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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LOUNGE]바이오 사랑에 빠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수앱지스)

하이거 2014. 4. 28. 12:16

[CEO LOUNGE]바이오 사랑에 빠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수앱지스)
골리앗(세계적 바이오업체)에 도전장 내민 다윗(이수앱지스)

 

2014-04-28 10:34:22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53)의 바이오 사랑이 유별나다. 지난 2000년 이수그룹 회장에 오른 뒤 15년간 김 회장은 숱한 고비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이오 사업에 투자해 왔다. 바이오 기업 이수앱지스가 적자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직원들마저 위축돼 있을 때 김 회장이 직접 회사를 방문해 직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당장 성과를 못 낸다고 주눅 들 필요 없습니다. 바이오 사업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입니다. 길게 봅시다.”

지난 4월 초 이수그룹 핵심 계열사 이수화학이 미국 슈퍼박테리아 치료제 개발사 ‘FOB신세시스’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했을 때도 재계의 관심이 쏠린 건 이 같은 김 회장의 행보 때문이다. 다들 바이오 계열사 이수앱지스에 이어 이수화학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냈다. 이수화학 관계자는 “지분 투자한 회사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증자를 요청해 왔다. 주주 차원에서 투자한 것”이라면서도 “바이오 사업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신성장동력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범 회장과 바이오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김상범 회장이 부친 故 김준성 명예회장에 이어 이수그룹 2대 회장에 취임했을 때다. 당시 그룹에서는 신사업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화학만으로는 비전이 없다고 본 것이다. 후보군으로 제약과 생명공학이 떠올랐다. 이 중 제약업에 힘이 쏠리는 듯했다. 화학 분야의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약업에 진출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연구개발(R&D)도 일부 진행됐다.

김 회장 생각은 달랐다. 제약과 생명공학 둘 다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미래 성장성이 더 큰 생명공학이 좀 더 유리할 것으로 봤다. 제약에서 생명공학으로 급선회를 한 배경이다. 2000년 5월 김 회장이 취임한 지 5개월 만에 이수화학 내에 생명공학사업부가 생겼다. 컨설팅 업체 아서디리틀(ADL)에 의뢰해 세부 분야는 항체 치료제로 결정했다. 항암제, 자가면역성 질환 치료제 분야의 전문가 영입에도 나섰다.

내친김에 김 회장은 2001년 연세의료원과 합작으로 바이오벤처 ‘페타젠’을 설립했다.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 진단 기술과 신약 개발이 주목적이었다. 페타젠 대표에는 이수화학 생명공학사업본부장을 앉혔다. 이후 투트랙(Two-track) 체제로 진행되던 바이오 사업은 2004년 하나로 통합됐다. 지금의 이수앱지스다.

이수화학, 세탁용 세제 원료 국내 독점

PCB업체 이수페타시스, 캐시카우 역할

이수앱지스 “그룹 미래 먹거리 책임”


이수앱지스는 현재까지 절반의 성공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수앱지스가 기대를 많이 걸었던 난치성, 전이성 암 치료제(ISU101, 102)와 패혈증, 천식 등의 자가면역성질환 치료제(ISU201) 개발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 2007년 항혈전 치료제 ‘클로티냅’을 시작으로 2010년과 올해 각각 ‘애브서틴(고셔병 치료제)’과 ‘파바갈(파브리병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생명공학 사업에 뛰어든 지 7년 만에 국내 1호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더니 이후 전 세계 몇 안 되는 희귀질환제를 연이어 내놓은 것. 김상범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이 또한 불가능했을 거란 평가다.

올 초 이수앱지스가 식약처로부터 승인받은 파브리병 치료제는 국내 제약사 녹십자에서도 개발하고 있는 제품이다. 녹십자는 여전히 임상 1상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수앱지스와 녹십자의 경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빗대기도 한다. 비록 이수앱지스가 업력, 규모 면에서는 녹십자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집중력과 순발력만큼은 녹십자를 앞섰다는 얘기다. 파브리병 치료제 파바갈은 오는 7월 국내 시장에 출시된다.

김상범 회장이 일군 이수앱지스가 미래 이수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현재 이수그룹의 양대 성장 축은 이수화학과 이수페타시스다. 세탁 세제 원료인 알킬벤젠을 생산하는 이수화학은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전 세계 시장점유율 4위를 달린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8000억원.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이수페타시스는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하는 업체로 그룹 계열사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첨단 장비부터 범용 제품까지 각종 기기에 들어가는 PCB를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은 5300억원대. 전년 대비 매출이 30%가량 늘었다.

이에 반해 이수앱지스는 실적 면에서 내세울 게 없다. 지난해 매출액은 82억원, 영업이익은 63억원 적자였다. 반면 연간 R&D 비용으로만 50억~70억원이 투입된다. 수익은커녕 돈만 잡아먹는, 조그만 계열사 중 하나인 셈이다.

그러나 미래 성장 가능성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이수앱지스는 류머티즘관절염 치료제(ISU202), 유방암 치료제(ISU103) 등 바이오시밀러와 혈우병 신약(ISU304)을 개발 중이다. 류머티즘관절염 치료제와 유방암 치료제는 단일 제품 하나로만 수조원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신진철 이수앱지스 기획관리팀장은 “2018년 이후 이들 제품 상용화가 예정돼 있다. 그 전에라도 기술 이전을 통해 이익을 내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2016년경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근 이수그룹 내 몇 가지 변화도 바이오 사업의 위상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김 회장은 올 초 ‘제2의 창사’를 주창했다. 회장직에 오른 지 15년 만이다. 1996년 이래 쭉 써오던 그룹 CI도 교체했다. 김 회장이 부친이 세운 회사를 물려받은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경영 철학을 담아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키워드는 젊고 스마트함이다. 지난 45년간 화학 산업을 기반으로 이수그룹이 성장했다면, 이제는 신규 사업을 통해 그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이다. 이수앱지스가 주목받는 이유다.

지난해 말 주요 계열사 사장단 인사는 이 같은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이수, 이수화학, 이수페타시스, 이수앱지스 대표가 한꺼번에 물갈이됐다. 이수앱지스 CEO로는 김대성 ㈜이수 기획 담당 전무가 선임됐다. 이수화학과 ㈜이수의 핵심 부서를 거친 김대성 대표가 미래 성장동력인 이수앱지스를 이끌기에 적임자라고 본 것이다. 이수그룹의 한 관계자는 “젊은 경영진을 앞단에 배치해 좀 더 공격적으로 그룹을 운영하겠다는 게 최근 인사의 핵심”이라며 “이수앱지스도 이제는 R&D 조직이 아닌 사업 조직으로서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다만 김 회장이 바이오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하려면 몇 가지 걸림돌부터 제거해야 한다. 우선 경영난에 빠진 이수건설의 처리 문제다. 이수건설은 지난 몇 년간 건설업 불황에 맥을 못 추면서 그룹 재무 상황까지 악화시킨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말 이수화학은 500억원을 들여 이수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이수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잔액 규모가 1000억원대 초반으로 줄었다지만, 향후 분양 성패에 따라 언제든 그룹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손봐야 한다. 현재 이수그룹은 지주사 형태를 띠지만, ㈜이수 위에 엑사켐이라는 화학제품 전문 유통 회사가 또 하나 있다. ‘옥상옥(屋上屋)’ 형태인 것. 지난 2003년 다른 재벌기업보다 앞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투명기업을 강조한 김 회장이 스스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상범 회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엑사켐은 비상장사로 이수화학 제품을 주로 취급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수그룹이 지주사 전환 당시 스웨덴 재벌 ‘발렌베리’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수를 상장시키고, 옥상옥 형태를 깨트려야 할 것이다.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바이오 그룹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귀띔한다.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 일러스트 : 김민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55호(04.30~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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