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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메이커 MD의세계⑦]'구제역 파동에도 고기 판' NS홈쇼핑 나정채 MD…"위기는 기회다"

하이거 2013. 12. 17. 10:28

[트렌드메이커 MD의세계⑦]'구제역 파동에도 고기 판' NS홈쇼핑 나정채 MD…"위기는 기회다"

 

장기불황에다 '규제 허들'까지 높아지면서 유통업계는 날마다 울상입니다. 1인가구가 급증하는 '솔로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고 합리적인 소비로 자체 브랜드(PL·PB) 개발도 봇물을 이룹니다. 진열대와 TV, 온라인·모바일 구분없이 오늘날 판매경쟁은 손바닥 위에서도 치열합니다. '21세기 베니스의 상인'으로 불리는 MD(merchandiser)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꾸준한 영업력이 곧바로 유통채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불멸의 '맨파워'로 쓰러져가는 유통기업까지 일으켜 세운 MD의 밤낮 없는 활약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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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정동 기자 ] 2000년대 초반 홈쇼핑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조그만 항아리에 양념갈비를 가득 담아 내놓은 일명 '항아리 갈비'가 30~40대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방송 시작과 동시에 분당 수백만 원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이 항아리 갈비는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누적매출만 1조2000억 원에 달한다. 홈쇼핑 식품 카테고리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줌마 부대'가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항아리 갈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밀을 차근차근 캐보니 이 갈비의 기획부터 발굴까지 모두 책임진 나정채 NS홈쇼핑 식품MD 팀장(42·사진)이 있었다.

항아리 갈비의 전철우 씨부터, 오삼 불고기 배연정 씨 등 연예계에서 '요리 좀 한다'하는 연예인들이 줄지어 찾는다는 MD가 바로 나 팀장이다. 업계에선 홈쇼핑 방송에 연예인 게스트가 출연하는 문화를 만든 주인공으로 나 팀장을 거론하곤 한다. 그만큼 '콧대 높았던' 연예인들 사이에서 소위 '급 안된다'고 외면받던 홈쇼핑을 못 나가서 안달나게 끌어올린 MD가 그다.

고객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을 상품이 선듯 생각나지 않을 땐 "무조건 현장으로 뛰어 가본다"는 나 팀장은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다듬는 것부터 시작한 '현장주의자'다. 국내 대형 유통업체를 두루 거치고 2001년 NS홈쇼핑 창립 멤버로 합류해 식품을 회사 간판 사업으로 키운 나 팀장을 경기도 판교 NS홈쇼핑 본사에서 만났다.

◆ MD의 출발…'정육점으로 자진해 내려간 대졸 신입사원'

나 팀장은 대학 시절 MD의 'M'자도 몰랐던 평범한 축산학과 학생이었다.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던 'IMF 구직 세대'인 나 팀장은 유명 공기업에 입사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낙방의 쓴맛을 봤다. 그를 불러준 곳은 국내 모 사료회사. 영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축산학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마사회나 농·축협 등이 최고 인기 직장이었습니다. 낙방의 쓴맛을 보고 입사한 곳이 국내 한 사료회사였어요. 대리점 개설하고 판매도 지원해주는 영업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는 대리점 영업 일이 나 팀장에게는 뭔가 흥미를 주지 못 했다. 때마침 대학 선배들이 백화점 마트 등 대형 유통 채널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팀장도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화유통(한화갤러리아)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제가 발굴하는 상품을 고객들에게 직접 판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렇다면 꼭 현장 일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정육점에서 고기 써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회사에 얘기했죠. 한화그룹에서 대졸 사원을 매장으로 내려보낸 사례는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대학까지 졸업한 아들이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다듬는 모습은 그의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고객들과 소통하는 일은 즐거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의 바이어로서 경험을 쌓아가던 나 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이 왔다. 새로 만들어질 모 홈쇼핑 회사가 있는데 현장을 잘 아는 식품MD가 필요하다는 업계 선배의 귀띔이었다.

"출범 당시 NS홈쇼핑 콘셉트가 농수산물 판로개척에 이바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협력사들과 소통을 잘 하는 MD를 구하고 있었어요. 때마침 업계에서 일하던 선배가 저를 NS홈쇼핑에 추천했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MD로서의 길을 가게 됐죠."

◆ 전철우 항아리갈비로 '우뚝'…누적 매출 1조2000억원

나 팀장은 현장 출신답게 입사 초부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주변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생산자 중심의 유통업부터 시작해 정육점을 거쳐 소비자를 상대하는 유통까지 두루 경험한 그의 연륜이 묻어 나오는 대목이다.

"입사 초반에 치즈돈가스를 소싱한 적이 있었는데 소비자들로부터 반응이 좋았어요. 돈가스는 이미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 돼버려서 차별화를 고민하다 나온 게 치즈를 넣은 돈가스였어요. 2000년대 초반에는 치즈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거든요. 그때 이후로 홈쇼핑 채널에서 치즈돈까스는 필수 아이템이 됐죠."

나 팀장의 경력에서 가장 빛을 발했던 아이템이 바로 항아리갈비다. 항아리 용기에 양념갈비를 담아 판 것이 큰 성공을 거둔 것. 1세트에 4만 원 안팎의 가격인 항아리갈비는 지금까지 약 3000만 세트 이상이 판매돼 지금까지 누적 매출 1조20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방송인 전철우 씨가 갈비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협업을 하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전 씨가 언론에 몇 번 노출이 되면서 같이 사업을 하자는 업자들이 많았나 봐요. 그 과정에서 사기도 많이 당했는지 처음에는 함께 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제가 몇 번을 찾아가 설득 끝에 항아리갈비가 탄생했습니다."

나 팀장이 설명한 항아리갈비의 흥행 비결은 전 씨를 통해 상품의 인지도를 높였다는 점, 갈비의 맛, 그리고 항아리다. 항아리 용기에 담기 전에도 비슷한 제품을 판매했지만 그 정도의 매출까지는 아니었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흔히 말해 '대박 상품'을 만들어 내는 건 어느 한 요소만을 충족해선 안되는 것 같아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세 가지 요소가 뚜렷해야 합니다. 식품 카테고리로 한정하면 맛은 기본이고 친숙한 매개체에 어필 포인트가 있어야 해요. 전 씨가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주목을 끌었고, 항아리라는 독특한 용기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죠."

이후 나 팀장은 연예인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MD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연예인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다른 사업자들과는 달리 상품 자체에 애정이 있는 MD로 정평이 나서다.

"아마 대학 때 축산학을 공부하고 이후 꾸준히 식품 관련 일만 해서 그런지 이 업계에 대한 애정이 커요. 식품은 유통기한이라는 제한적 요건 때문에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데 제약이 많아요. 식품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없으면 소비자들의 이목을 확 당길만한 상품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 2005년 구제역·조류독감·광우병 3중고…"그래도 나는 판다"

잘 나가던 나 팀장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2005년 배연정 씨와 함께 오삼 불고기를 준비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였지만 그해 구제역, 조류독감, 광우병 등 세 가지 이슈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관련 시장이 순식간에 쪼그라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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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사업에는 항상 위생과 관련한 리스크가 있어요. 그러나 그때처럼 큰 이슈 세 가지가 한 번에 터진 적은 유례가 없었죠. 당시 시청자들은 고기의 '고'자만 들어도 채널을 돌리던 때였죠."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장의 밑바닥부터 경험한 나 팀장의 감각으로 소비자들을 다시 공략해야 했다. NS홈쇼핑 전체 매출 중 식품 사업의 매출이 8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판 MD로서의 책임이 막중했다.

"NS홈쇼핑에서 식품은 곧 정체성과 마찬가지예요. 창립 초기부터 농수산물에 대한 판로 개척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도 있고요. 어려움이 있다고 돌아가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유 불문 무조건 팔아야 했죠."

나 팀장은 배연정 씨가 가게에서 직접 사용한다는 돌판을 소비자에게 제공하자는 의견을 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일한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위생 문제는 철저한 검역을 통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면 소비자들에게 내놓을 수 없으니까요. 불고기 자체는 이미 전에도 고객들의 관심이 입증된 상태여서 구매동기를 높여주는 작업이 필요했던 거예요."

결과는 예상외였다. 구제역, 광우병이라는 심한 타격 속에서도 분당 400만 원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준비된 물량 전부를 팔아치웠다. 회사 내에서도, 나 팀장 스스로도 놀란 결과였다.

◆ "10년 이상 일해도 안주할 수 없는 세계가 MD"

나 팀장은 식품 MD로서만 12년 이상 일한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매출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고백했다. MD라면 누구나 벼랑 끝에 서서 일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충고다.

"매출에 대한 압박 때문에 MD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이직은 물론이고요. 이 일을 잘해나가기 위해서는 열정은 기본이고 창의성과 윤리적인 부분까지 요구되거든요. 세 가지 모두를 부족하지 않게 끌고가는 것이 어렵죠.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나 팀장의 이러한 차별화에 대한 고민은 NS홈쇼핑의 방향성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식품 안전성 검사에서 그치던 것을 연구개발(R&D) 쪽까지 늘리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기존에는 MD의 역할이 협력사와 함께 기획을 하고 제조사에 생산을 맡기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직접 연구개발에까지 관여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MD로서의 역할이 더 커진 셈이죠. 이 업계에서 10년 이상 일했다고 안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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