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디자인은 1986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해 한국에는 90년대 후반에 들어왔다. IMF 시절이었다.
김영세 대표가 1976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얘기다. 첫날, LA 공항에 내렸을 때 23살 청년에게 광대한 도시가 주는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가슴속 깊이 스스로 각오를 다지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당시에는 디자인을 공부하러 간 사람 중에 김 대표가 선구자 역할이기도 했기에 더욱 비장했다. 단단한 각오로 비행기에서 내려오면서, 하루빨리 배우고 한국에 디자인의 뿌리를 내리겠다고 생각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생각한대로 되었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판교에 있는 김영세 대표를 만나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가며 디자인의 의미를 들어본다.
Q. 이노디자인에 대한 소개 바란다.
이노디자인 코리아를 설립한 지 이제 16년이다. 최근 판교 테크노밸리에 디자인 센터를 만들었고, 씽크탱크가 될 거라 기대한다. 여기 디자인센터는 창의적인 인재가 모이는 곳이다. 서서히 변화의 시작을 느끼면서 판교테크노 밸리에 대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5년 전에 테크노밸리 개발자들이 찾아와서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설득해 참여했다. 이노디자인 코리아는 창의적 국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생각했다.
Q. 김 대표의 현재 목표와 디자인이 중요성은 무엇인가?
40년 전 유학시절의 생각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생각은 젊었을 때나 현재나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 10위권 코리아의 위상처럼 숫자로 증명되는 코리아 브랜드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한국은 딜레마이기도 하다. 아직 성공사례는 선대 창업자들이 만든 내용이 대부분이다.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란 거물들이 60년대부터 시작한 잿더미에서 일군 경제이다. 현대적인 기적은 굴뚝 산업이었다. 열정과 몸으로 때우는 내용은 중요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험과 실적, 그리고 노하우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터닝 포인트 시기이며, 창의적 경쟁력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디자인이라 감히 말한다.
Q. 구체적으로 디자인의 이해와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디자인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디자인 관계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맨이 깨우칠 필요가 있다. 강연이나 저서를 통해 메시지는 전달된다. 디자인은 사실 디자이너들만 실행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술과 사뭇 다르다. 비즈니스에서 맞장구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생산 후 파는 기업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아이디어를 현장으로 연결하는 일이 디자인에서 어려운 일이다. 창작에는 낭만적 일이 많은데, 디자인은 현실적인 비즈니스와 바로 접목한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불가하다. 대체로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Q. 아이랩을 소개 바란다.
이노디자인의 연구소인 아이랩이 출범했다. 디자이너 중심이지만 디자이너가 아니라도 디자인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협업 프로젝트로 운영한다. 산업군에서 디자인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경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부터 디자인하고, 광범위한 디자인의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아이랩의 역할이다.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가능한 일이 한계를 가진다. 다르게 보면, 이노디자인이 최고의 학교이자 교육시설이 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과제로 마치지만, 여기는 돈 벌면서 배우는 현장이다. 청년들은 배움이 결코 대학에서 끝나는 게 아니란 점을 느껴야 한다. 나 자신도 지금 배우고 있고 영원히 배운다. 배움은 하나의 실험이고 마지막 장이 없는 과제이다.
Q. 기업을 대하는 것에 있어 어떤 애로점이 있는가?
컨설턴트의 애로는 의식의 차이이고 기업문화의 차이일 수 있지만, 첫 번째 '갑을관계'의 기업문화가 걸림돌이다. 자본주의 최고 국가라는 미국에는 없는 갑을방식이 한국에는 굳건히 정의되어 있다. 트위팅에서 제안을 했지만, 계약서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 정부에서 개선하길 바란다. 갑을 자체가 일본식이다. 사실은 갑, 을이 이상하게 번역이 되어서 갑이 우선이고 을이 열등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로 이상하게 변질해온 것이다. 하지만 컨설턴트는 진단하는 사람이다. 선생님처럼 모시는데, 을이라서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자기 역할을 못하는 문제도 있다.
두 번째는 NIH 증후군이 문제다. 힘들게 디자인해서 주면 그대로 안 받아들이기도 한다. 시간낭비, 열정과 정력 낭비가 아닌가. 그럼으로써 창업에서의 문도 막힌다. 기업에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더 알려주고 싶어서 우리가 존재한다.
Q. 스티브 잡스가 다룬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서만은 나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1999년 시드니에서 세계디자인 컨퍼런스 발표한 내용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주제가 'Design first!' 디자인은 마치 청사진과 같다. 우선시되어야 시작된다. 디자인 회사는 기업이 부르기 전부터 디자인하고 기업이 불렀을 때 먼저 이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후에 실제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리버의 디자인이 큰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스티브잡스는 책을 통해 대중에게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 디자이너에게 우선 작업시키고 엔지니어에게 다음을 시켜라. 사용자에게 감동을 전하기 위한 디자인을 먼저 해라. 그것이 큰 차별화이다. 확실한 철학의 차별화에서 제품의 가치는 창조된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선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Q. 어린시절 꿈은 무엇이었나?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내가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미대 가서 디자인 공부한다니까 크게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예체능에 능력이 좀 더 뛰어났다. 성장기에 음악도 하고 유학준비도 하면서 화려한 사춘기를 보냈다.
유학은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왔고 꿈이었다. 아마 외국 영화를 자주 보다가 동경심이 싹트지 않았나 한다.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나를 영화관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영화에서 나오는 자동차나 발전된 도시, 멋있는 집에 푹 빠져서 막연하게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다 디자인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서점의 한 책꽂이에서 빼내 본 책에서 동경했던 아름다운 물건들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또 다른 세상이고 물건이었다. '아, 이런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존재하구나' 그 책 제목은 <industrial design="">이었다. 외국잡지였는데 아마 국내에선 최초로 정기구독한 독자였을 것이다.</industrial>
Q. 미국 생활은 어땠나?
디자인(Industrial Design)의 뿌리인 빅터파파넥 교수의 디자인 포 리얼 월드(Design for Real world)를 대학시절에 읽고 크게 심취했다. 그러면서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디자이너들이 장식적으로만 꾸미는 것이 안타까웠다. 만일 차 앞쪽에 있는 재떨이를 운전석에서 1cm만 실수로 멀게 놨다면, 사망하는 사람들이 훨씬 적을 거라 생각했다. 아름답게 꾸미는 것만이 아니고 실제로 <인간의 존엄성>을 존경하는 생각이 없으면 훌륭한 디자인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몇 년 만에 빅터 교수를 만났다. 나는 일리로이 대학의 유학생이었고, 교수는 칸자스 시티 예술대 강연 자리였다. 제일 앞쪽에 가서 앉았다.
사실 대학교 강의에 가면 앞자리 학생들을 먼저 훑어보는 이유도 같다(웃음). 용케 교수들이 모이는 저녁 리셉션 자리를 알아내고, 용감하게 들어가서 옆자리 앉았다. 잠시 기회를 보다가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고 책을 통해 교수님을 잘 안다. 한국말로 번역하고 싶고, 제자가 되고 싶다. 지도를 한 학기만 해달라" 하니 한국에서 자신의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지만, 예상외로 반기면서 바로 허락했다.
캔자스에서 텍사스까지 차량으로 열 다섯 시간 가량 소요된다. 그럼에도 한 달에 몇 번씩 오가는 일을 한 학기 동안 계속했다. 더욱 대단했던 일은 교수가 직접 방을 비워주면서 지내라고 했고, 샌드위치도 해줬다. 스승과 제자는 이렇게 밤새도록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게 디자인을 배울 수 있었다.
Q. 한국에서 디자인이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마치 한 때 유행한 '창조경제' 라는 단어처럼 정책적으로 디자인의 전환점을 의식한다는 것조차 다행이다. 하지만 과연 무슨 뜻인지는 잘 짚어봐야 한다.
산업시대적 코리아에서 창조시대적 코리아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글로벌 개념의 도입과 변화가 필요하다. 산업 시대에는 블루칼라 화이트 칼라만 존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구분은 하지만 그 안에 문제가 있다. 더 이상 생산과 사무직이 있는게 아니라, 수많은 영역과 인재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스티브 잡스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실리콘 밸리이고 아마 나도 그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문득 '퍼플 칼라'가 생각났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미래. 그래서 '퍼플피플'란 책을 준비했다.
Q. 퍼플피플이 의미하는 바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퍼플 피플'은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블루영역은 앞으로 로보트가 일자리를 뺏어간다. 화이트가 많은 사무실 일은 대부분 컴퓨터가 뺏어간다. 모두 취업이 걱정거리인 세상이 오고 있다. 이런 시대에서 근본적 방법은 퍼플피플이란 인재가 있고 따로 남는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취업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일을 만들어서 평생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는 생활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인생의 그림에는 캐리어가 필요하다. 일과 캐리어 차이점을 바로 봐야 한다. 그래서 퍼플 피플의 개념이 확장되어야 한다.
마이크로 인트레프레노(Micro Entrepreneur)들이 나서야 하는 시대다. 디지털 세상,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처럼 거대한 플래폼에서 굉장히 짧은 시간에 대성하는 젊은 창업자들이 많다.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기회의 내용이다. 아무리 기술이 인간이 하는 일을 뺏어가도 상상력은 못 뺏어간다. 그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퍼플피플'이다.
Q. 앞으로 계획
40년전부터 계획한 '대한민국에 디자인의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나 역사가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과 병행해서 가는 것에 대해서 행복하게 생각한다. 점점 할 일은 많아지고 있다.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에서 랩을 출범했고, 이제는 실질적 디자인을 접목하는 도전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