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한편
뉴란타를 중국 병원에 진입시키는 데 집중했다.

2015년에는 소화기 전문의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텐진에서 열린 ‘중국
전체 소화기 학회(15th GSGE)’에 참가했다. 코트라는 학회 준비와 뉴란타 홍보 행
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 및 고객 참여 유도는 물론 허베
이, 텐진, 베이징 등 각 성별 학회 주요 임원에게 직접 뉴란타를 소개해 향후 개별
적인 상담을 잡기도 했다.

또한 2016년 11월에 중국 운남성 텐총에서 뉴란타 홍보를 위한 자체 행사를 마련
해 큰 성과를 거뒀다. 이 행사는 베이징, 텐진, 허베이, 랴오닝 등 뉴란트 입찰을 통
과한 주요 성(省)의 소화기 전문의들을 초청해 학술 토론을 진행하며, 뉴란타의 치
료학적 이점을 논의해 매출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15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글로벌 2020’도 코트라와 함께
대웅제약의 다양한 학술 세미나에서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은 그동안 쌓아온 마케
팅 노하우와 인프라를 활용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생명과 관계되는 의약품은
신뢰도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마케팅을 벌이는 게 무엇보다 효과가 있는데, 월드
챔프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로부터 믿을 만한 의약품이라는
인증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대웅제약 브랜드의 신뢰도
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코트라 해외무역관들은 행사 준비뿐만 아니라 세미
나가 열리는 일정 내내 행사장에 머물려 진심이 깃든 환영사와 축사를 해주는 등
다방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은 해외 수출 물량이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대웅제약
은 202 0년까지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서는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겠다
는 목표를 세우고 ‘글로벌 2020 비전’을 선포했다. 아시아 지역을 넘어 미국, 유럽
등 해외 주요 거점 국가에 우루사를 비롯해 주요 제품의 허가 및 발매 등을 통한
글로벌 브랜드화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코트라의 월드챔프 사업은 해외 사업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대웅제약의 ‘글로벌 2 02 0 비전’의 실현에도 함께할 것이다.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53 Ⅲ. 제약·의료기기 | 대웅제약 153

국산 의료용
레이저 기기의 선구자


03
빛과 에너지로 세상을 치유하다
루트로닉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

“해령아~ 니가 지금 만든 게 뭐꼬?”
“이거요? 이건 잠수함이라예.”
“뭐라꼬? 다섯 살짜리 꼬마가 잠수함을 만들었단 말이고?”
“하모요~ 지는 뭐든지 만드는 게 너무너무 재밌어예.”


다섯 살 때 잠수함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아이. 중학교 때는
집에 있는 시계와 라디오를 분해하고 조립하다 부모님께 혼나기도 많이 했던 아
이. 발명가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뭐든 만드는 걸 좋아했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국내 최초로 레이저 의료기를 개발한 사업가가 되었다. 바로 레이저 의료기
기 전문업체 루트로닉 황해령 대표이사의 이야기다.

한국인의 손재주

황해령 대표는 미국 아이비리그인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코네티
컷 주립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그의 화려한 학력만 보고 혹자는 금수저 출신
유학파라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 때 먹고 사는 게 힘들어 미
국 이민을 결심했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떠난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그의 아
버지는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고생하시는 부
모님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명문대 진
학으로 이어졌다.

15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대학생 시절에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보탰다. 졸업 후에는 한국
산 의류 제품을 미국으로 들여와 팔기도 했지만, 사업 경험이 없어 적잖은 손해를
보고 접었다. 그 후 미국 레이저 기기 업체에 들어가 레이저 기기를 일본, 한국 등
에 파는 아시아지역 마케팅 담당으로 일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짧은 시간에 부사
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는 3년 만에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미국 회사를 나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피부,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레이저 기기의 수요
가 급증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아무도 의료용 레이저 기기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당시 한국의 병원들은 의료용 레이저 기기를 전
량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어요. 미국 기업이 대부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기기 한 대당 가격이 수억 원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저는 한국인의 손재주라면 우리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
어요. 그리고 무작정 달려들었죠.”
황해령 대표는 199 7년 직원 6명과 함께 루트로닉을 창업하고 연구, 개발에 매달
렸다. 하지만 창업 5개월 만에 IMF가 터지면서 자금줄이 막혔다. 아파트까지 팔
았지만 직원들 월급조차 주기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2년여 동안 밤잠
을 설쳐가며 매달린 결과 기미, 주근깨, 잡티 같은 색소 질환과 문신을 흉터 없이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레이저 의료기 ‘스펙트라’(Spec tra-VRM)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57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57

레이저를 제 몸에 쏘겠습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외국산 제품보다 30%나 싼 값으로 내놓았지
만 병원들은 무명의 중소기업이 개발한 의료용 레이저 기기에 관심을 주지 않았
다. 의료기기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의사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직접 임상실험 1호로 나섰다. 피부과 의사들을 찾아가 자신의 몸에 직접 레
이저를 쏴 시술하며 성능을 보여줬다. 이렇게 직접 자기 몸에 임상 실험을 한 제
품과 분석 자료를 들고 수많은 병원을 찾아다닌 끝에 수원의 한 병원에서 루트로
닉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첫 계약은 신호탄이
됐다. 그 후로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서 루트로닉은 자리
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루트로닉은 현재 기미 치료, 피부 재생, 제모 등을 치료하는 레이저 치료기 12가지
를 판매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FDA와 유럽 CE 등의 승인을 받은 기미·문신 제
거기 스펙트라와 피부 레이저 치료기기 클라리티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특히 신
기술과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고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후속 제품들을 꾸
준히 출시하고 있는 ‘스펙트라 시리즈’는 국내 피부과 열 곳 중 여섯 곳에서 사용
될 정도로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15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한국이라는 우물은 좁다
황해령 대표는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
의 목표는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아파트까지 팔
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꼬박 2년여 동안 연구 개발에 올인한 것도 하나를 만들어
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루트로닉의 첫 작품인 스
펙트라가 국내에서 조금씩 알려지자 그는 곧바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수
시로 해외를 돌아다니며 제품을 알리고, 미국 인맥을 동원해 미국 의학레이저학회
에 특별 회원으로 가입했다. 유럽 학회를가 주관하는 전시회에도 꾸준히 참가했다.
하지만 해외 시장의 문턱은 높았다. 의료기기 시장은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 까다
로운 분야다. 제품을 개발한 후에도 몇 년에 걸쳐 복잡한 임상시험과 보건당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새 기술 ·기기를 도입하는 데 보수적인 병 ·의
원의 네트워크도 뚫어야 한다. 게다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자 할 때
는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내 신생 기업의 어려움은 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루트로닉은 자체 개발한 의료기기 1호를 대만에 수출하기 위해 1
년이 넘게 공을 들여야 했다. 처음에는 이메일을 보내도 답변도 하지 않던 대만의
병원은 황 대표의 끈질긴 노력에 루트로닉을 직접 방문해 테스트를 해보고 구매
를 결정했다. 이렇게 루트로닉은 200 1년 대만으로 역사적인 첫 수출을 하게 된
다. 이후 차례차례 수출 지역을 넓혀 나갈 때도 난관은 계속됐다. 대만 다음 목표
지였던 일본으로 진출할 때는 1년 6개월이 걸렸고, 미국의 판로를 뚫는 데는 이보
다 더 긴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59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59

2003년 국산 레이저 의료기로는 처음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루
트로닉은 2007년에는 미국 판매법인을, 2008년에는 일본 판매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오로지 기술력과 품질로 승부하며 세계 시
장을 개척한 결과 루트로닉은 이제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 국내 1위 기업이자 세계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루트로닉 제품을 수출하는 국가만 60여 개국에 이
르고, 전체 매출 중 해외 수출 비중이 70%를 차지한다.

월드챔프로 아시아 시장의 입지를 다지다

황해령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에 맞는 제
품과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 특히 의료기기는 임상과
사용자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현지에서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
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루트로닉은 글로벌 임상과 학술 연구,


16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전시 등을 현지에서 꾸준히 하고 있는데, 코트라 무역관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
고 있다.
특히 코트라 파리 무역관은 브랜드 쇼케이스 행사, 공동 마케팅, 브랜드 개발 전략
등을 루트로닉과 함께 진행하며 파트너십을 굳게 맺고 있다. 특히 루트로닉은 글
로벌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201 4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AMWC(Anti-aging Med-
icine World Congress)에서 월드챔프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AMW C은
유럽에서 개최되는 가장 권위 있는 안티에이징 전시회로 유럽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관련 의사들과 산업 리더들이 1만여 명 이상 모이는 중요한 장이다. 루트로
닉은 코트라 파리 무역관과 함께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설치해 신
제품을 홍보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루트로닉은 마케팅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AMWC 행사가 진행되는 인근 호텔에
서 ‘Symposia L’이라는 자체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
사들이 루트로닉 제품의 임상 결과를 발표하고, 루트로닉 레이저 기기로 직접 시
술하는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식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
다. 올해에도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 이 행사는 의사와 대리점 관계자들
이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Symposia L ’의 성공적인 개최
루트로닉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아시아에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
기 위해 코트라 월드챔프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특히 루트로닉은 최근 세계 3위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61

특히 코트라 파리 무역관은 브랜드 쇼케이스 행사, 공동 마케팅, 브랜드 개발 전략
등을 루트로닉과 함께 진행하며 파트너십을 굳게 맺고 있다. 특히 루트로닉은 글
로벌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2014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AMWC(Anti-aging Medicine
World Congress)에서 월드챔프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AMWC은
유럽에서 개최되는 가장 권위 있는 안티에이징 전시회로 유럽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관련 의사들과 산업 리더들이 1만여 명 이상 모이는 중요한 장이다. 루트로
닉은 코트라 파리 무역관과 함께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설치해 신
제품을 홍보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루트로닉은 마케팅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AMWC 행사가 진행되는 인근 호텔에
서 ‘Symposia L’이라는 자체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
사들이 루트로닉 제품의 임상 결과를 발표하고, 루트로닉 레이저 기기로 직접 시
술하는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식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
다. 올해에도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 이 행사는 의사와 대리점 관계자들
이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Symposia L’의 성공적인 개최

루트로닉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아시아에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
기 위해 코트라 월드챔프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특히 루트로닉은 최근 세계 3위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61

규모 시장인 중국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중국에 직영 판매지사가 없기 때문에 인
력과 행사 예산의 부족으로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
챔프는 루트로닉에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었다.

코트라 홍콩무역관은 2015년 홍콩에서 개최된 ‘Symposia L’의 행사 장소 예약,
호텔 예약, 행사장 설치, 게스트 초대, 현지 보조 및 예산 집행 등 준비 전반을 적
극적으로 지원해 심포지엄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루트로닉의
글로벌마케팅 매니저인 Jennnifer Ahn은 “우리는 행사에 대한 코트라의 사려 깊
은 노력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함께 협업하고 싶다”는 바람
을 전했다.

코트라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 세계에서 약 100명의 피부과·성형외과 전문의
들이 참석한 홍콩 ‘Symposia L’은 의사들이 최신 레이저 치료 트렌드를 이해하고
전문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교육적인 플랫폼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참가
자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참가자의 90%가 주제의 내용과 논의가 유익했다고 평
가했다.

이러한 좋은 평가는 실제 매출로도 이어졌다. 루트로닉의 해외영업 담당자인 Brian
Lee는 “이번 행사에서 이루어진 성공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15%
매출 성장률을, 홍콩에서 25%의 매출 성장률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며 코트라
의 계속적인 지원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16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63 Ⅲ. 제약·의료기기 | 루트로닉 163

세계 인류의
치아 건강을 위하여


04
‘한국형 임플란트’로 세계를 사로잡다
메가젠임플란트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어느 치과 의사의 소망

때는 2000년. 수술실에서 나오는 박광범 치과의사의 얼굴은 어두웠다. 임플란트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동료 의사는 걱정스레 물었다.

“수술실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지금 쓰고 있는 임플란트 제품이 우리 환자들과 맞지 않아. 뭔가 대책
을 세워야겠는데…. 한국 사람들은 음식도 질기고 악골도 작기 때문에
외국산 임플란트로 수술하면 결과가 좋지 않아 늘 마음이 무거워. 우리
가 직접 한국인들에게 딱 맞는 임플란트를 개발해보면 어떨까?”

2000년까지 국내 임플란트 시장은 100퍼센트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외국산
임플란트 수술을 할 때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박광범 메가젠임플란트 대
표는 동료 의사에게 직접 임플란트를 개발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같은 고민을 안
고 있던 두 사람은 단번에 의기투합을 했고, 또 한 명의 의사가 합류했다. 2002년,
세 명의 치과의사는 한국인에게 딱 맞는 저렴하고 질 좋은 임플란트를 만들고 싶
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슴에 품고 메가젠임플란트를 창업했다.

인간과 기술의 사이클

하지만 사업의 세계는 냉혹했다. 평생 의술이라는 한 길만을 걸어온 의사들에게
는 다양하고 복잡한 능력이 요구되는 경영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특히 기계
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엔지니어링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여러 시행착오를 거

16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전부 의사이다 보니 생각은 많지만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어내
는 데 한계가 많았어요. 어떤 경우에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오염이 되
기도 하고, 어떤 때는 원하는 모양을 기계가 구현해주지 못하기도 했고
요. 그렇게 시행착오를 3년 정도 거쳤어요. 계속 연습하고 또 연습해내
는 지난한 과정이었죠.”
이렇게 고군분투한 결과 메가젠임플란트는 새로운 개념의 임플란트 제품인 와이
드 임플란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오래 가
지 않았다. 성과가 좋았던 만큼 시장에서 빠르게 복제품이 퍼져나갔다. 제품 개
발을 위해 쏟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타격은 더욱 컸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다
메가젠임플란트는 제품 개발 후 약 3년 간 카피 제품 때문에 고전했다. 그러다가
2 008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전
까지의 모든 것은 리셋. 과거의 영광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시 시작하기로 했다. 장점은 모으고 불필요한 것은 다 제거한 제품을 하나만 만들
어낸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메가젠임플란트의 대표 상품인 ‘애니릿지’다. 임플란
트는 치아의 뿌리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잇몸 뼈에 심는 나사를 말한다. 타이타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67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67

늄이 주 원료다. 임플란트 수술에서 뼈가 튼튼하지 않고 물렁물렁할 경우 임플란
트를 심기도 어렵지만 수술 후에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애니릿지’는 강한
고정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구현해 아주 약한 뼈에서도 임플란트 수술
이 가능하고, 보철물을 올리기까지 시간을 줄여준다.

또한 임플란트를 심은 부위의 뼈가 빨리 형성될 수 있도록 SLA(Sand blasting
Large grit Acid etching) 표면처리 방식에 칼슘 이온을 증착시켜 회복 시간을 단
축시켜준다. 보통의 임플란트로 수술했을 경우 일상 생활로 돌아오는 데 6개월
에서 1년이 걸리는 데 비해 애니릿지를 사용할 경우 3~4개월이면 충분할 정도로
획기적인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임플란트의 혁명, R2게이트

메가젠임플란트는 2년 전 세계 임플란트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스트라우만으
로부터 300억 원의 투자를 받아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렇듯 세계 1위 기업
의 투자를 이끌어낸 배경에는 ‘R2게이트’라는 기술이 있었다. ‘제2혁명’이란 뜻을
가진 ‘R2게이트’는 아무리 좋은 임플란트 제품이 있어도 수술이 어려우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보통의 임플란트 수술은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R2게이트’는 환자의 CT(컴퓨터 단
층촬영)에서 얻어진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의사가 실제 수술 전에 전 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실제와 똑같은 조건에서 미리
가상 수술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이 훨씬 정확하고 안전하고 빨라진다. 뼈가
건강하다면 임플란트 수술 당일에 인공 치아를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른바 ‘원

16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데이 임플란트’, 즉 임플란트의 혁신이다.
‘R2게이트’는 메가젠임플란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시스템으로 20 11년 런칭한
후로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해외 딜러들이나 세계 각국 치과
의사들의 관심 또한 뜨겁다. 특히 이런 진단 프로그램들을 이용하는 가이드 서저
리( guide sur gery)는 유럽에서 많이 유행하고 있는데,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 한국을 찾아와 배워가고 있다. 메가젠임플란트는 ‘R2게이트’ 개
발 후 국내외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한국의 기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모한 도전
메가젠임플란트는 환자들이 좀 더 편하게 치료를 받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
록 끊임없이 소프트웨어 및 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메가젠임플란트
가 생산해내는 제품은 1, 400여 종류에 이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술
력을 인정받아 전 세계 73개국에 연간 4천만 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6 0%를 넘는다. 그 중에서도 임플란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메가젠
임플란트의 제품을 가장 선호한다. 시작은 한국인에게 딱 맞는 한국형 임플란트
의 개발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임플란트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해외 진출 초기
만 해도 메가젠임플란트의 행보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았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69

‘R2게이트’는 메가젠임플란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시스템으로 2011년 런칭한
후로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해외 딜러들이나 세계 각국 치과
의사들의 관심 또한 뜨겁다. 특히 이런 진단 프로그램들을 이용하는 가이드 서저
리(guide surgery)는 유럽에서 많이 유행하고 있는데,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 한국을 찾아와 배워가고 있다. 메가젠임플란트는 ‘R2게이트’ 개
발 후 국내외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한국의 기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모한 도전

메가젠임플란트는 환자들이 좀 더 편하게 치료를 받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
록 끊임없이 소프트웨어 및 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메가젠임플란트
가 생산해내는 제품은 1,400여 종류에 이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술
력을 인정받아 전 세계 73개국에 연간 4천만 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60%를 넘는다. 그 중에서도 임플란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메가젠
임플란트의 제품을 가장 선호한다. 시작은 한국인에게 딱 맞는 한국형 임플란트
의 개발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임플란트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해외 진출 초기
만 해도 메가젠임플란트의 행보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았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69

다. 시작부터 다른 회사들과 차별화된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사
들이 자신보다 경쟁력이 낮은 국가에 먼저 진입해 길을 닦는 것과 달리 메가젠
임플란트는 임플란트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가장 먼저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
운 것이다.

그러나 의욕은 좋았지만 본고장의 문을 열기란 쉽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한국산 임플란트의 지명도는 굉장히 낮았다. 결국 메가젠임플란트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발로 뛰는 수밖에는 없었다. 한국에서 개발한 좋은
제품을 전 세계 환자들에게 공급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열정이 초기 단계 시장 개
척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유럽 시장으로의 성공적인 진출
은 다른 지역과 국내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매출이
매년 2배 이상씩 성장했다.

월드챔프와 함께 러시아 시장 공략

10년 안에 세계 5대 임플란트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메가젠임플란트는 오늘도 해
외 시장 개척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그리고 2015년 그 길 위에서 함께 땀 흘릴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만났다.

유럽과 미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메가젠임플란트는 러시아 시장 진출을
목표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 러시아에서 유럽산이 강세이긴 하지만
메가젠임플란트는 러시아 시장의 전망을 매우 밝게 보고 있다. 왜냐하면 몇 년 전
부터 러시아에서 유가 하락과 루블의 환율이 낮아지면서 유럽의 고가 수입산 제

17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품의 수요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메가젠임플란트는 매년 자체적으로 세계 각국을 돌며 열고 있는
국제 심포지엄을 20 16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했다. 또한 월드챔프 사
업을 여러 곳에 분산하기보다 핵심 사업인 국제 심포지엄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
과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로드맵을 구성했다. 월드챔프 지원금의 7 0%를 국제 심
포지엄에 투자하고 모스크바 무역관과 긴밀히 협조해가며 여느 해보다 촘촘하게
행사를 기획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에서 7 50여 명,
그 외 지역에서 350여 명 등 모두 1, 100여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심
포지엄의 성공은 매출로도 이어져 약 25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20 15년 대비 약 40% 상승한 수치다.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사업은 또 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지역 심포지
엄 ‘ESM’(European Scientific Meeting )에 참가한 것이다. 이 행사에도 메가젠임
플란트는 큰 예산을 투자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회사가 상대하
는 고객이 주로 의사들이다 보니 작은 것 하나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
는데, 월드챔프의 지원금과 국제 행사 노하우가 많은 코트라 무역관의 든든한 지
원이 큰 힘이 되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71

이러한 이유로 메가젠임플란트는 매년 자체적으로 세계 각국을 돌며 열고 있는
국제 심포지엄을 2016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했다. 또한 월드챔프 사
업을 여러 곳에 분산하기보다 핵심 사업인 국제 심포지엄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
과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로드맵을 구성했다. 월드챔프 지원금의 70%를 국제 심
포지엄에 투자하고 모스크바 무역관과 긴밀히 협조해가며 여느 해보다 촘촘하게
행사를 기획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에서 750여 명,
그 외 지역에서 350여 명 등 모두 1,100여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심
포지엄의 성공은 매출로도 이어져 약 25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2015년 대비 약 40% 상승한 수치다.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사업은 또 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지역 심포지
엄 ‘ESM’(European Scientific Meeting)에 참가한 것이다. 이 행사에도 메가젠임
플란트는 큰 예산을 투자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회사가 상대하
는 고객이 주로 의사들이다 보니 작은 것 하나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
는데, 월드챔프의 지원금과 국제 행사 노하우가 많은 코트라 무역관의 든든한 지
원이 큰 힘이 되었다.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71

메가젠임플란트의 영국 수출액은 현재 80만 불, 전체 시장 점유율로 보면 2%대
로 아직은 진입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ESM’ 행사에 얼마나 많은 사
람들이 올까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다. 200~300명만 와도 성공한 것이라고 예
상했다. 그런데 막상 행사가 시작되니 영국에서만 250여 명, 그 외 지역에서 300
여 명 등 총 550여 명이 행사장을 찾아왔다.

이렇게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코트라 런던 무역관의 도움이 있었기
에 가능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시장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주는 것
은 물론이고 계약서 검토, 행사 장소 추천 등 현지에서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을 꼼
꼼히 체크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행사 당일에는 코트라 런던무역관장이 참석해 축
사를 해주고 행사 진행을 친히 도와 행사장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게 북돋워주었다.

임플란트 시장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연관되는 업종이다 보니 시장이 매우 보
수적이고 진입 장벽이 높다. 고객 입장에서는 회사 단일 행사가 아닌,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사업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코트
라 무역관은 망망한 바다 같은 해외 시장에서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파트
너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기업-코트라 무역관-전문위원의 삼각 끈

사실 기업이 정부지원 사업을 하다 보면 서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상충
하기도 한다. 일례로 메가젠임플란트가 월드챔프 지원금의 70% 이상을 국제 심
포지엄이라는 단일 사업에 투자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하지만 기업과 코

17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트라 무역관 그리고 전문위원의 삼각 체제가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기 때문에 가장 최선의 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기업은 최선을 다해 사업의 정당성을 개진하고, 코트라는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업과 코트라가 긍정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데 전문위원의 역할이 큰 몫
을 담당했다고 메가젠임플란트의 해외영업 담당자는 말했다. 자상한 아버지처럼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사업 진행 과정마다
세심히 점검해줌으로써 애로 사항 없이 해외 사업이라는 큰 숙제를 해나갈 수 있
었던 것. 한국의 임플란트 회사들은 해외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기존의 강
자인 서유럽,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메가젠임플란트는 앞으로도 코트
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의미 있는 숫자들을 써내려갈 것이다.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73 Ⅲ. 제약·의료기기 | 메가젠임플란트 173

‘한국형 유산균’으로
승부하라!


05
유산균의 나라 덴마크를 사로잡다
쎌바이오텍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덴마크의 한국 유학생

정명준 쎌바이오텍 대표는 집념이란 성공의 또 다른 이름임을 증거해주는 사람이
다. 20년 넘게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그의 집념은 미
원(현 대상그룹)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유명했다. 미원 재직 시절 정명준 대표는 특
유의 끈기와 집념으로 업계에서 오랫동안 풀지 못한 글루탐산나트륨(MSG) 비율
(발효 수율)을 높이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이 과제를 풀지 못하면 장가도
가지 않겠다’며 연구실에 야전 침대를 갖다 놓고 밤을 지새운 결과였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정명준 대표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포상으로 주
어진 덴마크 왕립공대 유학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유산균 발효 연구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덴마크의 선진 유산균 산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MSG가 1kg에 1달러일 때 유산
균은 500달러에 팔릴 만큼 부가가치가 컸어요. 한국은 세계에서 발효
식품을 가장 많이 먹는 민족이 아닙니까. 한국인에게 맞는 토종 유산균
을 개발해 판매하면 분명 성공할 아이템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창업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선택의 순
간은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박사 과정을 어렵게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그가 일하는 연구소가 중국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이 바로 기
회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친지에게 2억 원을 투자받아 1995년 2월 김포
에 쎌바이오텍을 세웠다.

17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유산균 찾아 삼만 리
프로바이오틱스는 유해균을 억제해 면역력을 강화하고, 장 대사를 높여 건강에
도움을 주는 살아 있는 균을 말한다. 유산균, 비피더스균 등이 대표적이다. 2 0년
전만 해도 국내에는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유산균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원료를 전량 수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준 대표는 국산 유산균주를 직접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한국인의 장에 맞는 질 좋은 균주를 찾아내기 위해 전국 방
방곡곡을 돌아다닌 끝에 쎌바이오텍은 국내 최초로 유산균주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늘, 고춧가루 같은 향신료가 들어간 발효 음식
을 많이 섭취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장 속에 우수한 미생물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것을 추출해서 제대로 배양해 상품화하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
니다.”
결국 그의 확신은 적중했다. 향신료에 강한 내성을 지닌 한국형 유산균은 육류와
유가공 식품을 주로 섭취하는 서양인들에게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나타냈다.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77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77

유산균의 유레카!

하지만 아무리 좋은 유산균도 장까지 살아서 도달하지 못하면 아무 효능이 없다.
유산균이 살아서 장까지 도달할 확률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코팅이 안 된 유산
균을 섭취하면 80%가 위와 십이지장을 거치는 동안 위산과 담즙에 의해 사멸한
다. 어떻게 하면 유산균이 살아서 장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많은 회사들이 위산
을 견디는 유산균 코팅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해결책을 못 찾아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정명준 대표의 편이었다. 어느 날 두부와 미꾸라지를 넣고
찌개를 끓이다가 미꾸라지가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두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이거다. 단백질로 유산균을 싸면 되겠다.

이렇게 해서 개발한 것이 바로 오늘날 쎌바이오텍을 있게 한 ‘듀얼 코팅’ 기술이다.
유산균을 단백질로 코팅한 다음, 다당류로 한 번 더 코팅을 하면 단백질과 당이 그
물처럼 막을 형성해 유산균을 감싼다. 일반 유산균에 비해 듀얼 코팅된 유산균의 생
존율은 80%로 월등히 높아진다. 기존에 개발됐던 코팅 기술들은 부작용이라든지
장에서 잘 풀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쎌바이오틱의 ‘듀얼 코팅’ 기술은 위
와 십이지장을 지날 때까지는 유산균들을 잘 감싸고 있다가 장에 도달해서는 잘 풀
어주는 기능을 한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쎌바이오텍의 듀얼 코팅 기술은 한국, 일
본, 유럽, 미국, 중국 등 5개국에서 특허를 받아 명실공히 세계 특허 유산균이 되었
고, 이를 토대로 한 다중코팅 기술로 2015년 특허기술상인 ‘충무공상’을 수상했다.

17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원스톱 솔루션’
안전성과 기능성을 모두 갖춘 좋은 유산 균주의 배양과 분리 기술, 1그램에 1천
억 마리 이상의 유산균을 농축하는 기술, 듀얼 코팅 기술 등 쎌바이오텍의 기술력
은 세계적이다. 이뿐만 아니다. 쎌바이오텍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유산균 원료
부터 완제품까지 전 기술을 다 갖고 있는 ‘원스톱 솔루션’ 기업이다. 종균 개발부
터 완제품 생산, 유통과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한 곳에서 하기 때문에 기능이 분
산된 업체들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지닌다. 이는 또한 쎌바이오텍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품질과 안전을 책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고객들의 신뢰도
가 높을 수밖에 없다.
쎌바이오텍은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에서 점유율 40%로 1위를 차지하고 있
다.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프로바이오틱스 물량의 90%를 생산하는 글로벌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79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원스톱 솔루션’
안전성과 기능성을 모두 갖춘 좋은 유산 균주의 배양과 분리 기술, 1그램에 1천
억 마리 이상의 유산균을 농축하는 기술, 듀얼 코팅 기술 등 쎌바이오텍의 기술력
은 세계적이다. 이뿐만 아니다. 쎌바이오텍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유산균 원료
부터 완제품까지 전 기술을 다 갖고 있는 ‘원스톱 솔루션’ 기업이다. 종균 개발부
터 완제품 생산, 유통과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한 곳에서 하기 때문에 기능이 분
산된 업체들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지닌다. 이는 또한 쎌바이오텍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품질과 안전을 책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고객들의 신뢰도
가 높을 수밖에 없다.
쎌바이오텍은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에서 점유율 40%로 1위를 차지하고 있
다.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프로바이오틱스 물량의 90%를 생산하는 글로벌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79

기업으로서, 유산균의 본고장인 덴마크에서는 시장 점유율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수출 지역도 40여 국이 넘는다. 프로바이오틱스 세계 5개
기업으로 성장한 쎌바이오텍은 지금까지 집중했던 건강 기능 식품으로서의 프로
바이오틱스 개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여드름 치료 같은 기능성 화장품, 대장암
및 크론병 치료 유산균 의약품 개발 등 의약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빅파마
업체로 성장할 계획이다.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다

창업 초기 IMF의 충격파는 쎌바이오텍도 피해갈 수 없었다. 국내 시장이 꽁꽁 얼
어붙자 재고는 쌓여가고,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부도 위기에 몰렸다. 너무나 힘
든 상황 속에서 정명준 대표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18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대금을 달러로 받으면 부도 위기를 겪지 않을 것이다. 그래,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자!”
쎌바이오텍은 2 000년대 초부터 듀얼 코팅 기술을 높이 평가한 이스라엘, 프랑스,
이탈리아 기업들의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 상표 부착 생
산) 주문을 받으면서 수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유산균 종주국인 북유럽 OEM
과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 생산) 시장에도 도
전장을 내밀었다. 해외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2 006년에는 덴마크에 현지 법
인을 설립했다. 덴마크 시장 점유율이 70%대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OEM과 ODM 방식만으로는 제품력을 강화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자체 상표가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 10년 프
로바이오틱스 완제품인 자체 브랜드 듀오락을 개발해 체계적으로 유럽 시장 진출
을 준비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201 4년, 유산국의 종주국인 덴마크에서 듀오락
을 런칭하는 데 성공했다. 짧은 시간 안에 듀오락의 덴마크 시장 점유율은 2 0%대
로 성장했고, 덴마크 약국 10곳 중 9곳에 듀오락 제품이 입점해 있다.
월드챔프와 함께 유산균의 나라 덴마크 공략
덴마크는 정명준 대표에게 의미가 큰 시장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프로
바이오틱스 종주국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프로바이오틱스 기업을 세우겠다는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81
“대금을 달러로 받으면 부도 위기를 겪지 않을 것이다. 그래,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자!”
쎌바이오텍은 2 000년대 초부터 듀얼 코팅 기술을 높이 평가한 이스라엘, 프랑스,
이탈리아 기업들의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 상표 부착 생
산) 주문을 받으면서 수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유산균 종주국인 북유럽 OEM
과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 생산) 시장에도 도
전장을 내밀었다. 해외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2 006년에는 덴마크에 현지 법
인을 설립했다. 덴마크 시장 점유율이 70%대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OEM과 ODM 방식만으로는 제품력을 강화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자체 상표가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 10년 프
로바이오틱스 완제품인 자체 브랜드 듀오락을 개발해 체계적으로 유럽 시장 진출
을 준비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201 4년, 유산국의 종주국인 덴마크에서 듀오락
을 런칭하는 데 성공했다. 짧은 시간 안에 듀오락의 덴마크 시장 점유율은 2 0%대
로 성장했고, 덴마크 약국 10곳 중 9곳에 듀오락 제품이 입점해 있다.
월드챔프와 함께 유산균의 나라 덴마크 공략
덴마크는 정명준 대표에게 의미가 큰 시장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프로
바이오틱스 종주국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프로바이오틱스 기업을 세우겠다는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81

그의 꿈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 OEM과 ODM 기업으로 입지를 굳힌 덴마크에서 자체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원
히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감히 ODM 계약을 끊고 자체 브랜드
로 승부를 걸었죠.”

자체 브랜드 듀오락으로 덴마크에서 새로운 승부를 벌이는 쎌바이오텍의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 바로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이었다. 사실 140여 년이 된, 세계
적인 유산균 기업이 둘이나 있는 유산균 종주국 덴마크에서도 프로바이오틱스를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또한 판매 방식에서도 도매상이나 약국 체인을
통한 단순 약국 판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전문적이고 전략적인 마케팅 방
법이 필요했다. 쎌바이오텍은 덴마크에 맞는 온·오프라인의 철저한 시장 공략 마
케팅 전략을 세웠고, 때마침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보다 적극적이고 전폭적인 온
라인, 오프라인 마케팅을 전개했다.

듀오락 제품의 덴마크 시장 확대를 위해 온라인 샘플링 모듈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온라인에서 무료 샘플을 요청한 예비 고객을 대상으로 복용 후
소비 심리적으로 고안된 설문에 답변하도록 하여, 결국 고객 스스로 제품에 대한
니즈를 확인하고, 약국에서 스스로 구매할 있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잠재 고
객을 실제 고객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마케팅 투자에 힘입어 듀오락 제
품의 덴마크 판매량은 1년 동안 2.2배 상승했다. 쎌바이오텍은 2015년의 성과에

18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힘입어 20 16년에도 온라인 샘플링 시스템을 활용한 마케팅을 벌여 2년 연속 긍
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쎌바이오텍은 온라인 샘플링 마케팅과 함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 블
로그, 구글 배너 등의 온라인 광고와 현지 의사, 약사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쎌바이오텍은 앞으로 월드챔프 사업에 힘입어 덴마크의 시장
점유율을 40%대로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 내 신규 파트너 발굴 및 시장 확
대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미국과 싱가포르에서도 월드챔프
쎌바이오텍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덴마크뿐 아니라 미국과 싱가포르에서도 마
케팅 사업을 펼쳤다. 미국은 인스턴트 식품의 범람으로 성인 소화기 질병이 많은
만큼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쎌바이오텍은 듀오
락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20 15년과 20 16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건강
보조식품 박람회 ‘Supply Side West’ 전시회에 참가했다. LA 무역관은 전시회 부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83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83

스 설치 제작업체 선정과 계약을 지원하고, 전시회에 참가하는 바이어를 대상으
로 이메일을 발송해 현장 미팅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했다. 전시회를 통
해 쎌바이오텍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500만 명 정도인 작은 나라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에 따라 쎌바이오텍은 2015년 4월 싱가포르
에서 듀오락 브랜드를 런칭하고,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
갈 계획이다. 2016년 하반기부터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의사와 약사들을 대상
으로 듀오락 제품 설명회를 개최하고, 의약품 전문 책자 <MIMS>에 광고를 게
재하는 등 마케팅 활동을 시작한 쎌바이오텍은 2017년에도 싱가포르를 목표시
장으로 선정하고 싱가포르 무역관, 전문위원과 함께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18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85 Ⅲ. 제약·의료기기 | 쎌바이오텍 185

완제 의약품으로
‘제약 주권’을 실현하다


06
한국인이 주인인 다국적 제약 기업
한국유나이티드제약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큰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

“강덕영, 너 자꾸 이럴래?”
“왜요 선생님?”
“누가 책상 위에 자꾸 그런 거 써놓으라고 했어! 가서 얼른 치워라.”
“네. 알겠습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강덕영 사장은 어려서부터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 꿈이
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시절 책상에 ‘사장’이라고 쓴 명패를 붙여놓았을까. 덕
분에 그는 선생님께 심하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큰 회사의 사장이야말로 그의 꿈이자 희망이었다.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 되다

학창 시절 리더 역할을 도맡아하며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온 그는 1971년 군대를 제
대한 후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스위스 산도스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제가 하던 일은 주로 개인 의원에 다니며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이었
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던지 구두 뒷굽을 한 달에 한 번씩 갈
정도였죠.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 위해 적어도 열 번 이상 병원을 방문
했습니다. 한 번 고객이 되면 끝까지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더욱 더 노
력했습니다.”

18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드디어 꿈을 이루다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서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매
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가졌던 ‘큰 회사의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독립할 때다!
제법 큰 다국적 기업인 산도스제약에서 일하며 약품 수입상으로 독립하는 영업
사원들을 보았던 그는 자신도 과감하게 그 길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행운도 따랐
다. 우연찮은 기회로 인연을 맺게 된 유대인 의약품 중개상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의 약을 처음으로 수입하게 됐다.
수입 판매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그는 약을 개발해서 생산까지 하고 싶다
는 새로운 꿈에 도전했다. 기존의 제약 회사를 인수해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렇게 198 7년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첫 발걸음을 떼었다. 그런데 그가 막 품목허
가를 받고 설비를 늘려가고 있던 즈음에 정부의 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술 의무화
조치가 내려졌다. 의약품 생산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진 것이다. 또한 당시는 내수
시장이 과열돼 수출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89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89

“이미 국내에는 300여 개의 제약 회사가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밥그릇
싸움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넓은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벌여
보겠다는 포부를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완제 의약품 생산의 수출은 대기업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국의 제약회사들은 외국에서 원료와 상품을 가져다가 로열티를 주고
국내 장사에만 매달렸다.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이 부분이 늘 마음에 걸렸던 강덕
영 사장은 지금이야말로 정면승부를 벌일 때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우리의 기술
과 원료만을 사용해 완제품을 만들어 세계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자사 약
품과 수입 제품의 판매를 병행하는 여타 국내 제약회사들과 달리, 자체 기술과 상
표만으로 제품을 생산해 다른 나라에 로열티를 한 푼도 주지 않는 ‘제약 주권’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최초로 ‘1일 1회 1정’ 복용 약 개발

2009년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주관하는 ‘아시아·태
평양 지역 200대 유망 기업’으로 선정됐다. 포브스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주
력 제품인 항암제, 항생제, 순환기계용제, 비타민, 소화기계용제 등이 세계적인 경
쟁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 시설을 기반으로 R&D에 투자, 신약 개발에 끊
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19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이듬해인 20 10년에는 아세클로페낙 성분의 소염진통제 개량 신약 ‘클란자CR정’
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량 신약이란 원래
있던 신약과 성분·약효가 유사하지만, 그 약이 효과를 잘 내도록 하는 데 필요한
물성을 변경하거나 제형 등을 바꾼 것을 말한다. ‘클란자CR정’ 성분인 아세클로페
낙은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자체 합성한 원료로 이미 지난 2 006년 EDMF(Euro-
pean Drug Master File : 유럽 의약품 등록제)에 등록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등 유럽 전 지역에 수출되고 있었다.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1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1

하지만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1일 2회 복용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연
구를 계속해 24시간 약효가 지속됨으로써 1일 1회 1정만 복용해도 되는 약을 세
계 최초로 개발해 낸 것이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매년 매출액 대비 12% 이상
을 연구 개발에 투자함으로써 클란자CR정에 이어 클라빅신듀오캡슐(항 혈전제
인데 기존에 따로 먹던 아스피린 성분을 포함시켜 편의성을 높인 제품), 실로스탄
CR정(항 혈전제), 칼로민정(급성기관지염 치료제) 등을 개발하면서 한국의 제약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월드챔프로 베트남에서 이룬 ‘빅뱅’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해외에 생산 기지와 지사,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 기업으로 우뚝 섰다. 90년대 초부터 대기업조차 어렵다던 의약품 수출 전선
에 뛰어들어 전 세계 40여 개국에 항암제, 항생제, 비타민제 등 완제 의약품을 수
출하고 있다. 2016년 전체 매출액 1,760억 원 중 15%를 해외에서 거둬들였다. 베
트남, 필리핀, 미얀마, 중국 지사와 베트남, 이집트 법인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유
나이티드제약은 2004년부터 베트남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철저한 현지
화 사업을 통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목표 시장을 베트남으로 정하고 집
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제약 시장의 블루오션인 베트남에서는 글로벌 다
국적 기업들의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유나이티드제
약은 부족한 현지 인력과 해외 마케팅 활동에 드는 비용 부담 때문에 2014년 월

19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드챔프 사업 이전까지만 해도 멀티비타민 제품인 홈타민 위주로 CSR(사회공헌사
업) 활동을 하는 게 마케팅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호치민 무역관은 베트남 시장에 맞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
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이에 따라 기존 관절염에 주로 처방되
는 소염 진통제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복용의 편리성과 효능을 높인 개량 신약 클
란자CR정의 판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약 6개월의 준비
끝에 20 15년 11월 베트남 현지에서 단독 마케팅 행사인 ‘클란자CR정 아시안 심포
지엄’을 개최했다. 호치민 무역관과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아시아 지역을 타깃으
로 한국,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등 각국의 무릎 관절 전문 의사들과 주요 바이어
들을 초청한 뒤, 서울대 의사들로 구성된 KOL(Key Opinion Leader)를 통해 클란
자CR정의 임상 사례와 가이드 라인을 공유했다.
호치민 지역의 세 군데 병원에서 진행된 심포지엄에는 아시아 4개 국에서 약 3백
여 명의 의사와 의약품 관계자들이 참석해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개량 신약인 클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3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3

란자CR정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심포지엄은 단순히 기업과 제품을 홍보하는
장이 아니라, 임상 사례와 지식을 공유하는 학술적 네트워크의 장으로서 한 단계
진화된 마케팅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성과는 수출 실적으로도 이
어졌다. 이전까지 10만 달러에 이르던 클란자CR정의 베트남 수출액이 단독 컨퍼
런스 이후에는 60만 달러가 훨씬 넘어서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2015년 8월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항암 전문의 800여 명이 모인 ‘아시아
태평양 항암 학회’에 참가했다. 호치민 무역관에서는 베트남 지역을 타깃으로 주
요 잠재 고객들을 초청했고, 학회 기간에는 기업 브랜드 홍보를 위해 판촉물을 제
작, 배포했다. 특히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을 지닌 한국 항암 제품에 대한 선호에
힘입어 아시아태평양 항암 전문의들에게 항암 제품의 전 라인을 갖춘 한국유나이
티드제약의 항암 제품 목록을 전달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우크라이나 시장을 향한 칠전팔기 정신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나 아직 CIS(독립국
가연합) 국가들과는 인연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두바이에서 개최된 의료 전시
회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Takeda(Takeda Ukraine)와 우크라이나 대표 제약업체
중 하나인 Pharmex Group이 한국유나이티드제약에 높은 관심을 보임에 따라 우
크라이나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9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한국유나이티드 제약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우크라이나 제약 시장 진출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코트라 키예프 무역관은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바이어
간의 접촉을 적극 지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시장 진입 장벽은 높았다. 한국과
의 거래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두 기업과의 거래가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이
되었다. 하지만 키예프 무역관은 우크라이나 내에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제품 라
인업에 관심이 있는 잠재 바이어들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바이어 발굴에 나섰
다. 높은 수준의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제품군에 대한
바이어들의 반응은 곧장 나타났다.
20 15년 12월에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제품 홍보 및 브랜드 인지도 확산을 위해
추진한 단독 홍보 로드쇼에 2 6개 바이어사에서 참가해 관심을 보였다. 단독 로드
쇼를 계기로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우크라이나 진출을 위해 현재 의약품 등록을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CIS 국가들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 도시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장으로 점쳐진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코트라 월드챔프는 칠
전팔기의 정신으로 계속 우크라이나 시장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월드챔프는 엄청난 사업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제약 업체 특성상 제품 홍보를 위한 행사를 많이 한다. 베
트남의 경우 201 4년부터 해마다 월드챔프 지원 사업을 통해 1년에 10여 개 이상
씩 크고 작은 마케팅 행사들을 개최했다. 그럴 때마다 호치민 무역관과 담당 전문
위원이 행사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해주었다. 행사 하나를 치르고 나면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5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5

계약서만도 10~20개가 발생하는데 이 모든 것을 빈틈없이 처리해주는 것은 늘
호치민 무역관이었다. 2015년에는 계약서만 해도 100건이 넘었을 정도였다. 한
국유나이티드 해외영업 담당자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코트라 무역관의 지원
이 없으면 해외에서 행사를 절대로 못한다”고 잘라 말한다. 그만큼 한국유나이티
드제약의 해외 사업에 월드챔프 사업은 절대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19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월드챔프 이전에는 베트남에서 1년에 한두 번
씩 CSR 활동을 통해서만 해외 마케팅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월드챔
프 사업에 참여한 후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며 값진 노하우들을 얻게
되었죠. 월드챔프 사업은 1년에 2억짜리 사업이 아니라 20억 더 나아
가 200억짜리 이상의 사업입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월드챔프 사
업을 통해 단순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마케팅 효
과를 거뒀습니다.”
한국유나이티드 해외영업 담당자는 당장 2년 후 월드챔프 사업을 졸업하면 어떻
게 사업을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당장 지원이 끊기면 기업은 비용 대비 효과
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행사 하나를 하는데 너무 힘이 들게 뻔
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런 것만 봐도 월드챔프 효과는 두말하면 잔소리라며 월드
챔프는 정말로 ‘엄청난 사업’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앞으로도 월드챔프와 함께 ‘엄청난 사업’을 계속 펼쳐나갈 것이다.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7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월드챔프 이전에는 베트남에서 1년에 한두 번
씩 CSR 활동을 통해서만 해외 마케팅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월드챔
프 사업에 참여한 후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며 값진 노하우들을 얻게
되었죠. 월드챔프 사업은 1년에 2억짜리 사업이 아니라 20억 더 나아
가 200억짜리 이상의 사업입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월드챔프 사
업을 통해 단순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마케팅 효
과를 거뒀습니다.”
한국유나이티드 해외영업 담당자는 당장 2년 후 월드챔프 사업을 졸업하면 어떻
게 사업을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당장 지원이 끊기면 기업은 비용 대비 효과
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행사 하나를 하는데 너무 힘이 들게 뻔
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런 것만 봐도 월드챔프 효과는 두말하면 잔소리라며 월드
챔프는 정말로 ‘엄청난 사업’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앞으로도 월드챔프와 함께 ‘엄청난 사업’을 계속 펼쳐나갈 것이다.
Ⅲ. 제약·의료기기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97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01 3대째 전통 장을 담그는 ‘장인 기업’, 샘표식품
02 화장품용 ‘펌프’로 세계를 ‘펌핑’하다, 연우
03 K뷰티 열풍의 숨은 주역, 한국콜마
Success Stories of Wor ld Champ Service

식품·화학

3대째 전통 장을 담그는
‘장인 기업’


01
‘우리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다
샘표식품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1대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 ‘샘표’

2016년 창립 70년을 맞은 샘표식품의 역사는 194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창업
주인 고 박규회 명예회장이 충무로 대한극장 건너편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던 소스
공장을 인수한 것이 모태가 됐다.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사람들은 예전처럼 집에서 장을 담
가 먹을 수가 없었다. 특히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겐 장(醬)을 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 박규회 명예회장은 간장이 없어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렴하고 깨끗한 장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한다. 하지
만 당시는 장을 사먹는다는 개념이 전혀 생기지 않은 시절이라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손수 간장병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간장의 맛을
보이는 방법으로 샘표를 알려나갔다.

고 박규회 명예회장은 “내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말
라”는 경영 이념을 한평생 지켜나가고 자식들에게도 강조했다. 휴전협정 체결 후
인구가 급증하면서 장의 수요도 늘어나 조악한 품질이 시장에 유통됐지만, 그는
품질이 좋은 고급 간장을 공급하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54년 천연 양조 순곡 간장을 제조하고 이 간장에 “맑고 깨끗하게 솟아오르다”
라는 의미의 ‘샘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인
‘샘표’(등록번호 362호)가 탄생했다.

1959년에는 샘표 간장의 역사적인 첫 수출이 이뤄졌다. 우수한 품질로 국내 소비
자들을 사로잡은 샘표 간장을 엄격한 품질 기준을 요구하는 미 8군에서도 먹는다
는 것을 알게 된 홍콩에서 수출 제의를 해온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총 수출 규

20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모는 미화 1만 불이었다. 샘표 간장의 해외 수출은 국가적인 경사로 뉴스에서도
보도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2대 -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
197 6년 고 박규회 명예회장으로부터 샘표식품을 물려받은 2대 고 박승복 명예
회장은 샘표식품을 국내 1위, 세계 3위 간장 제조업체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은
행원에서 시작해 공직에 몸담아오다 5 5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샘표식품의 경영
을 맡은 그는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품질과 원칙’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았
다. 그는 세계 최고 품질의 간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세계 최대의 간장 공장을
짓기도 했다.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3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3

특히 1985년 ‘간장 파동’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유명 프로그램
에서 간장을 불법으로 만드는 현장을 고발한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무허가 제
조 업체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소비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샘표 간장을 바
라봤다. 고 박승복 명예회장은 정면승부를 통해 문제를 돌파하기로 했다. TV 광고
의 모델로 직접 출연해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
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렇게 샘표는 식품업계 최초로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
는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당시 식품업체들은 영업 비밀이라고 생각해
제조 현장을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박 회장의 결정은 식품업계의 금기를 깨는 것
이었다.

3대 - 전통 조선 간장을 복원하다

샘표는 간장과 같은 발효 기술을 기반으로 고추장, 된장 등의 장류는 물론 발효흑
초 ‘백년동안’을 비롯한 각종 소스류와 식초, 수산물·과일 통조림, 면류, 차류 등으
로 품목을 확장하며 종합 식품 회사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1997년 취임한 3세 경영인 박진선 대표이사는 회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마케
팅을 시작해 샘표식품을 대한민국 대표 장류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콩알 메주 공법 및 제조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2001년 우리 선조들
이 담가먹던 전통 방식 그대로의 장맛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식문화를 되

20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살려내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오랜 시간 집념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전통 한식 간장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박진선 대표는 발효를 기반으로 식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우리 식문화에서 중요한
콩 발효를 이용해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요리 에센스 ‘연두’를 개발했고, ‘샘표
장 프로젝트’, ‘우리 맛 연구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우리 맛으로 세계인을 즐겁
게’라는 샘표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세계인의 식탁에서 숙성되는 우리 장맛
K푸드 열풍으로 간장은 ‘매직 소스’라 불리며 세계 시장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
다. 한 가지 맛밖에 낼 수 없는 소금이나 후추에 비해 우리 전통 발효 식품인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은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
무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전통 발효 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개발한 요리 에
센스 ‘연두’는 짠 맛은 덜어내고 감칠맛은 높여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5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5

샘표식품은 ‘우리 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라는 비전을 세우고 한국의 장을 체계
적으로 분석해 세계 각 지역의 현지 요리에 접목시킬 방안을 연구해왔다. 그 일환
으로 스페인의 알리시아 요리과학 연구소와 협업해 스페인 음식에 사용되는 장(
醬) 활용 레시피를 개발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 저널리스트, 동종 업
계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80여 국에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의 전통 장류와 소스를 수출하고 있는 샘
표식품은 2013년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에 참여하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식품의 수출은 그 나라 사람이 아니면 경험해보지 못
한 낯설고 생소한 제품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비해 수출이 어려운 면이 있다. 하
지만 각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잘만 만들면 시식이나 시음 등을 통해 단시간
에 반응을 얻을 수 있고, 한번 길들여지면 꾸준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만큼 샘표식품은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시식이나 시음, 홍보에 많
은 비용을 쓰고 있다. 장류가 생소한 해외 소비자들에게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자
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트라 해외 무역관과 함께 맨발로 뛰다

LA법인과 뉴욕지사를 통해 미국 시장을 공략해온 샘표식품은 월드챔프 이전에는
주로 현지 교포 위주로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월드챔프 사업에 참여하면서 코
트라 뉴욕 무역관과 긴밀히 협조해 다수 바이어들과 미팅을 갖고 박람회 등에 참

20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가하면서 현지인 대상으로 시장을 넓혀 나갔다. 이렇게 2년여 정도 사업을 진행
한 결과 20 15년에는 미국 2위 대형 마트와 계약이 성사돼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
고 있다. 이 업체는 미국 전역에 약 4천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샘표 식품의
간장, 고추장 등 장류가 3천 개 매장에 들어가고 있다.
또한 월드챔프가 주관한 박람회를 통해 유기농 식자재를 판매하는 대형 마트 체
인과 미팅이 이뤄져 현재 미국 법인에서 제품을 개발, 완료하고 판매를 준비 중
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코트라 무역관이 큰 힘이 됐다.
코트라 무역관은 샘표식품 담당자와 함께 맨발로 뛰며 일일이 마트를 방문해 미
팅을 주선하고, 박람회에 나갈 때는 좋은 자리를 선점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유럽 시장 진출에도 코트라 월드챔프가 함께 했다. 유럽 시장은 매출로 확대되려
면 미국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가능성이 높은 시장으로 점쳐진다. 왜냐
하면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 수가 많고 외국인들이 많
이 살고 있는 영국과 독일은 현지 식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 타깃 시장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프랑스에서 단독 제품 설명회를 개최하고 벨기에
유명 요리사를 초청해 제품 시연회를 갖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인 샘표식
품은 이러한 이유로 3년 전부터는 독일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월드챔프를 통해 참가한 박람회에서 큰 성과를 거둔 샘표식품은 지난
20 15년에는 독일에서 2년마다 열리는 국제식품박람회 ‘ANUGA’에 부스를 마련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7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7

해 제품을 홍보하고 신규 거래선을 발굴했다. 그 결과 독일 1위와 3위 대형 마트
사에 입점해 장류를 판매하고 있다. 샘표식품은 내년에도 이 박람회에 참가해 기
존 거래처인 입점 마트사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 행사를 벌여 입지를 다져나
갈 계획이다.

월드챔프는 샘표식품의 든든한 맏형

샘표식품과 코트라 무역관 그리고 1대1 멘토링을 지원하는 전문위원의 3각 협업
체계는 샘표식품의 해외 진출에 큰 시너지를 발휘했다. 해외 박람회는 신규 거래
선 발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영향력 있고 계약 체결 가능성이 큰 업체들
이 많이 방문할수록 성과가 클 수밖에 없다. 샘표식품이 한국에서야 국내 1위 간
장 업체이지만 해외에서는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 기관인 코트라의
위상은 다르다. 코트라에서 업체를 선정해 샘표식품을 소개해주고 박람회 참여를
권하면 참여율과 상담에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코트라의 정보력이 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 진출한 동종 업계의
현황과 성공 요인, 실패 요인 등을 분석해 앞으로 샘표식품의 진출 방향을 제시해
주면 그걸 바탕으로 담당자가 출장을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일을 진행해 나
가는 절차를 밟기 때문에 코트라의 정확한 정보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샘표식품의 해외영업팀 담당자는 월드챔프를 통해 맨 처음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코트라 뉴욕 무역관 직원과 고생을 함께하며 끈끈한 동지애를 느꼈다고 회고
한다.

20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무역관에서 이메일을 보내 약속한 마트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미팅을
했어요. 문전 박대도 많이 당했죠. 그때를 생각하면 고생한 기억밖에 없
어요. 미국은 세계 각국에서 온갖 장류가 다 들어와 있기 때문에 시장
을 뚫기가 더욱 어려워요. 특히 식문화가 발달한 뉴욕의 마트 주인들은
전문 지식이 높아서 무역관 직원과 함께 고민한 끝에 두 번째 출장 때
는 아예 유명 셰프를 대동했어요. 보통 1시간이면 끝나는 미팅이 2시간,
3시간 토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 성과는 굉장히 좋았
어요. 아마 코트라 무역관이 없었다면 그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지 못했
을 것 같아요.”
그는 또한 코트라 무역관의 노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한다. 코트라 무역
관이 식품만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다 보니,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쪽 분야에 대
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일이 진
행될수록 실력이 월등히 늘어 나중에는 단순히 지원을 해주는 단계를 넘어 적극
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전문위원 제도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다소 이질감이 들었다고 한다. 식품 분야에
대해 자신들보다 잘 모를 텐데, 사업 초기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때론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역시 그분들의 내공은 무시할 수
가 없었다. 그분들의 다양한 산업, 제품 분야에서의 경험과 해외 여러 지역에서의
폭넓은 마케팅, 영업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큰 그림
을 볼 줄 알았다. 해외 사업을 하려면 때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
때마다 전문위원들의 적절한 조언들이 아주 큰 힘이 되었다.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9
“무역관에서 이메일을 보내 약속한 마트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미팅을
했어요. 문전 박대도 많이 당했죠. 그때를 생각하면 고생한 기억밖에 없
어요. 미국은 세계 각국에서 온갖 장류가 다 들어와 있기 때문에 시장
을 뚫기가 더욱 어려워요. 특히 식문화가 발달한 뉴욕의 마트 주인들은
전문 지식이 높아서 무역관 직원과 함께 고민한 끝에 두 번째 출장 때
는 아예 유명 셰프를 대동했어요. 보통 1시간이면 끝나는 미팅이 2시간,
3시간 토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 성과는 굉장히 좋았
어요. 아마 코트라 무역관이 없었다면 그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지 못했
을 것 같아요.”
그는 또한 코트라 무역관의 노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한다. 코트라 무역
관이 식품만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다 보니,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쪽 분야에 대
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일이 진
행될수록 실력이 월등히 늘어 나중에는 단순히 지원을 해주는 단계를 넘어 적극
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전문위원 제도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다소 이질감이 들었다고 한다. 식품 분야에
대해 자신들보다 잘 모를 텐데, 사업 초기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때론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역시 그분들의 내공은 무시할 수
가 없었다. 그분들의 다양한 산업, 제품 분야에서의 경험과 해외 여러 지역에서의
폭넓은 마케팅, 영업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큰 그림
을 볼 줄 알았다. 해외 사업을 하려면 때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
때마다 전문위원들의 적절한 조언들이 아주 큰 힘이 되었다.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09

샘표식품은 월드챔프 사업 전만 해도 코트라는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는 기관이라
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업을 하면서 워낙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젠 코트라가 주
관하는 사업은 다 찾아보고 접목할 수 있는 사업이면 무조건 신청하고 있다. 알고
보니 코트라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든든한 형’이었던 것이다.

단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정부기관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며 함
께 발전하는 동반자로서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이룩한 샘표식품은 해외 진출을 준
비하는 후발 업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한다.


“코트라는 문턱이 높은 정부 기관이 아닙니다. 코트라 사이트에 가면 2
년치 사업이 다 뜹니다. 그 가운데 분명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을 거
예요. 그럼 망설이지 말고 신청하세요. 전 세계에 무역관이 다 나가 있
는 코트라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21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Ⅳ. 식품·화학 | 샘표식품 211

화장품용 ‘펌프’로
세계를 ‘펌핑’하다


02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도전
연우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어느 날 ‘펌프’에 빠진 남자

고교 졸업 후 각종 용기의 뚜껑에 금속 코팅하는 일을 하던 기중현 사장은 1983년
연우를 설립하고 화장품 용기 제조 사업에 나섰다. 그때만 해도 직접 화장품 용기
를 제작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다른 데서 생산한 용기에 알루미늄을 덧대는 후가
공을 하던 하청 업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에서 수입한 펌프형 화장품 용기를
보다가 그만 ‘펌프’에 빠져버렸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화장품용 펌프가 전부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 우리 기술력으로 한번 만들어보는 거야!”


21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펌프 용기에 빠진 기중현 사장은 물불 가리지 않고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사실 그
때만 그는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일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미리 알았다면 그는 아마도 펌프 개발에
그렇게 쉽게 뛰어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병원 침대에서도 꼭 쥐고 있던 펌프 용기
기중현 사장은 화장품 펌프 용기를 개발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일본 유명 회사 화
장품들을 구입해 뜯어보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펌프
형 용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국산 개발이라는 부
푼 꿈을 안고 뛰어들었던 다른 국내 업체들도 모두 실패하고 중도 하차했다. 함께
제품을 개발하던 기술자들도 두 차례나 포기 선언을 했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기술 개발에 열중하고 있
을 때 그만 졸음 운전을 하던 트럭에 치여 1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도 가만히 누워만 있지 않았다. 병원 침
대에 누워서도 손에서 펌프를 놓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수많은 시행착
오를 거치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기를 1년 반. 드디어 19 90년 화장품용 디
스펜서 펌프(Dispenser Pump : 펌프를 누를 때마다 용기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
이 일정량씩 밖으로 나오는 제품)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Ⅳ. 식품·화학 | 연우 215

병원 침대에서도 꼭 쥐고 있던 펌프 용기

기중현 사장은 화장품 펌프 용기를 개발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일본 유명 회사 화
장품들을 구입해 뜯어보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펌프
형 용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국산 개발이라는 부
푼 꿈을 안고 뛰어들었던 다른 국내 업체들도 모두 실패하고 중도 하차했다. 함께
제품을 개발하던 기술자들도 두 차례나 포기 선언을 했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기술 개발에 열중하고 있
을 때 그만 졸음 운전을 하던 트럭에 치여 1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도 가만히 누워만 있지 않았다. 병원 침
대에 누워서도 손에서 펌프를 놓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수많은 시행착
오를 거치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기를 1년 반. 드디어 1990년 화장품용 디
스펜서 펌프(Dispenser Pump : 펌프를 누를 때마다 용기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
이 일정량씩 밖으로 나오는 제품)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Ⅳ. 식품·화학 | 연우 215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기중현 사장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펌프형 화장품 용기로 번 돈을 과감
히 재투자해 오늘날의 연우를 있게 한 ‘진공 펌프’(Airless Pump)형 화장품 용기
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다.

진공 펌프형은 기존 화장품 용기에 들어 있던 흡입관(빨대)를 없앤 것이다. 일반
펌프형 용기의 경우 흡입관이 닿지 않는 부분의 내용물은 버릴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연우의 진공 펌프형 용기는 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펌프를 누를 때마다
내용물이 균등하게 위쪽으로 올라오도록 돼 있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버리지
않고 쓸 수 있다. 또한 화장품의 내용물과 외부 공기를 차단시켜 변질되지 않은 깨
끗한 화장품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이 30% 정도 비쌌지만 시장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화장품
용기의 트렌드가 화려함보다 심플하면서도 기능성이 강조되는 쪽으로 바뀌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을 계기로 연우는 더 이상 하청업체가 아니라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연우의 펌프는 특별하다

연우의 전체 매출 중 진공 펌프형 용기의 비중은 약 70%에 이른다. 이제는 전 세
계 수많은 화장품 용기에 펌프를 사용하지만, 연우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
보적인 기술로 세계 1위 진공 펌프형 화장품 용기 제조 업체로 도약했다. 탄탄한

21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기술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첫째, 원하는 만큼 정확하게! 둘째, 끝까지 남김 없이
깨끗하게! 셋째, 변질 없이 첫 느낌 그대로! 라는 펌프형 화장품 용기의 세 가지 요
건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우의 가장 큰 경쟁력은 바로 R&D(연구개발) 역량이다. 국내 화장품 용기 업체
로는 최대 규모의 R&D 인프라를 갖추고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 화장품이 공
기 중에 노출돼 산화되는 것을 막는 기술, 펌프 노즐에 남은 내용물을 용기 내부
로 빨아들이는 기술 등 화장품 용기 관련 특허만 155개에 이른다. 2 01 4년에는 세
계포장기구(WPO)의 ‘월드스타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디자인 역량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며 품질을 차별화한 것도 성공 비결이다. 기중현 사장은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한다.
Ⅳ. 식품·화학 | 연우 217 Ⅳ. 식품·화학 | 연우 217

“업계에서 살아남는 기업을 보면 저가 정책을 펴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천 원짜리라도 금방 망가지고 기능이 없으면 비싸게 느낍니다. 하지만
만 원짜리라도 오래 가고 성능이 좋으면 싸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제품 개발을 통해 연우는 국내 1위 화장품 용기 업체로
성장했다. 전체 화장품 용기 시장의 38%를 차지하고 있고, 상품군만 2만 종이 넘
는다. 화장품 가게에 진열돼 있는 용기의 70%가 연우의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연우는 한국을 화장품용 펌프의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위상을 변화시켰
다. 전 세계 화장품 100대 기업 중 47개 기업이 연우의 고객이다. 특히 세계 화장
품 1위 기업인 로레알은 연우를 매년 화장품 패키지 1위 회사로 꼽을 정도로 신뢰
가 두텁다. 연우는 로레알이 매년 개최하는 대대적인 행사에 화장품 용기 업체로
는 처음으로 3년 연속 초청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조건 하루 100장씩 팩스 날려!

지금은 해외 수출액이 전체 매출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했지만, 2000년 초만 해도 연우의 수출은 걸음마 단계였다. 연우는 1998년 뉴
욕 화장품 포장재 박람회에 참가하며 해외 판로 개척에 나섰다. 하지만 2년 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무조건 하루 100장씩 해외 화장품 제조 회사에 팩
스를 넣었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헛되지
는 않았다. 해외 수출은 인내와 의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

21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2 000년 역사적인 첫 수출이 성사된 후 미미한 성과가 이어지
다가 200 3년 연우의 우수한 펌프형 용기가 글로벌 기업의 고급 제품에 들어가면
서 해외 수출의 물꼬가 터졌다. 200 3년 ‘5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데 이어
2 005년 1천만 불, 20 11년 5천만 불, 201 4년 7천만 불 수출을 달성하며 세계 속에
서 급성장한 연우는 2 01 7년에는 1억 불 수출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다.
월드챔프와 함께 아시아 시장 개척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연우는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20 12년
월드챔프 사업에 참여했다. 목표 시장은 중국과 홍콩 그리고 태국이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거래처도 하나 없는 불모지였다. 그런데 월드
챔프를 통해 상하이 무역관과 함께 여러 가지 마케팅 활동을 벌이며 작년에 첫 거
래를 성사시키는 등 점차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경제 성장에 따라 중국의 화장
품 시장이 고급화되면서 패키지 또한 고급화하고 있는 추세인데, 바로 그들이 원
하는 1순위 기업이 연우다. 연우는 나날이 늘어나는 중국의 화장품 제조 회사들
과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 16년 초에 상하이에 중국 법인을 설립했고, 상
하이 옆에 있는 소주에 20 18년 가동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다. 연우의 현지 생
산 능력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중국 화장품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게 한층 용
이해질 전망이다.
Ⅳ. 식품·화학 | 연우 219 Ⅳ. 식품·화학 | 연우 219

홍콩의 화장품 시장은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연우의 화장품 용기와 맞는 고급
브랜드가 많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역이다. 또한 유럽과 미국, 중국 등의 글로벌 기
업이 모두 모이는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연우는 월드챔프의 지원을 받아 홍콩에
서 열리는 국제 전시회인 ‘코스모프로프’에 매년 참가했다. 단독으로 부스를 꾸미
고 그곳에서 만난 많은 고객사들과 미팅을 통해 매출도 급상승했다.

연우의 기술, 태국에서 포텐 터지다

태국의 경우는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태국 또한 처
음 진출할 때만 해도 거래처가 한 군데도 없는 불모지였다. 태국은 전세계 화장품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 생산)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는 점
에서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또한 태국을 거점으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
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진출하기도 용이하다.

이렇듯 태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인원과 예산의 한계로 인해 연
우는 선뜻 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12년 월드
챔프 사업이라는 든든한 지원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연우와 코트라 방콕 무역관
은 태국 시장에 맞는 마케팅 전략이 무엇일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브랜드
를 강화할 수 있는 로드쇼를 개최하기로 했다. 로드쇼는 화장품 용기 업체로는 연
우가 처음으로 도입한 행사였다. 이렇게 해서 2013년부터 ‘연우 로드쇼’(Yonwoo
Convention in Thailand)가 매년 태국에서 성황리에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22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Ⅳ. 식품·화학 | 연우 221 Ⅳ. 식품·화학 | 연우 221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로드쇼는 해마다 발전하고 있는데, 2016년 개최된 로드쇼
는 그 어느 해보다 성공적이었다. 이전보다 2배 가량 많은 80여 개 업체에서 170
여 명이 로드쇼를 찾았다. 쉴 새 없이 상담이 이어졌고, 행사가 끝난 후에도 현지
에 남아 3일 동안 미팅을 해야 했을 정도로 연우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뜨거웠다.
2016년 태국에서 800만 개나 팔리며 가장 히트를 친 제품은 진공 크림자(jar)였
다. 진공 펌프 시스템을 갖춘 크림을 담는 용기인데, 손에 묻히지 않고 한 번 누르
기만 하면 원하는 만큼의 크림이 나오는 제품이다. 직원 3명으로 막 회사를 창업
한 태국의 한 회사는 로드쇼를 통해 연우의 크림자를 구매해 200억 달러의 매출
을 올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연우는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태국뿐만 아니라 홍콩
과 유럽으로 로드쇼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태국에서 로드쇼가 이렇듯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연우의 기술력이 첫 번째 요인
이다. 하지만 태국 시장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두긴 어려웠을 것이다. 3년 동안 로드쇼를 함
께 기획하고 준비해온 연우와 코트라 방콕 무역관 그리고 중견기업팀 전문위원의
환상적인 팀워크가 로드쇼 성공의 또 하나의 열쇠가 된 것이다.

1 대 1 멘토링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코트라 전문위원은 로드쇼를 단순 제품
홍보, 회사 소개에서 탈피해 현장에서 고객과 상호 교감하고 상담할 수 있는 브
랜드화된 행사로 만들자고 연우에 제안했다. 그리고 세계의 화장품 트렌드와 K

22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뷰티 등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우의 제품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하면 더 풍
성한 로드쇼가 될 것이라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연우와 코트라 월드챔프 팀
은 이러한 방향에 합의하고 함께 자료를 공유하고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 조언
을 아끼지 않으면서 로드쇼를 준비했다. 3년 동안 세계 시장 개척이라는 하나
의 목표를 향해 ‘총성 없는 전쟁’을 함께 치르면서 어느새 연우와 코트라는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에서 성공적인 진
출을 이룬 연우는 이제 중남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멕시코의 백화점에
연우의 수려한 화장품 용기가 진열될 때까지 코트라 월드챔프는 아름다운 동행
을 계속할 것이다.
Ⅳ. 식품·화학 | 연우 223 Ⅳ. 식품·화학 | 연우 223

K뷰티 열풍의
숨은 주역


03
아름다움 그 이상의 가치
한국콜마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역사 선생님이 꿈이었던 소년

“동한아, 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노?”
“지 꿈은 역사 선생님이라예~”
“니는 역사가 그리 좋나?”
“네~ 역사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옛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듭니다. 그뿐입니꺼?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또 얼
마나 많은데예~”


그러나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아이 윤동한은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고등
학교 3학년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
기 때문이다.

한 번의 눈물

역사 선생님의 꿈을 접은 윤동한은 취업이 잘 되고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경영학
과에 진학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 대신 지방에 있는 영남대를
택했다. 졸업 후에는 당시 최고의 직장으로 꼽혔던 농협에 취직을 했다. 구두 한
켤레 값이 1,800원이던 시절 그의 월급은 9만 원. 동네 쌀가게에서 외상으로 쌀을
들여놓아줄 만큼 좋은 직장이었고, 윤택한 생활도 누릴 수 있었다.

22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하지만 그의 가슴 한 켠은 늘 허전하기만 했다. 또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
이 누락되는 등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때마다 가슴에 울분이 쌓였다. 그러던 차
에 친한 친구 한 명이 유학을 떠나기 전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친구는 같이 유학을 떠나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홀
어머니와 오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와 새벽까지 엉엉 울었습니다. 꿈의 길목마다 발
목을 잡는 가난이 원망스럽기만 했어요. 한바탕 울고 나니 정신이 번
쩍 들더라고요.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부자가 아니어도 정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곤 곧 답을
얻었습니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일은 기업밖에 없다고요.”
두 번의 ‘바보’ 같은 선택
농협에서 5년을 근무한 윤동한은 창업이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 이직을
결심한다. 대기업에서 스카우드 제안을 받았지만 작은 곳에 가야 경영을 위한 관
리, 생산, 영업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당시 중소기업이었던
대웅제약을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왜 작은 회사로 가느냐
며 ‘바보’라고 놀렸다.
회사를 옮긴 후 전국 팔도를 누비며 병원과 약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나중에 사
장이 되면 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모든 결정을 내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27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27

릴 때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내가 사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대웅제약 시절 자
신의 회사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경험이 나중에 사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윤동한은 승승가도를 달렸다. 40대 초반에 부사장까지 올랐다.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CEO 자리를 제의해왔다. 그가 속한 대웅제약에서도
사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CEO가 되는
것이 모든 직장인의 꿈 아니던가. 하지만 윤동한은 두 자리를 모두 뿌리쳤다. 지금
이 아니면 기업을 시작하기 힘들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또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한국이 아니라 미스터 윤만 믿겠다

제약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릴 만한 회사를 고민하던 윤동한 대표는 화장품
업계에서 답을 찾았다. 그때만 해도 국내 화장품 산업의 규모는 작았지만 소득


22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이 늘면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 국내 화장품 시장은 기획부터 제조
와 유통을 통합하는 시스템이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이를 분리해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도 제조와 판매가 구분되면 좀
더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나아가 화장품 산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미국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 납품하는 미국콜마를 찾아가 기술을 제공
해달라고 했죠. 하지만 한국 진출 계획이 없다며 보기 좋게 거절당했어
요. 그런데 그곳에서 일본콜마가 한국 투자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곧바로 오사카로 달려갔죠.”
합작 당시 일본콜마는 지분을 많이 가져가려는 다른 한국 기업과는 달리 오히려
자신들이 제의한 지분보다도 낮은 투자 액수를 제안하는 윤동한 대표에게 놀라는
반응이었다. 의문을 갖는 그들에게 윤동한 대표는 “오너십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나는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의 열정을 높이 산 일본콜마는 “한국이 아니라 미
스터 윤만 믿고 투자하겠다”며 합작 제안을 받아들였다. 19 90년 1월 윤동한 대표
는 일본콜마와 계약을 맺고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 상
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화장품 제조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화장품 제
조 전문 기업 한국콜마는 충남 연기군의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3명으로 조
촐하게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창업의 길은 쉽지 않았다. 화장품 회사들은 세금계산서 없는 무자료 거래
를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단가를 너무 낮게 후려쳤다. 거래처의 요구를 거절하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29
이 늘면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 국내 화장품 시장은 기획부터 제조
와 유통을 통합하는 시스템이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이를 분리해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도 제조와 판매가 구분되면 좀
더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나아가 화장품 산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미국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 납품하는 미국콜마를 찾아가 기술을 제공
해달라고 했죠. 하지만 한국 진출 계획이 없다며 보기 좋게 거절당했어
요. 그런데 그곳에서 일본콜마가 한국 투자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곧바로 오사카로 달려갔죠.”
합작 당시 일본콜마는 지분을 많이 가져가려는 다른 한국 기업과는 달리 오히려
자신들이 제의한 지분보다도 낮은 투자 액수를 제안하는 윤동한 대표에게 놀라는
반응이었다. 의문을 갖는 그들에게 윤동한 대표는 “오너십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나는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의 열정을 높이 산 일본콜마는 “한국이 아니라 미
스터 윤만 믿고 투자하겠다”며 합작 제안을 받아들였다. 19 90년 1월 윤동한 대표
는 일본콜마와 계약을 맺고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 상
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화장품 제조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화장품 제
조 전문 기업 한국콜마는 충남 연기군의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3명으로 조
촐하게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창업의 길은 쉽지 않았다. 화장품 회사들은 세금계산서 없는 무자료 거래
를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단가를 너무 낮게 후려쳤다. 거래처의 요구를 거절하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29

자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를 차려놨는데 일감이 없었다. 전기세를 내지 못
해 한전으로부터 단전 통보를 받기도 했다. 직원들은 당분간만이라도 거래처 요
구를 들어주자고 했지만 윤동한 대표는 한 번 어기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원칙을
지켰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연구 개발에 힘을 쏟으며 새로운 방안을 찾
기 시작했다.

투웨이케익을 아시나요?

화장품에 대해 잘 모르는 남성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먹는 케익인가?’ 하는 궁금
증을 가질지도 모른다. 또 화장품과 케익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웨이케익은 1990년대 초반 화장품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
킨 최고의 히트 상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전기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연구 개발에 몰두했던 윤동한
대표가 드디어 일을 냈다. 한국콜마의 기술력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고체형 파운데이션인 투웨이케익의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파운
데이션은 모두 액체형이었다. 화장품을 손에 묻히지 않고도 간편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휴대도 간편하며, 무엇보다 파운데이션과 파우더의 효과를 동시에 만족시
키는 투웨이케익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투웨이케익의 대성공으로 회사가 안정궤도에 오르자 윤동한 대표는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띄운다.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제조만 하는 OEM 방식은 미래가 없다고

23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판단하고 업계 최초로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
발 생산)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것이다.
OEM과 ODM은 생산한 제품에 제조사의 상표가 아닌 주문자의 상표가 부착된다
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두 비즈니스 모델의 가장 큰 차이는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느냐 여부다. ODM은 독자적 기술력으로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개발해 품질 관
리를 거쳐 납품하기까지 전 과정에 거쳐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윤동한 대표가 과감히 ODM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
었기 때문이다. 한국콜마는 전체 직원의 30% 이상이 연구 인력으로 구성돼 있
고, 매년 전체 매출의 6% 정도를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보유하
고 있는 화장품 제조 기술만 2만여 개가 넘는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인 GMP(우수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도 화장품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오래 가는 것이 가장 빨리 간다
“오래 가는 것이 가장 빨리 간다”는 교훈이 담긴 우보천리(牛步千里; 소 걸음으
로 천 리를 간다)를 경영 이념 삼아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우직하게 걸어온 윤동
한 대표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을 세우겠다’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힘찬 발걸음
을 내딛고 있다.
한류의 영향으로 K뷰티 열풍이 불면서 한국콜마는 세계적인 화장품 ODM 기업으
로 성장했다. 한국콜마가 만든 화장품을 판매하는 국내외 회사는 LG생활건강, 아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31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31

모레퍼시픽, 에스티로더, 록시땅, 로레알, 코티 등 500여 곳에 달한다. 특히 그동
안 미국, 유럽, 일본 업체와만 거래하던 에스티로더가 처음으로 한국 기업인 한국
콜마와 제품의 개발과 공급을 계약해 주목을 끌고 있다.

윤동한 대표가 세계적인 화장품 ODM 토털 컨설팅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곳은 중국 시장이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자,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화장품을 사용
하는 사람은 아이들과 노년층을 제외하면 중국 인구의 20%밖에 되지 않기 때문
에 중국 화장품 시장의 성장세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도 좋다는 것.

한국콜마는 2007년 자회사인 북경콜마를 설립하고 중국에 진출한 해외 브랜드
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콜마가 납품하는 중국 회사는 이미 100
여 곳에 이른다.

파트너십을 통한 상생의 정신


“글로벌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현지화 비즈니스 모
델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진출하고자 하
는 국가나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현지화 전략을 구현하지 못할 경우
성장 가능성은 낮아요. 특히 현지의 우수 인력을 토대로 조직을 확보하
고 적극적인 친화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3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윤동한 대표는 또한 협력업체와 상승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생산성을 높
이고 판매 효율을 극대화하는 파트너십 경영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한국콜마
가 중국 진출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
도 바로 파트너십을 통한 상생의 정신이 밑바탕이 되었다.
한국콜마는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도 코트라와 파트너십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이
뤄냈다. 해외 진출 초기부터 중국의 다롄 무역관, 홍콩 무역관, 미국의 뉴욕 무역
관, 유럽의 파리 무역관과 긴밀한 협조를 맺어온 한국콜마는 20 12년 월드챔프 사
업에 참가하면서 더욱 끈끈한 파트너가 됐다. 월드챔프 사업에 참가한 후 1년 만
에 100만 달러 규모의 수주를 확정한 데 이어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와 제품 개
발 계약을 맺기도 했다.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33

한국콜마는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도 코트라와 파트너십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이
뤄냈다. 해외 진출 초기부터 중국의 다롄 무역관, 홍콩 무역관, 미국의 뉴욕 무역
관, 유럽의 파리 무역관과 긴밀한 협조를 맺어온 한국콜마는 2012년 월드챔프 사
업에 참가하면서 더욱 끈끈한 파트너가 됐다. 월드챔프 사업에 참가한 후 1년 만
에 100만 달러 규모의 수주를 확정한 데 이어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와 제품 개
발 계약을 맺기도 했다.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33

오랫동안 험난한 해외 시장을 함께 개척해오면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중시하는 한국콜마의 기업 정신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코트라 무역관들은 마
케팅 전략이나 방법에 있어서 효과적인 제안을 할 수 있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코트라의 월드챔프 프로그램에 참가
한 한국콜마는 브랜드 쇼케이스 이벤트, 브랜드 개발 및 공동 마케팅 등에 집중했
다. 특히 한국콜마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인 홍콩에서 유통망을 확장하
기 위한 마케팅을 전개할 때 홍콩 무역관이 지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새로운 시장 개척도 월드챔프와 함께

2016년 6월 홍콩에서 개최된 신제품 로드쇼인 ‘홍콩 프라이빗 PT 투어’는 코트라
홍콩 무역관의 지원 하에 이루어졌다. 홍콩 무역관은 이벤트 장소 및 호텔 예약,
현지 교통 조달, 현장 지원 및 예산 집행 등 모든 1:1 맞춤형 이벤트 플래닝을 제공
해 한국콜마의 신제품 로드쇼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3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홍콩 로드쇼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클라이언트인 대만의 가장 큰 온라인 스
토어인 페이이지(P ay E asy)와 중국의 가장 큰 생활용품 브랜드 스토어인 미니소
(Miniso)를 초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홍콩 로드쇼에서 한국 콜마의 제품들에 깊
은 감명을 받은 페이이지(P ay E asy)는 3개월 후 한국콜마의 제품을 주문하며 첫
계약을 맺었다.
홍콩 로드쇼를 통해 신규 업체뿐만 기존 클라이언트들과도 활발한 신제품 개발
논의가 이루어졌다. 홍콩의 3대 메이저 유통업체의 하나인 사사(SASA)와 Cyber
Colors & Color Combos 브랜드의 신제품 개발에 대해 논의했으며, The Beauty
Group은 홍콩과 중국 본토 프랜차이즈 상점에서 자사의 제품 라인업을 개발할
수 있는지 타진해왔다.
홍콩 로드쇼는 한국콜마가 중국, 홍콩을 비롯해 아시아 클라이언트들과 장기적으
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중한 플랫폼이 되었다. 한국콜마는 월드챔
프 사업을 통해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주를 넘어, 중동 및 남미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한국콜마는 코트라와 함께 적극
적인 해외 마케팅 전략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35 Ⅳ. 식품·화학 | 한국콜마 235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


수출전문위원으로부터
듣는 월드챔프사업
부록
SuccessStories of WorldChampService
수출전문위원으로부터
듣는 월드챔프사업
부록
SuccessStories of WorldChampService

전문위원 소감 1 전문위원 소감 1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지난 2012년부터 월드챔프 참가 기업들과 5년간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영
업 위주의 기업이 해외 사업 영역을 구축, 확장해 우량 기업이 되는 과정을 처음부
터 졸업 시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전문위원의 역할 정립이 분명치 않았던 사업 초기에 업체 담당자들로부터 코트
라의 비상근 근무자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들으며 존재감의 혼동을 실
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위원의 조언과 도움 없이는 월활한 사업 수
행이 어렵다고 진지하게 인지하는 기업 담당자의 솔직한 고백을 듣게 되었다. 업
무 외에도 자신들의 진로는 물론 인생 문제에 대한 상담까지 해왔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어려웠던 점

전문위원과 업체 담당 직원은 수직적인 것도 아니고 수평적인 것도 아닌 특수한
관계에 있다. 이런 현실적인 관계로 인해 사업 초기에는 전문위원의 독자적인 존
재감이 결여되어 위상 정립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업체의 입장에서는 매우 많이 남는 장사]다.

윤대중

국내 대기업의 해외 영업본부에서 완제품 및 부품 수출 등 다양한 경험을 습득했다. 미국
에서 약 8년 간 주재원 생활을 통해 사업·문화적인 안목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 후 중견
기업에서 약 5년간 근무한 경험은 월드챔프 기업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의 기반이 되었다.

238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전문위원 소감 2 전문위원 소감 2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전문위원은 월드챔프 업체 직원들과 연초에 로드맵을 공동으로 작성해 수년 동
안 열심히 지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수출 실적이 큰 폭으로 늘어
나 담당 직원이 포상, 진급, 해외법인 근무 등으로 나가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올
때 내 일처럼 보람을 느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해외 무역관의 월드챔프 전담 직원이 퇴사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는데 지원 업
체의 현지법인으로 이직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보게 되었다는 반가움 외에
도 그 직원이 이전 경험을 통해 사업 내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어서 협조도 잘
되고 수출 실적 증대 및 업무 진행이 매끄러워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다.

가장 어려웠던 점

사업 초반기에 업체 직원과 무역관 직원 간에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업무 진행
중 마찰이 생겼을 때 막후조정이 힘들었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가족]이다.

홍순관

국제상사 기계플랜트 사업본부에 10년 정도 근무한 후에 독립해 주로 기계류 수출입하는
무역회사를 경영했다. 주 시장은 미주, 동남아시아, 중동 국가들이었다. 방글라데시와 인도
네시아 주재원을 수년간 지냈고, 퇴직 후에는 무역협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부록 239


전문위원 소감 3 전문위원 소감 3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월드챔프 사업 지원을 통해 업체의 해외 매출이 매년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특히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구축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또한 기본적으로 진행되는 로드맵상 사업 이외에 업체의 마케팅 활동에
추가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들을 현지 무역관과 적절히 협조해 지원함으
로써 업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도 자부심을 느꼈다.

가장 어려웠던 점

해외 무역관의 경험 있는 인력이나 업체의 숙련된 직원들이 퇴사하고 월드챔프
담당자가 신입사원으로 되어 있을 때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해외 시장의 챔피언 육성 사업]이다.

신기준

삼성물산에서 25년간 해외영업을 담당했다. 삼성물산 근무 중 대만 및 중국에서 10년간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240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전문위원 소감 4 전문위원 소감 4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월드챔프 참가 기업이 미국 시장 진입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월드챔
프 사업으로 컨설팅을 1년간 진행했다. 그 결과 적절한 현지 파트너 2곳을 선정
해 1백만 불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 시장 진입 기반을 구축했을 때 가장 큰 보람
을 느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무역관 전담 직원과 기업을 방문했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예상치 않게 기업 사
장님을 만나 티타임을 가졌다. 사장님과의 담소가 길어져 지하철역에서 기차역
플랫폼까지 역주를 하여 겨우 KTX 출발 직전에 탑승할 수 있었다. 무역관 직원
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귀임 후 두고두고 얘기를 했던 게 기억에 남
는다.

가장 어려웠던 점

기업 및 무역관 월드챔프 전담 직원이 교체되었을 때 지속적인 협업 관계 유지 및
심도 있는 마케팅 지원에 어려움이 있었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Super Star K ]이다.

(잘 활용하면 World Super Star가 될 수 있음)

배경한

종합상사에서 30년 이상 해외 마케팅, 해외 투자 사업을 진행했고 아시아 및 중동 지역에서
10년간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2014년 3월부터 월드챔프 사업 수출전문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부록 241


전문위원 소감 5 전문위원 소감 5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단순 영업 마인드에 젖어 있는 참여 기업들에게 마케팅의 중요성을 고취해 기업
들이 기존의 관행적인 마케팅 방법을 재검토할 때 자부심을 느낀다. 더불어 효과
적인 마케팅 툴에 대한 전략 자문을 통해 기업의 마케팅 방법이 고도화되고 이것
이 매출 성과로 이어질 때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2011년 V사가 멕시코 사업에서 단순 전시회만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V사를 설득
해서 전시회 + 로드쇼 패키지 마케팅을 제안했다. 전시회 석 달 전부터 전문 용역
채용을 통한 인적 마케팅, 잡지 광고 등 Pre-Marketing을 통해 로드쇼 당일에 전
년도 멕시코 수출액의 4.5배에 해당하는 계약을 성사시키고, 그 다음에 현지 법인
까지 설립하도록 이끌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어려웠던 점

월드챔프 사업은 기존의 코트라 사업과 다른 부분이 많아 초기에 무역관의 사업
이해도 부족으로 인해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전문위원은 국내에서
컨설팅의 역할에 그치게 되므로 실제 해외 현장에서 일어나는 마케팅 활동에 참
여하지 못해, 현장감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최선의 마케팅 전략 자문에 한
계가 있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코트라의 미래]다.

김준형

삼성물산 이스라엘 지점장, 맥슨텔레콤 이동통신 사업부장 등을 역임했다. 월드챔프 사업
초기(2011년 3월)에 코트라에 입사해 월드챔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42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전문위원 소감 6 전문위원 소감 6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담당 업체가 매년 매출이 늘어나고, 매출 최대치를 기록할 때, 월드챔프 사업에 적
극적인 자세를 보일 때, 월드챔프 담당자가 승진할 때, 코트라의 도움으로 신규 지
역에 물량이 처음 나갔을 때 보람을 느낀다.

가장 어려웠던 점

월드챔프 사업을 열심히 하던 업체가 중간에 월드챔프 사업 참가 대상 기업에서
탈락할 때 가장 안타깝다. 또한 사업 환경의 어려움으로 큰 진전을 못하고 있을 때
나 월드챔프 담당자가 바뀔 때도 어려움을 느낀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필수]다.

한철

해외영업 마케팅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해외 법인에서 실제 유통 확대, PSI 관리
및 마케팅 프로모션 기획, 집행을 담당했다.

부록 243


전문위원 소감 7 전문위원 소감 7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여러 가지 보람이 있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속적
인 사업 지원으로, 소비재 제품 기업이 미국 내 최대 유통업체를 개발하고, 자동
차 부품회사가 미국 내 완성차 신규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둘째, 2016년
상반기에 세계일류상품 관련 정보를 보고, 기업에 사전 예고해, 그해 세계일류상
품으로 2개 모두 최종 선정되어 감사하다는 실무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 등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2016년 12월 월드챔프 워크숍에 미국 디지털마케팅회사 사장을 초청해 “디지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 특강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서 월드챔프 참
여 기업들이 최근 마케팅 트렌드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강사는 시차, 일교차, 미세먼지 등으로 독감에 걸려 크게 고생했다는 소식을 들었
다. 이 자리를 빌려 특강 제안자로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가장 어려웠던 점

참여 기업들의 중요 해외 전시회나 고객 대상 제품/기술 설명회에 현지 출장 가이
드 및 지원 요청이 있었으나, 현지 실무 지원 외에 해당 산업 분야의 전문 인력을
적절히 제공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Road to the future Global Company ]이다.

이용주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 30여 년간 국내외 회사에서 해외마케팅, 해외영업, 브랜드
전략, 홍보전략 등을 담당했다. 삼성전자에서 21년간 근무하며 프랑스와 튀니지 주재원
으로 지냈다. 철강회사인 동부제철과 캐나다, 이란 현지 로컬 회사에서도 근무했다.

244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전문위원 소감 8 전문위원 소감 8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월드챔프 참가 업체가 로드맵을 작성하고 실행할 때 전문위원이 코칭한 사업이
매출 증대 등 효과가 있었다고 이야기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또한 업체가 원하
는 VOC(VOC : Voice Of Customer)를 즉시 해결해줄 때도 무척 기쁘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지방출장을 갈 때 업체별로 나눠드릴 다이어리와 캘린더를 한 가득 준비한다. 그
무겁던 짐이 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점점 가벼워지던 기억이 새롭다. 마지막 방문
업체가 있던 부산 달맞이 고개는 아주 가뿐히 올라갈 수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

월드챔프 업체의 해외 담당 인력이 많지 않다.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도 많다. 좀
더 자주 만나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적어서 아쉬웠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내 사업]이다.

김선영

30년간 대기업에서 Global Brand Marketing을 담당했다. 브라질 지점장, 미국 지역 전문가와
마케팅/영업/물류/금융 등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부록 245


전문위원 소감 9 전문위원 소감 9
월드챔프 사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

쉽지 않은 환경에서, 월드챔프 활동이 판매로 직결되었다는 업체의 감사 전화를
받았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또한 참가 업체들과 영업 및 마케팅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전문위원의 경험이 업무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고 할 때도 무척 기뻤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업체의 위치가 떨어져 있어, 한여름에 4~5km를 찾아 걸어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
금도 땀이 난다. 업체에서 몇 번이나 마중을 나오겠다는 것을 거절(?)한 게 큰 실
수였다.

가장 어려웠던 점

업체의 담당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많고, 해외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
그때 그때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어렵다.

월드챔프 사업은 [ ]이다.

월드챔프 사업은 [업체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정태석

27년간 삼성전자에서 휴대폰 영업 및 마케팅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주요 브랜드 광고 제작,
글로벌 런칭 통합 마케팅을 직접 수행했다. 13년간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시장 개척 및
폭발적인 판매 증대에 기여했다.

246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KOTRA 자료 16-053

Success Stories of World Champ Service

월드챔프 성공사례집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한 20개 기업의 수출 성공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